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 자화자찬에 빠진 중증 착각증후군, 우리나라는 정치사회 기저질환이 세계 최고

영국은 전문가대표 동참, 의사 결정의 투명성...우리나라는 청와대 하명, 전문가들이 정치에 희생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는 영국을 두고 United Kingdom(UK)와 England를 혼용해 사용한다. 엄밀히 구분하면 UK는 4개의 왕국이 모여 형성한 연합국가로 그중 England가 가장 큰 형님뻘 되는 왕국이다. 인구와 영토의 규모면에서 나머지 3개 왕국(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웰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각 왕국마다 독립된 정부를 구성해 행정자치를 운영한다. 영국 전체의 감염병 대응책을 짚어보고 우리나라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PHE 전염병 대응 독자적 실무지침 출간 모든 단계 개괄적 플랫폼 제공

‘PHE(영국공중보건)’는 영국의 건강과 삶, 그리고 건강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PHE는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영국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의 실행조직으로 전염병 대처에 대한 독자적인 실무지침을 출간했다. 이 지침서에는 전염병의 발발과 공식선언, 그리고 이에 따른 전염병 관리팀(Outbreak Control Team)의 설립과 활동에 대한 간결하고 필수적인 실무 지침(Operational Guidance)을 담고 있다. 전염병 발발과 동시에 적용될 수 있는 법조항과 협력체제, 그리고 행정자치 단위의 지역에서 역할, 타 지역으로 광역 확산과 국제적 확산 등에 대한 단계적인 대처방안에 대한 개괄적인 플랫폼(platform)을 제공한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고 난 우리 정부는 신종 전염병에 대한 어떤 표준화된 지침을 마련했는지 궁금하다. 질병관리본부나 보건복지부, 혹은 전염병 대처의 최고 실행기구라면 신종 전염병에 대한 지침서 정도는 하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에볼라 등 신종 전염병 해결사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이나 영국,  세계보건기구 등의 문건을 보면 사용할 만한 지침서가 이미 출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염병 발생 시초부터 공식 선언, OCT 구성 및 팀원별 직무 일목요연 기술

여러 가지 전염병 대처를 위한 지침서 중에서 비교적 간결하고 다양한 신종 전염병을 참고해 사용하기 좋은 지침서는 영국이 출간한 지침서로 꼽을 수 있다. 이 지침서는 전염병이 발발하면 어떤 절차와 단계를 거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돼 있다. 전염병의 발발과 공식선언, 그리고 전염병 관리팀의 구성과 직무기술이 명확하게 잘 정리돼 있다. 

전염병 대응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전염병 관리팀(Outbreak Control Team, OCT)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침서에는 OCT의 구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뿐 아니라 팀장의 선출과 팀 구성에 있어서 그 구성원은 충분한 전문성과 의사결정권 그리고 재원분배에 관한 충분한 경력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염병이 ‘심각 단계’에 도달했을 경우,  위기소통(Risk communication)에 관한 규범적 절차도 안내하고 있다.

또한 전염병 종료 12주 이내에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OCT 구성원 모두에게 배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정리돼야 하는 내용 중에서 전염병 대응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이에 따른 제언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전염병 종료 1년 내에 반드시 최대한 많은 구성원들의 검토와 동의를 받아야 한다. 청문 절차를 끝으로 전염병 대응을 위한 지침서에 새로운 내용이나 변경사항을 정리하여 담아야 하며, 정리가 마무리 된 지침서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반드시 주기적인 검토를 반복하도록 돼있다. 

OCT 핵심 역할 상황변화 주시 정확한 위험 사정 후 대중 소통과 정보 공유

OCT 구성은 감염병, 역학, 미생물학, 커뮤니케이션 담당자(communication officer), 공중보건위원장(Director of Public Health), 환경보건담당자(Environmental Health officer), 행정지원 요원 이외에 전염병의 종류에 따라 24개 관련기관 중 필요한 기관의 참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전문의나 일반의도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OCT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속적으로 상황변화를 주시하면서, 만일에 있을 상황 변화에 따른 단계별 ‘위험 사정(risk assessment)’을 정확하고 시기적절하게 내리는 것과 그런 다음에 전문 직종을 비롯하여 언론을 통한 대중과 올바르게 소통하는 것이다.  

