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신약접근성에 대한 위험분담제 역할 제고

[칼럼]김봉석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위험분담제 절차 개선 필요해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항암 치료는 수술적 절제술을 필두로 방사선요법, 약물·호르몬요법, 표적치료제를 넘어 종양면역치료제 개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진보를 이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암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암치료에 대한 만족도 조사결과(PACE Survey 2015)에서는 국내 암환자 중 39%만이 치료과정에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암 치료 보장성 확대 협력단(Korea Cancer Care Alliance, KCCA)은 2016년에 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암 환자들이 치료와 관련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어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인식과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조사결과에서 암환자들은 암 치료 중 가장 힘든 것이 경제적 이유라고 답변했다. 4기 암 환자의 평균 암 치료 비용은 연간 약 2877만원에 달하고, 이 중 약 71%인 2061만원은 비급여 항암제 비용으로 조사됐다. 암 환자 대부분은 ‘비급여 항암제 비용’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의 약 62.5%가 비급여 항암 치료를 지속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22.7%의 환자가 경제적 부담으로 비급여 항암 치료 중단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 환자들이 비급여 약제 사용으로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의료진 역시 비급여 약제 사용 제한으로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07년, 모든 의약품을 급여대상으로 하던 기존의 보험등재방식이 가격에 비해 효능이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해 보험 적용하는 방식인 선별등재방식(positive lisk system)으로 변경됐다. 새로운 선별등재 제도 하에서는 고가 신약 중 치료 효과 입증이 어려운 항암제나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 등은 보험 등재에 장애요인이 돼왔다. 암환자의 경우 허가가 난 항암제라도 보험이 적용되기까지는 비급여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만큼 약제비의 부담이 가중되고, 급기야 가산을 탕진하는 메디컬푸어로 전락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위험분담제는 신약의 효능·효과나 보험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하는 제도로,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고 제약사는 좀 더 빠른 등재를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환자에게 약제 접근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까지 위험분담제는 항암 신약의 급여율 향상에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선별등재제도 이후 11년간 항암신약 급여율은 75개 허가품목 중 46개(61%)로, 이들 급여품목 중 16품목(35%)에 위험분담제가 적용됐다. 이 중 2013년 위험분담제 도입후 급여된 32개 품목만을 살펴보면, 이중 절반인 16개 품목에 위험분담제가 적용됐다(50%).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분담제는 항암신약의 보험까지 기간 단축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기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허가된 항암신약에 대해서 급여까지 평균 748일이 소요되는데 반해, 위험분담제 도입 후에는 999일로 더 오래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2월 위험분담제 도입 후 급여된 32건 중 위험분담제 적용된 품목 16건은 평균 999일, 적용 안된 품목 16건은 평균 799일로 조사됐다. 이는 그 동안 지연됐던 품목들이 위험분담제로 급여권에 들어온 영향과 함께 경제성 평가를 해야 하는 것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보험급여에서 위험분담제를 통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아직도 절실히 요구된다.

위험분담제는 재정효율화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종혁 등의 연구(위험분담제가 환자접근성 및 재정에 미치는 영향과 제도 발전 방안에 관한 연구, 2017.09)에 따르면, 위험분담제의 재정효과를 분석한 결과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항암제의 급여율이 점차 상승하면서 총의약품비 역시 13.8%로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환자수도 16.3% 상승하며 환자 혜택이 높아졌다. 이에 환자 1인당 연간 항암제 처방액은 2014년 대비 2015년에 오히려 2.1%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재정절감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금전적으로 환산하면 2015년에만 약 430억원으로 평가된다. 이는 최신 혁신 항암신약 사용이 기존 약제 및 타 치료법 대비 비용효과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향후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부 등에서 위험분담제 전후로(2007년~2017년) 정확한 재정효율성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위험분담제가 도입 4년차를 맞아 첫 번째 재평가를 앞두고 있다. 위험분담제는 혁신 신약의 '환자 보장성 강화'와 '재정 절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매우 효율적인 제도임이 증명됐다. 그러나 재협상을 앞둔 현재 시점에서는 환자와 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재평가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재협상이 실패한다면 최악의 경우 해당 약제가 비급여로 전환돼 사실상 약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유는, 재평가를 앞두고 정부가 제약사 측에 제시한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올해 마련한 '신약 등 협상대상 약제의 세부평가 기준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계약기간이 1년 미만 남은 재계약 대상 약제는 등재 이후 발표된 임상효과 자료와 변경사항을 고려한 비용효과성 평가 자료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 제도 도입의 취지가 비용-효과 입증이 어려운 암 질환과 희귀난치성질환 등에서 고가 신약을 대상으로 재정적 위험을 부담하는 것인데 다시 경제성평가를 통해 비용효과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 도입의 목적이 혁신 신약에 대한 환자접근성을 높이고 정부의 재정부담도 줄여보자는 것이었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제도 도입 후 등재율도 향상되고 재정효율성 측면에서도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문제는, 제도 도입 후 등재율은 향상됐지만 등재기간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혁신 신약의 허가 후 즉각적인 사용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 논의가 있어야 한다.

암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이고, 국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릴 수 있는 시대다. 이 때문에 암은 한국에서 사회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질병이다. 암 환자 수는 매년 11% 증가하는 반면 항암제 관련 지출은 매년 5%만 증가해 암 환자 치료에 필요한 재정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항암제에 대한 재정지원 규모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제비 지출 현황을 통해 살펴보면, 전체 약품 관련 지출 중 항암제의 비중은 9%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OECD 평균치인 19%와 비교해 2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친다.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국민건강보험료를 상향하거나 개인 부담을 차별화하는 선별급여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2016년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의 발표에 따르면,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항암 치료제 비용의 20~30%까지 부담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44.3%에 달했다. 이는 지금보다 약제에 대한 비용 부담을 좀 더 지더라도 혁신 신약에 대한 접근성 향상을 요청하는 속뜻이라 해석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예비급여로 우선 혁신 신약에 대해서는 먼저 등재하고, 일정 기간 후에 결과를 평가하는 선등제후평가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험분담제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생긴 제도이다. 경제성 평가에 치중된 재평가가 환자의 치료 지속성이나 보장성을 담보로 후향적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선진국 등에서는 경제성 평가에 대한 한계가 지적되며 비용효과성뿐만 아니라 신약의 다양한 가치를 담고자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신약은 비용효과 외에도 질병의 위중도, 혁신성, 환자 편의성 개선, 환자 요구도 및 미충족 수요, 직간접적인 사회비용 등 다양한 가치에 가중치를 두고 검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암환자들이 메디컬푸어로 전락되는 현 문제를 막고, 하루라도 빨리 최신 혁신신약의 혜택을 누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번 재평가 시점에서 위험분담제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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