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그렇게 반대했거늘...문케어는 왜 '망(亡)케어'가 됐나

대형병원 공장식 검사의학만 확대...보장성 강화와 저수가 정책, 이제는 의료체계 붕괴 우려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가 다시 도마에 올려졌다. 집권 여당은 급속한 의료비 증가세가 야당이 주도했던 정책적 실패를 문제 삼고 있다. 문케어는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의료비용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었다. 전 정권의 그럴듯한 구호인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목표로 한 정책은 구호와는 달리 병원비 걱정이 많은 나라로 바꾸어 놨다.

‘문재인 케어’로 통칭 되는 정책의 기조는 전문 용어로 보장성 강화를 의미하는데 실제로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UN의 공통적인 목표이다. 생명의 위협에 대처하는 대부분의 의료가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한다는 좋은 취지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정권 재창출을 꿈꾸는 모든 정권이 내세우기 좋은 정치적 구호로도 잘 써먹을 수 있는 구호다. 

의사들은 대부분 고가검사 수요 급증 우려해 반대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가정이 곧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로 간주하는 문케어에 대해 의사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의사 집단의 우려는 비급여 고가검사가 저가 검사로 바뀌면 그동안 비급여로 인해 그나마 조절되던 고가검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실제 개별 가계 부담은 줄어드나, 나라의 의료비는 상승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가계 부담 완화가 가져올 국가적 재정 압박에 대한 경고를 외면하고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문 정부는 의사 집단이 보내는 우려의 목소리가 의료계의 정부 정책에 대한 일상적 반대 문화의 반복과 고가검사의 수가 저하로 인한 의료 수익 감소에 대한 저항이라고 무시한 것이나 다름 없다. 

우리나라의 이민자나 해외로 이주한 의사가 공공의료가 잘 발달 된 선진국에서 경험하는 것은 주치의 업무가 고가검사에 대한 환자의 요구에 거부나 불필요성에 대한 설득작업이다.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환자가 요구한 고가검사를 자제시킨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가 되려면 고가검사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제의 작동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고가검사를 원하면 보통 그대로 수용된다. 외래 진료 수가가 환자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설득을 통해 검사를 만류하는 형태를 불가능하게 하고 신속한 환자 주문형(catering) 진료가 표준(standard)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전 정권과 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70% 이상 끌어 올리고자 했다. 그러나 의사단체는 보장성 강화정책이 저가 급여검사로 전환되면 의료계는 새로운 비급여의 창출과 박리다매의 저수가 검사가 미끼 역할을 하여 과도한 검사 소비를 이미 예견하고 우려했다. 실제로 문케어 이후 대형병원은 예측대로 각종 검사가 일과 시간 이외 늦은 밤에도 검사장비가 쉴새 없이 돌아가는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문케어는 한 걸음 더 나가 집 근처에서 애를 낳고 집 근처에서 수술을 받도록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전국토의 병원화 정책도 담았다. 종합병원이 근린 생활 시설인 나라가 과연 있을지, 그리고 인력수급은 어떻게 할지 도대체 대책 없는 정책이다. 정치적 포퓰리즘 구호 수준의 의료정책에도 환자단체는 강렬한 지지를 했고 반대하는 의사 집단은 수익에만 관심 있는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됐다. 광역시 단위 의사회의 한 곳은 문케어를 망(亡)케어로 명명하고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보장성 강화와 저수가 정책 유지, 이제는 의료체계 붕괴 우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기조는 보장성 강화와 저수가 정책의 유지인데, 정부의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저수가 정책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붕괴를 우려할 지경이 됐다. 필수 의료의 붕괴라는 거시적 차원의 위협과 임상의학이 갖는 의사와 환자의 상호작용의 미시적인 단위까지 의료환경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왜곡되고 악화됐다. 

