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불공정·편법 협상 강행하는 수가협상, 이대로는 안 된다

[칼럼]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전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장

의원급 의료기관 수가협상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2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진은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수시로 바뀌는 지침과 국가 방역 대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지속하면서 의원급 의료기관은 내원 환자 수, 내원 일수, 입원 일수 등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직원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어 경영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매년 5월이 오면 다음 해의 수가 인상률을 결정하는 수가 협상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각 유형 간 진행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작년에 이어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수가협상을 위임받아 필자는 2023년도 의원 유형의 수가 협상 단장으로 2년째 협상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지친 의원에 실망스러운 3.0%의 수가 인상률을 최종 제시받았다. 하지만 힘든 국민들께 심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였고, 결과에 실망한 회원들께는 양해를 구했다. 올해는 더욱 힘들어진 의원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인상률을 받아내기 위해 협상단을 서둘러 구성했다. 전국광역시도 의사회 회장과 의장, 전문과 의사회 회장, 의료정책연구소 소장과 연구원으로 자문단을 구성해 인상률의 근거와 설득 논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수가 협상의 결과는 코로나로 탈진 상태가 된 의원에게 큰 배반감을 안겨주며 자포자기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 수가협상단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미 정해진 수순처럼 협상이 결렬됐고, 협상 과정에서도 불공정한 처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필자는 잘못된 협상 구조이지만 결렬의 책임을 통감해 단장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대한개원의협의회 임원진과 상의해 대한의사협회로부터 위임받은 수가 협상 권한을 반납하기로 했다. 

이번 협상에서 유독 의원 유형에서만 수가 인상률이 3.0%에서 2.1%로 하락하고 다른 유형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올라간 수치를 제시받았다.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단 1년만에 의원 유형에서만 인상률이 대폭 낮아져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결국 이번 협상에서 소요 재정(밴드)을 줄이면서 의원 유형을 대폭 삭감해 그 재정을 다른 유형에 배당하는 수법으로 의원 유형을 '버리는 카드'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건보공단은 협상에서 적용한 SGR 모형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인정할 수 없다. 1997년 미국에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SGR 이라는 ‘지속 가능한 진료비 증가율’이라는 모형을 도입하려고 수년간 논의했으나 문제점이 많아 단 한 번도 시행되지 못하고 영구 폐기됐다고 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를 맹종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

SGR은 과소 편향되고 지출 억제 의도만 반영된 수가 산출방식으로 원가 이하의 수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모형이다. 공단뿐 아니라 연구자들도 이런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어 SGR 모형을 폐기하는 것에 공감하며, 다른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더욱이 이번 수가 협상에서는 새롭고 비열한 수법이 동원됐다.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밴드를 결정하고 공단 협상단은 이 범위 내에서 공급자단체와 협상하는데, 지난 2년간 협상이 결렬된 병원과 치과 유형을 위해서만 타결을 전제로 따로 추가 재정을 만들어 '이중밴드'를 제시하는 부당한 방법까지 사용했다. 이는 이중장부를 만들어서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합리적 기준 없이 사용한 것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하고, 관련자들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재정 규모인 밴드를 심의․의결하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 구성에서 공급자이자 소비자인 공급자단체가 배제돼 있어 일방적으로 인상 폭을 정하거나 편법적인 결정을 해도 공급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공급자의 의견을 직접 전할 수 없는 재정위원회 구성과 운영에서의 위헌성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5조에 따른 협상 기한인 5월 31일로 돼있는데, 협상 기한이 지난 6월 1일에서야 재정위원회(재정소위)에서 결정된 최종 밴드로 각 단체와의 협상을 마무리한다. 이 역시 위법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된다. 

수가 협상 결렬이 됐을 때 해당 유형에 대한 수가 결정은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한다. 공단 재정운영위원회로부터 '결렬된 단체의 인상률을 공단이 최종 제시한 인상률 이내에서 결정'이라는 부대결의사항에 따르는데, 이 역시 위법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결렬 시에 공단은 패널티가 없고 공급자만 패널티를 받는 것도 불평등한 협상이다.
 
밴드를 일방적으로 정하고, 인상률도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편법 협상을 강행하는 현재의 수가 협상은 정상적인 협상이 아니다. 모든 직역의 유형에서 불만을 가지는 이런 수가 협상 구조는 당연히 폐기해야 한다. 모멸감으로 치를 떨면서도 끌려다니는 수가 협상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바꾸지 못하거나 공급자단체의 모든 유형에서 수가 협상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똑같은 불공정한 협상으로 한탄만 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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