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는 19일 “의료기관의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 서류 온라인 전송을 의무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소의 보험업법 개정안 반대 이유는 ①청구 방식 간소화·표준화 선행부터 ②보험금 지급 거부 사례 등 분쟁 증가 우려 ③개인정보 유출 우려 ④의료기관은 개인과 보험사간 사적 계약과 관계 없어 ⑤단일 공보험 시스템의 한계점 부각 등이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환자들의 실손 보험 청구 과정에서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의료기관들이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하도록 하고, 의료기관들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과 유사한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은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발의된 적이 있으나 과도한 환자 정보 노출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이익 우려, 환자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 개인의 사적 계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의료기관들에 부당한 요구라는 점, 실손 보험사들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그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9년 말 기준 실손 보험 가입자는 전 국민의 76%에 해당하는 3800만 명에 달하고, 실손보험 청구 건수도 2019년 1억 532만 건으로 3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①청구 방식 간소화·표준화 선행부터
연구소는 우선 “환자의 보험청구 편의를 위한다면 우선 보험사별로 다양한 보험금 청구 방식의 간소화 및 표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할 때마다 법안 발의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환자들이 실손 보험금을 청구할 때 각종 서류를 발급 받아야 하는 과정이 불편하다는데 있다”라며 “보험금 청구 과정이 복잡해진 이유가 무엇이고, 환자들이 실손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때 어떤 점이 가장 불만인지에 대해서 면밀히 조사를 한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실손 보험 보험금 청구 시에 환자들이 여러 서류를 발급 받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보험사들이 많은 서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별로 보험금 청구 시에 요구하는 서류의 종류가 상이하고, 상당수의 보험사에서는 불필요하게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이로 인해 환자들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라고 했다.
연구소는 “비급여 진료가 아니라면 모든 의료행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급여 진료의 경우는 처방전과 영수증 정도만 제출해도 실손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합당하다. 비급여 진료의 경우에도 소액 청구인 경우는 큰 문제가 없으면 추가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방향이 환자 편의 측면에서 합당할 것”으로 제언했다.
그러면서 “유사한 보험 상품이라도 보험사별로 요구하는 서류나 의무기록이 상이한 경우가 많아 이 부분에 대한 표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②보험금 지급 거부 사례 등 분쟁 증가 우려
연구소는 “보험사들이 데이터화 된 방대한 환자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면 보험금 지급 거부 사례 증가 등 각종 보험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 정보가 보험사들의 개별 이익을 위해 악용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여러 노력에도 실손 보험 손해율의 개선이 보이지 않자 보험사들은 보다 정확하면서도 가공하기 쉽도록 디지털화된 데이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보험사들이 디지털 데이터화된 환자 정보를 이용해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손해율 낮은 보험 상품의 개발과 기존 보험 계약에서의 보험금 지급 거부 사유의 확대일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험금 지급 거부 사례가 늘어나면서 보험 분쟁이 늘어날 우려가 높고, 이로 인해 실손 보험에 가입돼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신규 실손 보험 가입 시나 기존 가입자의 보험 갱신 시에도 정보의 비대칭에 의해 국민들이 손해 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③개인정보 유출 우려
연구소는 “환자의 의료 정보를 전문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넘기는 행위는 약학정보원 사태와 같이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위험이 있다. 전문중계기관은 보험사들의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전자적 형태로 보험금 청구 서류를 보내면 보험사는 이를 위한 전산체계 구축 및 운영과 관련한 사무를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구소는 “제3의 기관에서 환자의 의료 정보를 처리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미 2013년 약학정보원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통해 목도했다. 지난 2013년 약학정보원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약 5년 간 약국 보험청구 프로그램을 이용해 환자들의 질환 및 의약품 청구 내역 등의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고, 이를 다국적 의약정보제공 기업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했다.
연구소는 “환자의 의료 정보는 매우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가급적 처리 기관의 수가 적어야 함은 물론, 이 정보가 디지털화 및 전산화됐을 때는 정보 유출에 의한 국민 피해의 위험이 더욱 높아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④의료기관은 개인과 보험사간 사적 계약과 관계 없어
연구소는 “개인과 보험사가 맺은 사적 계약의 편의를 위해 계약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의료기관에 온라인 자료 전송을 의무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전 국민과 전 요양기관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건강보험과 달리 실손 보험은 보험 소비자 개인과 보험사간의 사적 계약이고, 이 계약 관계에는 국가나 의료기관이 개입할 여지나 권한이 전혀 없다”라며 “의료기관이 보험사 및 전문중계기관으로 필요한 서류를 온라인 전송하도록 하고 있고,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해당 자료 전송 업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나 수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고 했다.
연구소는 “개인과 보험사가 맺은 사적 계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3자에 불과한 의료기관들에 국가가 개입해 부당하게 추가적인 업무 수행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이를 거부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은 의료기관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 편의나 공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특정 직역이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나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것은 공익을 앞세운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위헌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⑤단일 공보험 시스템 한계점 부각
연구소는 “실손 보험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결국 단일 공보험 시스템의 한계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다 보험자 경쟁 체제로의 보험 체계 전환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건강보험 자체만으로 국민 의료보험 서비스가 원활히 이루어진다면 굳이 민간보험사들이 운영하는 실손 보험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국회가 나서서 개정안까지 발의해 가면서 실손 보험사들의 이익을 챙겨주고, 간접적으로 국민들의 실손 보험 가입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단일 공보험 체제의 한계점을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연구소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여당은 국민 앞에 현재까지 유지해왔던 단일 공보험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 보험자 경쟁 체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험 체계를 전환시켜 지속 가능한 보험 체계를 만들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이어 “이런 자신들의 정책 실패는 감추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가입한 실손 보험에까지 국회와 정부가 개입해 국민과 의료기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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