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도 매년 100억원 적자…빛 좋은 '사후 일괄보상' 제도에 "의문"

2017년부터 시범사업 했지만, 병원 적자 방치해 온 정부…인력 투자 이어지지 못해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사진=서울대학교병원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미달 사태로 소아진료 공백 우려가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에 적자를 보존할 수 있도록 '일괄 사후보상' 방식의 새 지불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소아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병원의 80%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병원이라는 점에서 이번 시범사업이 안정적인 소아진료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그간 정부가 외면해왔던 어린이 전문진료센터의 적자를 보전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반응이다.

실제로 정부는 2017년부터 6년간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소아전문진료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국고지원을 해왔으나 그 규모는 한 개 병원의 적자 규모를 겨우 보전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늘어나는 적자 규모 속에 2기 시범사업에 참여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들은 소아청소년과 및 외과 세부분과별 의사 등 의료인력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2기 10기관 시범사업 지급금 약 90억원…한개 기관 적자 규모에도 못 미쳐

5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올해 1월 1일부터 도입하기로 한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시범사업'은 이미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시범사업의 연장선상으로 나타났다.

3년 주기의 사업인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시범사업은 2017년에는 7기관이 지정됐으며, 2020년에는 10기관이 지정돼 기능강화사업 및 입원관리료를 별도 산정하는 수가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2023년 1월부터 새로 시작된 시범사업은 기존에 지정된 상급종합병원 중 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한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중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서울 3기관, 전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충남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강원대병원 등 총 9개 병원이 새로 지정됐다.

지정된 센터들은 올해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3년간 사업을 수행한 후 다음 연도 성과평가를 통해 정부로부터 중증 소아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적 손실을 최대한 전부 보상받게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언 발에 오줌누기'라며 "서울대 어린이병원이 매년 100억씩 적자가 나고 있다. 몇십년간 지속된 적자 사태를 외면하던 정부가 이제와서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지원됐어야 하는 부분이 이제서야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년 동안의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시범사업'은 정부의 국고 보조를 통해 일부 상급종합병원들이 중증 소아 입원 병상 등 소아 진료 인프라를 갖추도록 하는데 일조했지만 이는 모두 적자 위에 쌓아올려진 성과였다.

정부는 1기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에 지정된 병원에 센터 설립에 필요한 시설 및 투자를 중심으로 지원해 정작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방치했다. 2기에 들어서야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를 대상으로 수가 시범사업을 진행했으나 10기관을 대상으로 한 지급금액은 2020년 기준 약 90억원으로, 한 기관의 적자 규모가 100억원 이상임을 고려할 때 이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 지원, 전문의 인력 투자로 이어지지 못해…'적자 보전' 방식의 지원책에 비판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사진=서울대학교병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동인구 감소로 인한 수익성 저하 속에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조차 소아청소년과 및 외과 세부분과별 의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체계개선실 오정윤, 조수진, 정진선, 조진숙, 박춘선 연구팀이 심평원 학술지에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의 진료 역량: 상급종합병원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센터 지정 기관은 평균 17.6명의 전문의를 보유하고 있으나, 소아정형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흉부외과는 성인 진료와 겸임하는 전문의를 보유한 기관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지방 센터에서 전담 전문의를 확보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최근 5년간 신생아중환자실 환자의 급성복부 수술 후 30일 사망률은 외과 의사보다 소아외과 의사가 수술을 시행한 경우 3% 정도 유의하게 낮았는데, 신생아 체중이 적을수록 소아외과 의사가 수술한 경우의 사망률이 더 낮은 것을 확인했다. 소아는 생리학적, 병리학적 특성이 성인과 달라 소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소아전담의의 진료가 필수적"이라며 "소아과, 소아외과의 세부 분과에 대한 전문적인 진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의료인력 중심의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로 국고지원을 받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조차 진료 수익의 문제로 세부분과별 전문의를 고용하기 어려워 소아전문진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문제는 2022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 28.1%에서 2023년 15.9%로 급감하면서 소아청소년과를 담당한 전공의가 부족해 상급종합병원조차 필수의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전문의 대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던 전공의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해 온 대학병원들이 전문의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특정 공공전문진료센터에 대한 지원책 보다는 대학병원들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번 사후보상제도는 병원들이 '적자는 나지 않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안된다. 이익을 내야 병원들이 장비 확충도 하고 세부 전문의도 고용하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전공의 지원율을 회복할 수 없다"며 정부의 뗌질식 처방을 비판했다.

임 회장은 "최근 길병원이 입원 병상 운영을 중단한 것도 전공의 부족으로 교수들이 주 100시간 당직을 서며 일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인력에 대한 지원책은 커녕 상급종합병원 평가에 페널티를 운운했고, 교수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입원 병상을 열었다"고 지적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학회 나영호 회장 역시 "전공의 인력에 의존하던 병원들이 전공의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응급 및 입원병상마저 중단하는 병원이 생기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전국의 9개 병원에 대한 사후보상 지원이 실질적인 인력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라며 "소아과 전공의 미달 사태가 당장 몇 년 사이에 미칠 진료 체계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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