구경꾼인가? 춤추는 사람인가?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 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신약개발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수한 연구 인력과 팀워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미국식 결혼식이 색다른 이유는 대부분 식장과 파티장이 구별돼 있다는 점이다. 식장에서 예식을 치르고 나면 주인공들과 혼주들이 입구에서 퇴장하는 하객들과 인사를 나눈다. 초대받은 하객들은 식장을 떠나 파티장으로 이동해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가볍게 음료와 음식을 든다. 주인공이 도착하면 파티가 시작된다. 파티장은 음악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댄스플로어가 있다. 사회자가 파티의 시작을 알리고 주인공인 신랑-신부가 먼저 춤추는 사람이 된다. 두 사람이 어떤 곡을 택했는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이어서 신랑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신부와 그녀의 아버지가 춤을 추어 구경꾼의 축하를 받는다. 흥이 돋기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댄스플로어에 나와서 같이 춤추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대부분의 하객은 구경꾼이다. 구경꾼 중에는 플로어에 나가서 춤을 출까 말까를 망설이기도 한다.

신약개발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수한 연구 인력과 팀워크(teamwork)다. 국내 제약기업은 글로벌 빅파마에 비해 투자하는 자금력과 연구 인력에서 취약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름 경쟁력으로 내세울 점은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하기 위해 끝까지 도전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우수한 연구 인력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한미약품의 성공적인 글로벌 기술 수출 계약 이후, 최근 2~3년 동안 국내 제약기업들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도 글로벌 수준의 신약개발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에 힘입어 전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이에 따른 전략과 계획 수립에 나날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변화의 후면에 예기치 못한 속앓이도 진행되고 있다. 신약개발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투자로 인해 국내 중견 제약기업의 연구소 역량이 강화될 것을 기대한 것과는 일부 반대의 효과가 관찰된다. 그중 가장 큰 예가 우수한 연구 인력을 제대로 유지 못 하는 어려움이다. 그동안 몸담았던 연구본부장급 책임자와 박사급 연구 인력이 중견제약사 연구소를 떠나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이 입사하면 타사로 이직하지 않고 오랜 기간 근무하기 때문에 연구환경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아 온 최상위권 제약사 연구소까지 최근 2~3년 동안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왜 그럴까? 필자가 느끼는 세 가지 요인 중 첫 번째는 ‘한미 신드롬’에 의한 나비효과라고 이름 짓고 싶다. 2016년 당시의 여러 분석 중, 한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경영진의 리더십을 꼽았다. 그리고 그 이후 많은 국내 제약사의 CEO 및 경영진 전체가 연구개발 과제 진행보고를 직접 듣는 사례가 많아진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경영진 전체의 개발에 대한 소소한 의사결정 참여의 결과는 많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그 부작용으로 파티에서 적극적으로 춤을 추던 사람들이 주춤하며 구경꾼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책임을 지는 풍토에서 책임을 전가하는 쪽으로 서서히 변질해 간 것이다. 신드롬을 그대로 따라하다가 성공의 열쇠를 잃어버린 경우에 해당된다.  

두번째는 ‘바이오 신드롬’이라고 붙이고 싶다. 향후 한국의 먹거리 시장이 현재의 수많은 바이오기업의 성장 여부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집계에 따르면 2016년 창업한 바이오벤처는 443곳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고 사상 최대의 숫자로 기록됐다. 2018년 1월부터 6월까지 바이오 투자는 총 3124억원이 이루어졌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081억원 오른 금액이다. 신규벤처투자액의 업종별로 보면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제치고 가장 많은 투자금을 유치했다. `제2 바이오 붐`이 왔다는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2018년 들어서는 바이오에 관련이 없던 업종의 회사들조차 바이오회사를 창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바이오와 신약개발의 판이 커진 것이다. 바이오 창업이 활성화되고 투자금이 몰리면서 일자리도 늘었다. 우수 인력 측면에서 보면, 가장 좋은 직장이라고 평가받아 온 상위권 제약사 연구소에게 신약개발 관련 인재들에 대한 경쟁 상대가 급격히 늘어난 셈이 됐고, 이미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인재들을 유지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 돼버렸다. 

세번째 요인은 ‘바이오벤처의 역동성’이라고 붙이고 싶다. 바이오 및 신약개발은 근본적으로 여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다학제적인 역량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글로벌 빅파마와 상위권 제약사 연구소도 ‘소통’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바이오벤처의 역동성이 큰 장점으로 발휘된다. 벤처라는 환경에서 적은 인력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서로 부딪치며 프로젝트를 위해 의논하고 고민하고 연구하므로 의사결정의 역동성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조직이나 의사결정의 경중이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만으로도 상황의 악화를 경험할 수 있다. 늦은 바른 결정보다는 빠른 틀린 결정이 나을 때가 있다. 실수를 빠르게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자본의 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신약개발의 과정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큰 조직과 여러 단계의 상하관계를 보유한 대기업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신약개발의 역량은 특정 인물이 회사를 시작했다고 또는 특정 인재를 영입해 놓았다고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게 아니다. 특정 인물 한 사람으로는 이룰 수가 없다. 공동체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연구개발 히스토리와 강점 그리고 단점을 모두 꿰차고 여기에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물질을 창출한 후 여러 전문가 그룹이 모여서 해당 데이터 패키지를 구성해야만 가능하다. 어느 회사가 조직력과 팀웍을 가지느냐가 관건이다. 어떻게 그런 풍토를 만드는가의 역량에 달려있다.

크고 작은 어떠한 개발 조직에도 댄스플로어를 바라보며 서성거리는 구경꾼의 존재가 많을 경우, 혁신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어려움이 닥칠 수밖에 없다. 투자 규모는 커지고 바이오 에코시스템은 변화되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변화된 에코시스템을 댄스플로어 삼아 열심히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야 한다. 이상적인 개발팀은 구경꾼 없이 모두 다같이 즐겁게 춤추는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내부의 구경꾼은 견제 역할을 할 다른 부서에서 담당하고 외부의 구경꾼은 감시 기능을 가진 언론사가 담당하면 된다. 구경꾼과 춤추는 사람 간의 비율과 조화가 중요하다. 춤을 추려는 사람은 별로 없이 구경꾼만 많아지면 파티는 곧 끝이 날 것이고, 다같이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이 많아지면 파티는 밤새 무르익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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