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선진국에서 환자의 평균 진료 대기 시간이 공통적인 관심사가 됐다.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3.0명을 넘는 나라들도 길어지는 환자 대기 시간이 종종 정치적으로 중대한 의제가 되고 있다.
‘조세 기반 의료(Tax based healthcare)’의 원조국인 영국에서 NHS(국가보건서비스) 대기 시간은 주요 선거 이슈다. 여야 양당 모두 진료 대기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영국은 의사 수가 30만을 넘고 GDP(국내총생산)의 12%가 의료비로 지출되는 나라에서 우리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도 어렵고 참기 힘든 장기간 대기 시간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영국에 거주를 하지 않아 의료계의 실제 상황을 직접 체험할 수 없어 장기간의 진료 대기에 대한 원인 분석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영국은 현재 응급이 아닌 예정된 치료의 대기자가 2024년 4월 기준으로 무려 760만 명에 달하고, 그중 1년 이상 대기한 경우가 30만 2000건 이상 이라는 헬스 파운데이션(Heath Foundation)의 보고서를 접하면 영국의 환자 진료 대기 현상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으로 보인다. 영국에서 환자 대기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돼온 만성적인 문제로 해결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 사고나 응급환자의 대기 기간도 지난 수년간 NHS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영국 NHS, 겉은 무상의료 ‘천국’ 속은 만족도 ‘최악’
영국은 조세바탕의료로 본인 부담도 없고 속칭 무상의료의 천국처럼 비춰지는 나라인데, 실상은 이제 사고나 응급 서비스에 대한 부담을 해결하지 못하고 지연되면서 잠재적인 인명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속히 자신의 병을 잘 파악해 즉각적인 해결을 희망한다. 조세바탕의료는 의료자원과 의료서비스의 배분이 환자 중심이 아닌 의료제도 중심으로 발달됐다. 의료 배분에 대한 환자의 이해가 있다 해도 장기간의 진료대기는 영국 국민의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보여진다. 당연히 만성적인 환자 대기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는 하나 받아들여지기 힘들고 점차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영국은 확실한 의료전달체계와 우수한 보장성을 갖고 있다. 대신에 환자가 지켜야 하는 암묵적 계약이 자신의 치료 순서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이해는 하나 참기 힘든 진료대기 시간에 영국인의 자부심이었던 NHS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영국의료서비스(NHS)에 대한 만족도는 역대 최저치를 보인다고 한다. 총선 의제로 가장 우선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NHS가 됐다.
대기 시간의 증가는 입원 대기의 증가, 병원 재원 기간 증가, 퇴원환자 지연 등 복잡한 요소의 총체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 의료 수준의 편차와 지역별 환자 대기 시간의 상당한 차이를 보여 결국 결정적 치료를 위한 병원 치료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이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환자의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빈곤 지역의 진료 대기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조세바탕의료의 장점인 형평성과 공정성이 실제와는 다르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사태는 이미 오랜 기간 누적된 사안인데 신속하고 명쾌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장기적인 안목에 따른 정책변화와 혁신, 그리고 개선 등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는데 이것 역시 현 단계에서는 가설적이다. 진부한 해결책인 병상의 효율적 운용과 의료예산의 확충과 정부투자 제고를 도모하는데 그래도 대기기간의 해소는 불분명하다.
한국, 환자 대기 정보 OECD 지표 부존재 실시간 진료 가능하단 증거
우리나라는 OECD 지표에도 환자 대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이유는 대기기간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 등 선진국 대기 기간의 자료를 보면 일단 주치의 만남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주치의 판단에 의해 다시 전문의 진료를 받아 실제로 병원 치료의 개시 기간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환자가 경험하는 실제의 대기기간은 주치의 대기와 전문의 대기 그리고 외래 단위에서 진행되는 검사와 검사 결과 판독에 대한 대기가 추가되어 우리나라 실정과는 너무나 차이를 보인다.
NHS의 병원 치료에 대한 대기기간의 목표치(수준)은 18주인데 실제로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1년 이상의 대기 기간인 백내장 수술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NHS는 결국 남아프리카 등 과거 식민지 출신의 의사에게 한시적 의료 활동에 대한 허가를 내준 후 1년 내내 백내장 수술을 진행해 대기자를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긴급조치가 일시적인 대기를 완화하기는 했으나 지금도 환자 대기 시간을 단축되지 못하는 딱한 실정이다.
이제 반해 의사 수도 적은 우리나라는 몇 주, 몇 달의 대기가 아닌 당일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을 문제 삼고 있다. 선진국의 입장에서 보면 상상하기 힘든 나라의 실정이다. 아이가 아프면 응급이건 아니건 보호자의 요구에 맞춰 즉각적인 진료가 개시돼야 만족하는 극도의 의료 소비이기주의를 담고 있다. 이것을 이유로 대통령이 의료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 거대한 의과대학 정원 증가의 빌미로 삼았다는 것은 정상적 의료제도 작동하는 나라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왜 우리나라는 적은 수의 의사에도 신속 서비스가 가능한가? 우리나라 의료의 장점은 무엇인가? 의료전달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데도 역설적인 신속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의사 수가 많은 나라보다 월등히 빠른 전문의 진료의 비결을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잘 보존해야 할 장점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일본을 벤치마킹한 선진국의 사회보험제도가 근간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발전은 결국 서구 선진국의 사회보험제도에서 일탈한 기형적인 모습이 됐으나 분명한 장점이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이 서구 사회보험제도의 원칙을 추구해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가 변형시킨 기형적 사회보험의 장점을 고려해 한국적 실정에 맞게 잘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인지 의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합의는 없는 채로 표류하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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