실무지침서를 보면, 첫 번째 OCT 회의에 대한 절차적 규범을 안내하고 있다. 첫 번째 OCT 회의에서 위원장 선출과 역할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감염병에 대한 역학적, 생물학적 그리고 환경과 식품에 대한 과학적 근거의 검토와 현재의 위(풍)험 사정과 이에 따른 대처방안을 결정하고 추후 과학적 근거탐사 논의에 이어서 위험 소통; Risk Communication 에 관한 논의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소통의 대상은 대중(공중), 언론, 의료인 등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논의사항에 대한 합의를 하고 차후 회의에 대한 일정을 논의한다. 위기상황에서 소통과 관련하여 소통의 내용과 소통의 주체와 대변인(spoke person)은 반드시 합의된 사항이어야 한다. 이런 소통의 특성을 영어로 ‘Single Overriding Communication’으로 표현할 수 있다. OCT의 소통에서 중요한 점 중의 하나는 관련 기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보제공을 하고 조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위험 ‘사정-관리-소통’ OCT 3대 주요 직무 반드시 합의된 내용만 엄선 공개

OCT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우선 전염병 발발에 따른 위험 거버넌스(Governance, 治理, 지배구조)의 형성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 하에 OCT의 직무는 간략히 표현하여 위(풍)험 사정(Risk Assessment),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위(풍)험 소통(Risk Communication) 등 이 3가지 주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다양한 위험 관리에 대한 직무와  방책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대상 집단(Target Population) 선정이다. 

위험 사정(Risk Assessment)은 기업이나 투자분야를 비롯해 환경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학문 분야마다 위험 사정을 위해  여러 가지 모형들이 존재한다. 그 중 영란공중보건(Public Health England)이 채택한 위(풍)험 사정의 분류 기준은 전염병의 중증도(Severity), 불확실성(Uncertainty), 확산력(Spread), 중재(Intervention), 콘텍스트(Context) 등 5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으며, 상황에 따라 비교적 적용과 사용이 간편하다. 

위험 사정을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선제적 초기대응을 단행한 후에 상황 변화에 따라, 그리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서 반복해 지속적으로 위험 관리를 시행하는 것이다. 간단히 표현하면, 위험 사정을 통해 공중보건의 위험에 대한 가능성(likelyhood)을 신속히 판단하고, 즉각적으로 선제적 대응에 나서기 위한 것이다. 

감염병 대응 컨트롤 OCT 키 쥐고 운영 모든 민관 전문가단체 대표 동참 

영국의 OCT가 우리의 신종전염병 주무부서라고 가정한다면, 당연히 전염병 관리를 위한 OCT 구성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이 위원회에는 소위 ‘정무적 판단’을 고려하지 않은 전염병과 관련된 모든 민, 관 기관이 참여 대상이다. 특히, 전문가인 감염학, 역학, 예방의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의료인이 참가해 의견 개진과 공유, 대응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결정이 있어야 한다. 위험 소통에 대한 대국민 발표 내용은 반드시 위원회에서 합의하고 공유한 내용을 담아 공표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여행통제 결정은 질본이 내린 것인지, 아니면 보건복지부장관이나 청와대에서 내린 것인지 궁금하다. 전염병 확진자에 대한 통계를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투명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여행통제와 같은 고부담 의사결정의 투명성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청와대가 내린 것으로 짐작이 갈 뿐, 이런 결정의 배경에 어떤 명확한 근거나 공문서도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집단의 선정과 합의과정, 의제 공유에 대한 투명성이 결여돼 보이는 부분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지침서는 이와 같은 실책을 범하지 않도록 OCT 첫 회의 구성부터 의사소통에 관한 지침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위원회 참여기관에 전문의, 일반의 등 의료인이 있어야 하고 집단의 대표성을 위해 당연히 전문직 단체의 수장이나 지명된 인사가 포함돼 위촉돼야 한다. 

