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한독 60주년을 기념하며 전 임직원과 가족이 함께 에버랜드에 모여 하루를 즐긴 적이 있다. T 익스프레스(T Express)를 간절히 타고 싶어하는 팀원의 아내를 위해 같이 동승하며 남편의 흑기사 노릇을 한 적이 있다. 고문의 나이에도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를 즐길 수 있던 것은 뉴저지에서 '식스플래그(Six Flags)' 놀이공원에 밴(Van)을 몰고 운전수 겸 보호자로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가 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지난 8월 4일 머크(Merck, 미국 외에서는 MSD)에 랩스커버리(LAPSCOVERY) 기반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바이오신약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Efinopegdutide, HM12525A)를 기술 이전했다고 발표했을 때 바로 롤러코스터 라이드(ride)가 생각났다.
LAPSCOVERY는 'Long Acting Protein Peptide Discovery Platform'의 약자로 단백질 의약품의 반감기를 늘려 약효를 지속시키고 투약 편의성을 높인 플랫폼 기술이다. 한미약품은 뜻밖에 임성기 회장이 지난 8월 2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서 신약개발 R&D가 줄어들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는데, 갑자기 내려가던 롤러코스터가 날아오르듯 비상(飛上)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여러 가지 일로 롤러코스터 타는듯 현기증도 느꼈겠지만 새로운 글로벌계약 소식에 기쁨도 엄청 났을 것 같다.
머크로부터 확정 계약금 1000만달러를 받고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로 최대 8억 6000만달러를 수령할 수 있다. 이번 계약으로 머크는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LAPSGLP/Glucagon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LAPSGLP/GCG)'의 개발, 제조 및 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인슐린 분비 및 식욕 억제를 돕는 호르몬인 GLP-1과 에너지 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Glucagon)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 작용 치료제(Dual agonist)다. 기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성분을 한미의 독자적인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돼 있다.
이 개발 후보제는 역사가 존재한다. 글로벌 제약사 얀센이 2015년 총 계약 규모 9억 1500만달러에 사갔다가 지난해 계약을 파기한 히스토리가 있다. 얀센은 비만과 당뇨를 동시에 치료하는 효능을 기대했으나 당뇨 치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 2019년에 3상까지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반환했다. 그러기에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실패한 신약 후보물질이라는 평가를 지녔다.
왜 랩스커버리 플랫폼 기술이 우여곡절이 많나?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빠르게 분해해 몸 밖으로 내보낸다. 바이오 의약품의 경우 우리 몸 안에서 흡수되는 양은 대략 5% 정도다. 단백질이나 펩타이드 등으로 만든 기존 바이오 의약품의 반감기(몸 속에서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를 어떻게 늘려줄 것인가?
일반적으로 단백질이나 펩타이드의 반감기를 늘리기 위해 페길레이션(PEGylation)으로 명명되는 PEG결합법이 있고 항체의 특정 부분(Fc 절편)에 연결시키는 방법이 있다. 다른 경쟁사 예를 들어 제넥신은 Fc 절편을 이용하여 ‘HyFc’를 만들어 반감기를 늘렸고 디앤디파마텍은 GLP-1에 페길레이션을 적용하여 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한미의 랩스커버리 기술은 짧은 단백질 의약품의 반감기를 더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적용한 것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하루에 한 번 투여하던 바이오 의약품을 2주일(혹은 4주일까지)에 한 번만 투여해도 반감기가 유지되는 효과가 있다.
물론 반감기가 더 늘어난 장점과 더불어 단백질 의약품의 중요한 개발 요소인 '제조품질관리(CMC)'가 더 어려워진 단점을 동시에 지닌다. 머크에 기술 수출된 이번 제품이 '생산 지연'때문에 2016년 얀센의 당뇨비만치료제 환자 모집 유예(Suspended participant recruitment) 이유가 된 경험도 있었다.
사실 실험실에서 만든 시약과 똑같은 약을 임상 3상 시료로 (종국에는 제품으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한미는 롤러코스터의 이런 빠르게 내려오는 아픈 경험도 가지고 있어 랩스커버리 플랫폼 적용 약물의 생산 능력이 이제는 안정적인 단계에 도달했기에 이번에는 날아오를 가능성이 더 높다.
머크 연구소의 당뇨·내분비내과 총괄 샘 엥겔(Sam Engel) 박사는 "에피노페그듀타이드의 2상 임상 데이터는 이 후보물질이 NASH 치료제로서 개발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임상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면서 "머크는 대사질환 치료를 위한 의미 있는 의약품 개발이라는 우리의 사명을 이 후보물질 개발을 계속하며 지속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한미의 권세창 사장은 "이번 계약은 비만당뇨 치료 신약으로 개발되던 바이오신약 후보물질이 NASH를 포함한 만성 대사성 질환 치료제로의 확대 개발 가능성을 인정받고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대사질환 영역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머크와 함께 혁신적인 NASH 치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故) 임성기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신약개발을 위한 R&D를 중단없이 계속 이어 나가겠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얀센이 못 본 가능성을 어떻게 머크는 보았을까'하는 것이다. 신약개발 영역에서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실패의 결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엔드포인트뉴스(Endpoints News)의 CEO이자 창업자인 존 캐롤(John Carroll)이 쓴 기사의 제목 'Merck scoops up a PhII J&J discard in a bargain-basement deal. And this time they’re shooting at NASH'가 좀 그렇다. 선급금이 다른 NASH 후보물질보다 적지만 그러나 딜은 딜이고 타이밍이 있다. "…$10 million upfront. The back end is big, …" 그래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성공하면 종국에는 큰 돈이 들어오는 계약이라는 기사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한미가 이번 계약과 동일한 NASH 치료제로 개발중인 Glucagon/GIP/GLP-1 '삼중작용제(Triple Agonist)'다. 단일 타겟 경구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삼중작용제이기 때문이다. 트리플 아고니스트는 2019년 FDA로부터 원발 경화성 담관염과 원발 담즙성 담관염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각각 지정됐다.
그러나 필자의 가장 큰 관심과 질문은 '이런 트리플 아고니스트를 뇌에 전달해 뇌염증(neuroinflammation)을 제거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없는가'다. 가장 환자가 많고 꼭 필요한 치매 치료제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해마다 연초에 제약업계의 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릴 때마다 꼭 질문을 받는다. "배 고문은 어느 제약사가 성공할 것이라 보는가?" 주저없이 "한미입니다" 같은 대답을 일관성 있게 해마다 했다.
필자의 논리는 간단하다. 글로벌 제약사가 매출의 15~20%를 연구개발에 쏟아 붙는데 지난 10년간 그 수준에 가장 근접하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사가 바로 한미이기 때문이다. R&D라는 겉포장만 있고 실탄을 투여하지 않는 제약사는 제약사라고 부르기에 민망하다.
2021년 초 그 어르신이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내가 일관성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경험적으로 2세, 3세 CEO들의 신약개발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 임성기 회장님이 걸으신 길을 좇는 CEO가 결국 한미를 이끌기를 간절히 바란다. 랩스커버리 플랫폼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고 고생한 한미가 이번 머크와의 딜을 통해 글로벌 신약으로 비상해 용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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