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학회, 최선 다해 환자 본 의사에게 '범죄자' 낙인'…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책법 제정 필수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한 의사에게 악결과 사실만 두고 '유죄' 여부를 논하는 형사 소송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하루 평균 3명의 의사가 의료사고로 형사 기소를 당한다는 통계마저 나오는 속에 환자에게 침습적 행위를 해야 하는 외과 의사들의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해외는 의사의 전문성을 존중해 형사처벌을 '고의성'이 있는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외과의사에 징역형을 내리는 판결까지 나오면서 의사들은 위험을 기피하기 위해 비필수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악의적 행동만 기소하는 해외와 달리 형사 기소 남발…실제 유죄율 21.7% "방어진료 불가피"
3일 대한외과학회 국제학술대회 및 제75회 추계학술대회 ACKSS2023에서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의료사고 형사처벌 경향에 대한 외과 의사들의 불안과 우려가 제기됐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외과 신동우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이 굉장히 높아 수진 기회가 많다보니 의료소송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형사 소송이 민사 소송의 10배에 달한다"며 이처럼 형사 소송 비율이 더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형사고소가 민사소송에 비해 당장 돈이 들지 않고, 과실 입증 책임이 경찰과 검찰에 위임돼기 때문에 보다 쉽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형사처벌 비율도 일본, 영국 등 해외와 비교해 높게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의사 수 대비 평균 기소율이 0.5%에 달하며 평균 유죄율은 21.7%인 반면, 일본은 기소율이 0.02%, 유죄율은 1.8%였고, 영국은 기소율 0.01%, 유죄율 0.8%였다.
연세세브란스기독병원 외과 김익용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약 1000명에 가까운 전문직이 업무상과실치사상 죄로 기소됐는데, 그 전문직 중 의사의 비율이 약 70%로 높았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근무 일수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3명의 의사가 형사기소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은 1982년~2001년까지 약 30년간 25건의 의료사고에서 의료진을 형사처벌 했고, 캐나다는 1900년부터 2007년 사이 의료과오로 인해 형사 기소된 의사가 15명에 불과하며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는 단 1명이었다"며 "해외국가들은 진료의 결과가 아닌 금품 수수 및 성범죄 등 악의적인 행동만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형사소송이 진행된 것도 문제지만 실제 유죄 선고가 나오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불안이 더 높은 상황이다.
김 교수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형사 재판을 받은 의료인 354명중 67.5%에 해당하는 239명이 유죄를 선고 받았는데, 유죄를 선고받은 의사 4명 중 1명은 금고형 이상의 징역형으로 중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강제지정제로 건강보험을 거부할 수도 없고,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도 없다. 그런데 외국과 비교해 낮은 의사 업무량과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위험도로 저수가를 책정해 놓고, 환자에게 발생한 모든 합병증, 악결과 등 의료 사고를 행위당사자가 모두 책임지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악의 없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범죄화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의사에게 무리한 형사적 책임을 지움으로써 의료계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려 하는 처벌 만증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특별한 면책 신뢰관계를 전제로 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불신을 조장하게 돼 의료행위를 위축시키고 결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교수는 "형사처벌이 계속해서 나오면 그 결과는 비필수 진료로의 전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행위에 형사처벌이 남용된다면 과오나 오진을 예방하기 위해 과잉 검사 등 과잉 진료나 방어진료를 유발하고 응급의료를 기피하게 돼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사의 목적 달성을 방해해 환자와 의사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고 경고했다.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책 담은 '필수의료 육성법' 발의…"사회적 합의 필요"
이 같은 문제 의식 속에 대한의사협회 전성훈 법제이사는 그 해법으로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을 담은 특례법을 제정을 제시했다.
