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시행의 전제 조건...의료민영화와 대형병원 배불리기 논란 어쩌나

[칼럼] 박상준 경상남도 대의원·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원격의료는 환자가 직접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고 통신망이 연결된 모니터 등 의료장비를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 3월 의사 의료인 간 원격의료제도가 도입됐고, 2006년 7월에는 의사 환자 간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2010년 4월 18대 국회에서는 처음으로 의사의 원격 진료와 처방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법률 개정의 첫 관문인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한 차례도 상정되지 못했다.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다” “대형병원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다”  등의 야당과 의료계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4년 9월부터 의료 취약지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3월 11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원격의료는 고정관념이 많아 다른 뜻으로 쓰기 위해 스마트 진료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며 용어변경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취약지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정부와 의료계가 동의해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인 시행과 시행 후 파생되는 문제점에 대한 사전 충분한 검토 없이 진행된다면, 그동안 의료계가 우려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선결돼야 할 과제를 살펴보고 이를 극복할 장치를 마련한다면 원격의료 시행 초기 발생 가능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제도 시행에 따른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1. “원격의료는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다”라는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의료는 민영화되면 안 되는 것인가?

의료 민영화란 국가 및 공공 단체에서 관리하던 의료 기관과 사회 보험으로 운영하던 건강보험의 관리와 운영을 민간에 개방하는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 의료는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해서 모든 의료 기관은 당연히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 건강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 기관으로 강제적으로 지정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통해 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단일 공보험의 단점을 보완하고 국민이 최선의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원하는 진료와 의료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 일변도인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의 틀을 벗어나 산업화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영역에서 분리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유독 원격의료에 한정해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남는다. 취약지역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한정된 원격의료의 이용이 아닌 광범위한 의료 영역에서의 원격의료 활용에 대한 우려가 더 문제의 초점이 아닐까?

현재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공보험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사업자(의료인, 의료법인)에 한해 민영화를 허가해 관리할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준비돼있는지 또한, 이로 인한 의료 시장 내부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공보험 시장이 활성화나 안정화 돼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의료인이 자신이 원하는 사업자로 등록해 활동하고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만큼 성숙한 환경조성이 된 상태인지, 아니면 부작용이 더 크게 발생하여 의료 시장 전체가 교육단계에서부터 왜곡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선택은 국민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나 의료의 편중을 조정하고 국민 간 의료이용으로 인한 내부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조율하는 것 역시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란 측면에서 의료 민영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차근차근히 풀어야 할 문제다. 의료계도 원격의료의 장점을 분명히 알고 있고 이 제도의 한정적 사용이 국민의 보건의료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원격의료의 허용이 전반적인 의료 형태의 변형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정부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현재 의료 행위로 분류된 많은 시술과 행위에 대해 정부는 특별한 사유 없이 민간에서 행해질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것 또한 의료의 민영화의 일부임에도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정부는 충분한 논의와 방향성을 가지고 의료계와 협의를 통해 추진해야 하는 것이 원격진료가 가진 장점을 공감하고 민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대형병원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다”는 관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측면에서 보면 큰 자본력을 가진 대형병원이 유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원격의료를 시행하기 위해 갖춰야 할 시설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인 골격을 정부가 만들어 제공해도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한 내부적 소프트웨어는 각 병원의 몫이다. 따라서 자본력과 기술력의 차이는 원격의료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기본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환자 진료내용에 차이가 의원과 비교해 현저하게 우위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로 동일 출발선에서 원격의료가 시행된다면, 실질적으로 대형병원을 위한 제도나 마찬가지라는 의원의 볼멘소리가 그리 틀린 것도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자본과 기술력으로 그렇지 않아도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진 중소 병·의원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단순한 문제로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더 싼 값의 비용으로 많은 국민이 앓고 있는 만성질환의 관리를 위해 원격의료의 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나 정작 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어떤 언급이나 법적인 조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면진료가 아닌 원격의료로 파생되는 진료의 책임문제, 안전성 확보, 검사의 신뢰도 문제, 환자의 지도 문제 등 다양한 측면을 충분하게 고려한 다음 경제성을 고려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재정을 우선해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려는 정부의 방식은 순서를 역으로 진행하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편의를 위한 제도인지 재정 절감을 위한 수단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의원급 의료 기관이 과다한 시설 투자를 포기한다면, 일차의료에서 담당해야 할 만성질환의 관리체계에 심각한 공백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의료 정책 방향과는 상당히 멀어지게 되고 대형병원을 더욱 비대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종속은 더욱 심화하게 될 뿐이라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원격의료 체계의 구축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며, 아울러 적정한 진료 수가의 확보에도 노력해야 한다. 

3. “의료 정보의 표준화”를 만들어 의료 기관 모두가 공히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환자의 진찰 및 의료 장비를 이용한 검사에서 파생되는 의료 정보를 표준화해 의사 누구든지 활용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정확한 해법이 필요하다. 정보의 해석이나 판단에 부가적으로 특별한 장치나 장비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재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원격의료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많은 원격의료 산업에 진출한 회사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정보의 해독이 특정한 장치와 특정 기관에 한정된다면, 정보의 가치는 현저히 낮아지고 활용도 또한 제한적일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정보의 표준화가 선행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

4. “의료법 개정”을 통한 제도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문제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불법이다. 이것을 합법화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이 위에서 언급된 사안들의 사전 해결이다. 법률로 명시된 제도를 변경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진정으로 국민과 의사 그리고 정부 모두가 만족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화와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추진은 최악의 결과를 만들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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