우한 지역 신종 전염병 확산 초기 중국여행통제 결정 위험 사정 여부 불분명 

중국의 우한에서 신종 전염병이 급속히 확산될 무렵, 중국여행통제에 대한 결정을 하려면 최소한 위험 사정을 시행했을 터인데, 도무지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신종 전염병 발발초기의 여행통제에 대한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우선 영국의 공중보건이 제시한 방식에 근거해 코로나19(COVID-19)의 위험 사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COVID 19 위험 사정(Risk Assessment) Grade 0-4
A. Severity: Grade 3, Moderate: Often severe illness occasionally with long term effects or death; 
B. Uncertainty: Grade 4, Very high: available evidence suggests hypothesis is correct
C. Spread: Grade 4, Very high: Spread is almost inevitable
D. Intervention: Grade 4, Very difficult: Remedial intervention very difficult
E. Context: Grade 4, Very difficult: Significantly raised public concern and potential and emotional pressure with the public and the media declaring antagonistic and unhelpful views.

이와 같은 사정 작업과 더불어 초기대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대상 집단의 명확한 식별이다. 당연히 노년층에 대한 관심과 노령 인구와 관계된 시설 등에 대한 대책과 고려가 병행돼야 한다. 

위험 사정 근거 중국인 입국통제 시 사전경계원칙 등 두 갈래로 압축

영국식 위험 사정을 바탕으로 고 부담 의사결정 주제인 ‘중국인 입국통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려 본다면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 즉, WHO가 주장하는 ‘능동적 봉쇄(Active Containment)’에 근거해 여행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지, 아니면 ‘사전경계원칙’에 입각해 여행통제를 단행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으로 축약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이나 이를 인용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설령 국경봉쇄를 단행한다 해도 결국 전염병의 확산은 막지 못하고 언젠가는 심화되어 지역사회 감염의 시기에 도달한다는 주장과 가깝다. 그리고 중국과 국경봉쇄에 따른 사회 경제적 이득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다는 논리로 압축할 수 있다. 더욱이 사망률도 높지 않으니 우리의 의료 수준으로 극복 불가능한 질병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능동적 봉쇄관리’로 통제 가능한 질환으로 쉽게 판단한 것이다. 반면에 ‘국경봉쇄’를 주장하는 의견을 살펴보면, 위험사정에서 보았듯이 의외로 질병의 중증도가 높고, 전례 없이 높은 확산력과 초기 당시 별로 밝혀진 것이 없는 과학적 증거로 불확실성이 매우 크고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으며 사회적 상황이 과도한 공포와 경제적 피해의식이 상존해 공중보건에 미칠 위해의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이 기반이 됐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미지의 신종 감염병’에 사전경계원칙을 대입해 내린 의사결정인 것이다. 

우리나라 지역 확산 주범 세계 최고 착각 증후군 후진 관료 문화 합작품 

코로나19 전염병의 지역 사회 확산으로 드러난 우리나라식 행정 관료와 정치인의 전형적인 증상인 자칭 ‘방역 세계 최고 착각증후군’은 우리나라 의료문화의 기저질환인 검사왕국과 의료행정낙후증이 한데 섞여 뒷받침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직적 관료문화에서 청와대에서 하명한 의견을 일개 장관이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히나 전문직 단체와의 소통을 정치적 이유로 초기부터 봉쇄하거나 의도적으로 차단한 것도 문제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착한’ 사회주의 정치인과 ‘악한’ 전문직 단체의 대립 구도로 변질돼 국가 방역체계의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지 의문시된다.

여행통제는 이제 역방향으로 흘러 100곳이 넘는 국가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자유여행을 막고 있다. 정부의 이한치한 방역 전략인 것인지, 출입국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자동 차단막’을 형성한 것이다. 자유여행을 지지하던 선량한 감염학자마저도 정치인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앞뒤 안 가리고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 비선조직으로 내몰린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의사단체가 아닌 정치인이 한순간에 비선조직으로 색을 칠해 분류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전문가들이 정치에 의한 희생양의 모습으로도, 혹은 정치가 과학을 초월하는 모습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보여 진다. 

현재 우리 정부가 보여주는 외교적 노력이나 방역활동을 보면 과연 전염병관리대책의 본질과 부합하는 일인지 의문이 든다. 세계 최고의 방역국가임을 자랑하고 조기 낙관론의 폐해를 경험하고도 이제는 세계 최고의 진단검사 능력을 자랑하는데도 우리 국민은 역봉쇄조치를 당하는 지경이 됐다.

최고의 의과학 지식과 최고의 방역능력을 뚫고 투박한 외교정책에도 쾌속 질주를 하는 신종전염병을 보며 대한민국은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천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불과 5년 전 정부의 메르스 사태 방역 무능의 민낯이 이젠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철면피로 크게 진화한 듯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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