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선일 외과 교수 "추측성 판단 등 근거 미약한 의료 감정 위험…체계화된 기관에서 감정의 관리·교육해야"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료 소송 증가와 함께 의료행위 결과를 둘러싼 각종 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의료 감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법부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료행위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인 의료 감정의사의 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법부가 일련의 의료 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해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고 심지어 의사에게 실형을 내리는 등 의사에 대한 처벌화 경향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 의료감정이 적절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외과학회 의료심사위원회 위원인 고대구로병원 이선일 교수는 의료 소송에서 '의료감정'이 의료소송의 향배를 결정짓는 만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의료감정이 될 수 있도록 의료 감정의에 대한 체계화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일한 판결 근거되기도 하는 '의료 감정'…동료 평가 거치지 않은 감정 '위험'
의료 분쟁은 인과관계 규명이나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전문의학지식에 익숙하지 않은 법조인들로서는 문제가 된 의료행위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하게 행해졌는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인 감정의에게 감정을 의뢰할 수밖에 없다.
이선일 교수는 "감정의는 의료인이 환자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진료를 했는지에 대해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평가한다. 최근에는 진료 분야가 세분화, 고도화됨에 따라 각 분야별 전문의사에 의해 감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의료 관련 소송은 전문의학지식이 필수인 만큼 사안에 따라 의료감정 결과가 유일한 판결의 근거 자료가 되기도 해 그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감정은 대한의사협회(의료감정원, 전문의학회), 한국의료분쟁조정원, 한국소비자원, 일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및 사설 유료감정업체 등 다양한 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의협 의료감정원과 전문의학회 감정의는 보통 분야별 각 학회가 추천하는 복수의 인원으로 위원을 구성한다. 위원은 의료감정에 대한 필수 기본 교육과 더불어 대한의사협회에서 주관하는 심화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사안의 감정 시 복수의 의견을 청취하는 동료 평가(peer review) 방식으로 최종 감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의에 대한 의료감정 교육은 필수가 아니다. 따라서 법조인들이 별도로 의뢰해 감정을 하게 되는 일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및 사설 유료감정업체 등에 소속된 의사들은 감정 관련 교육은 물론 감정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동료 평가 등을 거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의료감정은 의학지식 유무에 의해 판단되는 분야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의료감정 교육과 동료 평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의사에 의한 감정은 자칫 부적절한 감정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일례로 개인 의사의 추측성 판단, 보편적 의료 수순 배제, 과정의 적법성이나 환자 특수성 배제, 근거 미약한 편견 등을 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러한 감정의견은 재판과정에서 유일한 판단 근거 자료로 채택, 결국 왜곡된 판결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민,형사적 의료사안 감정의 신중성은 차이가 없음에도 민사에서의 신중하지 못한 감정이 형사소송의 근거로 이용되거나 반대로 형사소송에서 편향된 감정이 오히려 환자의 권리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량에 따라 임의로 감정 의뢰 가능…체계화된 기관에 한정하고, 감정의 보수교육해야
실제로 이처럼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감정의의 감정 탓일까. 국내 민사 소송 인용률과 형사 처벌 비율은 해외 국가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
미국은 의료사고의 2~15%에 대해서만 배상청구로 이어지지만 국내 의료소송 인용률은 50% 안팎이다.
형사처벌 유죄율은 더욱 과도하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 대비 평균 기소율이 0.5%에 달하며 평균 유죄율도 21.7%로 높은 반면, 일본은 의사 기소율이 0.02%에 불과하고 그중 1.8%만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영국은 의사 기소율 0.01%에 유죄율 0.8%로 우리나라와의 격차가 현저하다.
이에 의학계에서는 감정의 제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의료감정을 재량에 따라 임의로 의뢰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의료감정의 전문 교육을 받고 동료 평가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체계화된 협회나 기관으로의 한정된 의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감정 사안의 최종 판결 결과를 피드백하고, 이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감정의 보수교육을 실시해 나간다면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고, 상호 신뢰를 향상해 이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원들에 대한 의료 심사 교육 확대도 합리적인 감정을 통한 상호 이해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의 제도 개선만으로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의료행위 형벌화 경향을 해소할 수 없다. 이에 이 교수는 이를 개선할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국가에서 의료분 쟁에 의한 의사의 형사처벌은 극히 드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많은 수의 의료 소송과 높은 비율의 형사처벌이 발생하고 있어 국제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정부는 의료인의 법에서 보장하는 의료행위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의료계 내에서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각 전문의학회에는 대부분 윤리위원회와 같은 의료행위 질 관리 및 감시를 시행하는 기구가 있으나 이러한 기구가 회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질 관리가 얼마만큼 이루어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따라서 주요 사안에 대해 각 학회 차원에서 철저한 관리 또는 자정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사회에서 의료 소송을 통한 신뢰 붕괴는 의료행태의 위축을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필수의료 유지에도 영향 줄 중대한 사안이며 이는 결국 의사와 환자,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큰 손실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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