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다른 일괄 약가인하 정책…제약사 매출 성장세 둔화하고 비급여 생산 증가

연세대 최윤정 교수, 제약기업의 성과와 형태에 미치는 영향 발표 "건보재정은 악화하고 소비자 부담은 증가했다"

연세대학교 최윤정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정책이 건보재정의 건전성과 환자 접근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건보재정 악화와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최윤정 교수는 25일 고려대 서울캠퍼스에서 개최된 '2024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중앙대 강창희 교수, 서강대 전현배 교수와 연구한 내용을 담은 '약가인하 정책이 제약기업의 성과와 형태에 미치는 영향'을 발제하며 이같이 밝혔다.

연구진은 약가인하가 제약사의 매출과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기 위해 시장-형태-성과 모형(SCP)을 사용하고, 연속형·강건형 이중차분법을 통해 정책 효과를 확인했다.

최 교수는 "약가인하의 기업 노출도를 약, 중, 강으로 나눠 매출액의 영향을 살펴봤다. 3개 집단의 매출액 평균값은 지속 상승했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기울기"라며 "2012년 약가인하 이후 매출액의 증가세는 둔화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가인하 정책의 노출도가 높을수록 매출액 성장 둔화 정도는 컸다.
 

2012년 중노출 집단의 매출액은 약가인하가 시행되지 않았을 때보다 약 8% 감소했다. 2013~2019년 연도별 매출액은 약 23~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노출 집단의 경우 2012년 매출액은 약 12%, 2013~2019년 연도별 매출액은 31~5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최 교수는 "약가인하로 매출 성장세가 둔화하면 기업은 생산과 매출 구성에 변화를 줘 매출 감소 충격에 대응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제약 기업은 약가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약가인하 미대상인 비급여 생산 비중 증가 ▲전문의약품 중 급여·비급여 생산구성 ▲급여 전문의약품 중 인하 품목과 미인하 품목의 생산구성 ▲매출액 내 자체 생산 제품 비중 감소 ▲매출액 내 수입 의약품 코프로모션 비중 증가 등을 시행했다.

실제로 비급여 의약품의 품목 수가 늘면서 전체 의약품 중 비급여 의약품 비중이 높아졌다. 약가인하 노출 기업의 2012년 비급여 의약품 수는 미노출 기업 대비 약 31.5% 증가했다. 전체 의약품 중 비급여 의약품 비중은 2019년 기준 약 17.3% 높아졌다. 

또 2016년부터 20~36%까지 급여 의약품 생산 비중이 감소했다. 급여 전문의약품 가운데 미인하 품목 비중은 2018년까지 최대 10.5% 증가했다.

최 교수는 "약가인하 대상이 아닌 비급여 의약품의 품목 수와 비중이 증가하고, 약가 미인하 품목의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약가인하의 목적 중 하나였던 건보재정의 부담 완화 효과가 감소했다. 장기적으로는 전체 약품비와 소비자 부담이 증가하고, 보장성은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괄 약가인하 정책이 없었다면 노출 기업의 자체 생산 매출액은 유지하거나 더 큰 폭으로 증가했을 것"이라며 "약가인하로 인한 제품 외 매출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자체 생산 능력, 의약품 수급 안정성을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제약산업의 생산 기반과 공급 안정성의 저해도 우려했다.

최 교수는 "자체생산에서 위탁생산 비중을 높이고 수입의약품의 코프로모션이 증가하면 이는 제약산업의 생산기반뿐 아니라 공급 안정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소비자 부담이 증가하고 재정 악화의 우려가 있다"며 "계약 종료 등에 따른 기업 건전성에 대한 잠재적 리스크도 확대된다. 이는 결국 산업 경쟁력 강화의 한계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정책과 환경의 등의 외부적인 충격은 시장 구성원인 개별 기업의 형태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기업의 형태 변화로 이어지는데, 이는 기존의 정책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재정,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급여 의약품 생산 증가는 소비자의 보장성을 약화한다. 또 급여 의약품 중 미인하 대상 의약품의 생산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고령화와 의약품 수요 증가, 오리지널·고가약 선호도과 처방 형태의 변화와 맞물리면 약가인하 정책에 따른 부작용은 가속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장기적으로 약가인하 정책이 재정 부담 완화에 큰 효과가 없다"며 "정책을 설계할 때 소비자와 건보재정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성균관대 이상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업 레벨, 품목 레벨에서 하나씩 분석했다는 데서 (업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연구에서 활용된 매출이 기업의 재무제표가 아닌 한국제약협회에서 제공한 생산실적을 사용했다는 점과 완제의약품, 원료의약품, 수출의약품 등의 생산액 중 완제의약품만 발췌해 급여와 비급여로 나눠 비교한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생산실적과 실제 기업의 매출은 동일하지 않다"고 설명하며 "일괄 약가 인하 정책의 의미는 제네릭 약가를 떨어뜨려 건보재정의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고, 우리나라 기업이 과도하게 몰두한 제네릭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원료의약품과 수출의약품의 자료도 포함했다면 더 큰 시사점을 줬을 것이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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