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논의하려면, '객관적 근거' 가져오라는 정부…"2000명은 과학적인가?"

의료계, OECD 데이터 불충분성‧KDI‧보사연‧서울대 연구 왜곡 지적 무시하고 2000명 밀어붙인 정부 대화 제안에 '불신' 커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연일 의료계에 조건 없는 열린 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의대 정원 2000명 논의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져오라는 조건을 내걸고 있어 의료계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주장하는 증원 규모 2000명이 추산된 과정이 전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의사 집단행동의 최대 의제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논리가 사실상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결과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 결과에 따라 도출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정부도 과거 강경한 모습을 버리고 열린 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의대 정원 2000명 논의에 대한 입장은 비슷하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2000명 의대정원 증원을 결정했다"며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 역시 지난 8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과학적 연구에 근거해 꼼꼼히 검토하고,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 도출한 규모"라고 밝혔다. 

같은 날 박민수 2차관도 "2000명이라는 결정은 여러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이므로, 그 결론을 변경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그것을 재검토한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정부는 의료계가 먼저 2000명이라는 정부안을 무너뜨릴 과학적,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한 의대 정원 안을 제시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가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주장하는 'OECD 평균 의사 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의료 시스템을 반영하지 않은 불충분한 자료이고, 정부가 2000명이라는 숫자를 도출한 근거인 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학교의 연구 그 어디에도 당장 2000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연구의 연구자들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25학년도부터 한 해 2000명을 늘려야한다는 결론을 내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바른의료연구소 역시 정부의 근거 중 하나인 OECD 자료를 정밀 분석해 우리나라 의사 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대 정원을 늘릴 경우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의연은 우리나라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의 양은 OECD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고, 의료의 질과 건강 상태 지표 등 성과 지표 비교 시에도 우리나라가 OECD 평균에 비해 높은 점을 강조했다.

바의연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의사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적지만 활동성과 전문적인 진료능력으로 충분한 양과 질의 의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진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도 나쁘지 않다. 반면에 우리나라 의료비는 최근 급상승하고 있으며, 의료비 중 환자의 본인부담률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용선 바의연 소장도 "필수의료 몰락 이슈가 터지기 전인 2010년과 이슈가 터진 후인 2020년 인구당 전문의 수를 비교해보니 34.6% 증가했다"며 "소창과 인구 10만명당 전문의 수는 2010년 68.9명에서 2020년 115.7명으로 67.9% 증가했고, 응급의학과의 인구 10만명당 전문의 수는 2014년 2.5명에서 2022년 4.8명으로 96.2%증가했다. 그런데도 소청과 오픈런, 응급실 뺑뻉이가 발생한 것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인가?"라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지금 상태에서 의사 수만 늘리면 의료비 증가로 우리나라 의료는 붕괴한다. 의사 수를 늘리더라도 의료비가 증가하지 않고 필수의료 인력이 양산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의료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데 그 시스템 개선만으로 의대 증원 없이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지금 해야 할 것은 의대 증원이 아닌 의료시스템 개선이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의료계의 연구와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형욱 변호사(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SNS를 통해 "과학적 연구? 그런 것 있으면 가지고 와라. 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느냐"며 "정부가 근거로 내세운 세 보고서의 연구자들은 2000명 증원 모두 반대했다.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 의료계 누구? 새빨간 거짓말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정말 처음 본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차관을 믿고 뭔가 합의를 한다?"라고 되물으며 "(만약 합의를 한다면) 합의 후에 계속 거짓말을 할 게 분명하다. 교묘하게 말장난하며 거짓말을 할 게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김홍식 전 KMA POLICY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SNS를 통해 "(정부는) 의대증원을 의사와 협의하는 나라는 없다더니 (대통령) 담화 이후 갑자기 자세를 바꿔 합리적인 안을 요구하는 데 증원 수 조정안을 요구한다면 글렀다"며 "첫째 조건은 증원 백지화다. 의사협회 개선안에는 증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전 위원장은 "정부가 의사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안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되물으며 "합리적인 안의 합리 기준이 정부가 판단하는 것이면 의미가 없다. 정부가 담화로 일방적으로 자기 변론을 했듯이 의사에게도 변론 기회를 줘 공개적으로 합리성을 검증하면 된다. 의사들은 정부가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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