전 이사는 "사실 의사를 형사 고소한 환자는 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전부 행사했을 뿐이며, 판사는 의사 감정의의 전문적 의견에 따라 판결한 것이다. 감정의는 전문적 지식과 경험에 따라 소신껏 진술과 증언을 했고, 유죄 판결이 난 의사는 의료현장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라며 "그 누구도 비난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우리나라 국민은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아져 사소한 것에서도 권리를 찾으려 한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료기관 간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고, 수가와 의료전달체계로 상징되는 불합리한 의료자원 배분 역시 쉽게 개선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의료인의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 법제화가 가장 현실적 해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의협도 일찍부터 노력을 기울여 국민의힘 이종성, 홍석준 의원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등이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했다. 가장 최근인 10월 4일 홍석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해당하는 의료사고를 발생시킨 필수의료 종사자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전 이사는 "정부에서도 의료분쟁제도개선협의체 첫 회의를 열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복지부의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크다보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서야 물이 끓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만큼 필수의료 특례법과 의료분쟁 특례법에 대한 의료계의 강한 지지가 있어야 협회도 더 강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지지를 요청했다.
의료사고에서 중요한 역할 하는 '감정'…감정의사에 대한 교육·관리 필요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료사고 형사소송에서 '감정의사'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그에 대한 교육과 관리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감정을 하는 곳은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한국소비자원 ▲국내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 ▲그 밖의 사설 유료 감정업체 등 5곳이다.
경희대 의대 외과 송정윤 교수는 "의료사고 판결은 장기간 복잡한 쟁점과 다양한 근거를 놓고 다툼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 상태에 대한 진료기록과 신체 감정이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복잡하거나 논쟁적인 케이스를 단독으로 감정하기에는 여러 부담이 있을 수 있고, 정확하지 않은 감정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있어 전문가라 해도 동료평가 등의 검증 과정을 거처야 불만 없는 감정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은 전문의학회에서 추천한 의사가 감정을 진행하며 자체적인 교육과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한국소비자원 역시 감정 의사에 대한 교육을 통해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단 한국소비자원도 의료감정을 하지만, 자체 조정 사건에 관한 감정만 진행할 뿐 수탁 감정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송 교수는 "의협 의료감정원과 의료중재원과 한국소비자원은 감정의에 대한 정기적 교육뿐 아니라 감정 시 의사 한 명이 아닌 동료 의사에 의한 검토 과정을 거쳐 보완된 감정서를 작성하는 반면, 일반 대형병원과 사설 유료 감정업체는 이러한 교육 없이 단독으로 감정이 진행되고 있어 전문성과 정확성 부분에서 취약점이 있는 상태다"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반우의 정혜승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은 의협 의료감정원이나 의료분쟁조정원에 감정을 의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무조건 대학병원에 보내달라고 하는데, 지역의 3차 대학병원에는 감정의 풀이 많지 않고, 진료과가 세분화돼 있다보니 특정 감정과목 감정의가 없어 반송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정확한 세부 과목이 아닌 곳에서 감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편향된 감정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에서 감정의로 활동하고 있는 신동우 교수는 "의료에 관한 감정은 이 영역의 전문가 모두 그 감정인이 될 자격 또는 의무가 있다. 실제로 의학자가 감정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결과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명예, 재산 등에 영향을 주게 되므로 극히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그 무게를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의 편에 있는 경찰, 검찰, 법원 변호사들은 피고의 유죄를 밝히기 위해 다소 유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질문을 쏟아붓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유죄를 유도하는 듯한 질문을 50문항씩 던지는데 여기에 휩쓸려서는 안 되고, 사실과 다른 부분을 분명히 기록해야 한다. 기록에 없다고 행위가 없었다고 기정 사실화 하면 안되며, 당시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감정해야 하며, 현재의 상황, 진료지침, 교과서의 내용이 감정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추정이나 가정의 감정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 교수는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형사 소송 감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의료를 모르는 검사와 재판장이 이를 그대로 인용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며 "의사는 누구나 감정을 할 수 있지만 바르고 공정한 감정을 위해서는 교육과 자격 검증이 필요하며 감정인의 익명성이 보장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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