이태원 참사도 핼로윈이라는 신종 축제에 대한 대규모 집단의 운집이 예견됐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벌어졌다. 마찬가지로 고가의 검사를 저가로 변환하며 벌어지는 우려할 만한 상황도 예견이 됐음에도 보장성 강화의 수치 상승에 눈이 멀어 귀를 닫은 것이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의 그럴듯한 구호는 보장성이 높은 선진국과 같이 몇 가지 전제조건을 요구하는데 의사, 환자 그리고 사회에 대한 적절한 의료소비 규제가 동반돼야 하지만, 인기몰이 정책이 우선인 정치판에 국민의 반감을 살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저수가 정책이 불만인 의사에게 검사 제한을 요구할 수도 없고 인기몰이로 정권 재창출이 목적에 환자나 사회에 대한 소비 억제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소비에 대한 공공성과 전문성 강화는 이를 받쳐줄 의료 정책과 의학전문직업성을 이끌어 나가는 전문직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의료가 잘 발달 된 선진국에서 의사는 건강보험을 공공자산으로 보고 의료의 평등 분배의 구현을 위해 스스로 고가의 검사는 생명에 위협의 요소가 되는 심각한 질병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단순히 환자의 궁금증 해소나 의학적 근거나 부족한 환자의 요구가 우선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환자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도록 설득도 해야 하는데 우리의 의료제도가 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문케어로 뇌, 뇌혈관 MRI 등 고가검사가 급여화돼 이미 수백억이 지출됐다.

의사, 환자, 사회 모두 과도한 검사 소비도 생각해보는 의료 성과 미지수

보장성 강화는 조금 진전을 보았겠으나 의료의 성과(.outcome)는 미지수로 보인다. 의료 낭비가 아닌 성과로 연결되려면 의사, 환자, 사회 모두 과도한 검사 소비에 한발 물러서야 한다. 선진국으로 이주한 우리나라 의사가 적정 초진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처럼 많은 검사를 주문하다 의사면허기구의 자율 징계를 경험한 사례도 있다. 

신진국에서 보여주는 고가검사를 자제하는 문화는 의료 수가와 의료 표준이 우리와 다르기도 하고 의사 양성 비용을 공공이 부담하고 우리나라에 없는 좋은 의료의 표준(standards)을 위한 면허기구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사가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좋은 의료(good practice)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수준에 못 미치는 의료를 한 동료에게 계도와 강력한 행정적 제제를 부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반전문직업적(anti-professional) 주문형 (catering), 혹은 상업적 고가검사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은 강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소비자의 행태나 의료문화의 개선이나 변화는 정권 창출을 꿈꾸는 정치가나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에는 이런 의료문화의 구축을 정부도 민간도 아닌 법정 공공 전문직 기구가 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환자, 정책이 만들어 낸 현재의 의료문화는 변화가 필요한데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검사에 대해 일부 정치인은 이것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의료인의 도덕적 해이로 돌리기도 하여 문케어를 애초부터 반대한 의사들을 다시 분노하게 했다. 

노련한 정치인이나 행정관료도 반세기 이상 지속돼 온 저수가 정책으로 박리다매가 K의료의 특성이 돼 이미 심각하게 왜곡돼 있어 의료에 관한 어떤 해결책도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정치인이 의료가 유권자의 표심을 잃어버릴 각오가 돼있지 않은 한 이미 병든 의료를 치료할 정책적 처방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선진국 수준의 보장성 강화의 명제는 여, 야 모두의 공통 된 목표인데 그럼에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의료비 상승은 모두의 터부로 간주하는 것도 매우 역설적이다. 문케어에 대한 비판은 전체 의료비 총액을 보고 다시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할 사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보여주는 신속한 전문의 위주 진료의 수준은 이제 GDP 대비 8%를 돌파한 수준에 비해 월등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의 의료는 이미 GDP 대비 두 자리 수자인 10~18%로 나타나고 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가 되기에는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규모가 아직 적은 것이다. 국가적 의료비 총액의 증가는 원하지 않으며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공허한 구호와 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비 억제 해결책은 또다시 의료계의 희생이나 의료계를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해 압박하는 것인데 문 정권 집권 기간 정권에 유일하게 대항했던 의사 집단이 과거와 같이 쉽게 정부의 압박에 굴복할 시대는 지났다. 

선진국의 GDP 대비 두 자리 수자의 의료비 총액을 고려해 본다면 문케어도 가계 병원비 부담을 덜어준 것은 사실이고 약간의 보장성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미미하게 달성한 보장성 수치 상승이 국민의 건강 성과(outcome)와는 무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씁쓸하다. 문케어의 주된 정책효과는 국민의 건강 궁금증 해소를 위한 민원성 고가검사 요구를 수용해 대형병원의 공장식 검사의학으로 해결했고, 덕분에 많은 의료기관이 국제적 수준의 우수한 의료 시설을 우리 사회에 제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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