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돋보기]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는 어떻게 진화했나

정신질환자 강력범죄로 사법입원제 도입 여론 확산...환자단체 반발·정부는 ‘신중’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채 기자] 최근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회전을 거듭했다. 문제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것이 곧 환자 인권 침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워낙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이라 쉽사리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각 법안별로 무게를 두는 영역이 달라 조율도 필요한 시점이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을 둘러싼 주요 논쟁과 쟁점, 대안 등을 조명해봤다.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환자 자기결정권 존중 방향 개정

19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강제입원을 명문화했다. 2016년 헌법재판소는 정신보건법의 비자발적 입원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이후 전부 개정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5월부터 시행됐다.

정신건강복지법의 시행으로 강제입원 요건이 엄격해졌다. 입원에 동의하는 전문의 수를 2명으로 확대하고 서로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전문의여야 한다는 단서를 뒀다. 또한, 자타해 위험성과 입원 치료의 필요성이 동시에 충족돼야 입원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개정안은 졸속 입법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시행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현장을 반영하지 못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반발했다.

특히 의료계는 법이 시행될 경우 퇴원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를 위한다는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정신과 전문의에 대한 미흡한 법적 안전장치도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대안으로 사법입원제 도입 필요성이 공론화됐다. 사법입원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복지지원을 비롯, 재발 위험이 높은 환자에 대한 입원, 외래, 지역사회정신보건기관 등의 의무적 치료서비스 제공이 사법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도록 한다.

정신보건복지법 시행 당시 열린 ‘사법입원 공청회’에서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행정적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며 “사법입원 제도는 정신과 의사가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보호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잇따르는 정신질환자 강력범죄...사법입원제 도입 방안 수면 위

올해 초 발생한 ‘故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으로 고위험군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구축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여당도 사건 직후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TF’를 구성해 대책 마련을 고민했고 외래치료명령제강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 사례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됐다.

의료계는 치료와 인권을 동시에 확보하면서 치료중단으로 인한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사법치료제도 도입을 전제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제안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사법입원제 도입 시도가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 사법입원제 관련 내용을 포함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치료입원 심사와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입원기간 연장 심사 기능을 폐지하고 이를 가정법원으로 이관해, 일명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심사 없이는 입원기간을 연장하거나 강제입원을 시킬 수 없도록 하고 환자의 치료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는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올해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는 사실상 보류됐다.

이후 논란이 잠재워지는 듯 하다가 올해 4월 ‘진주 방화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법입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통과 필요성이 재점화됐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후 열린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강제입원 절차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위기상황에서 적절히 작동하기 어렵다”며 사법입원을 통해 국가가 강제입원을 책임질 것을 주문했다.
 
여기에 최근 윤 의원의 개정안 이후 정신질환자의 사법적 입원 도입을 골자로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또 다시 발의됐다.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은 정신질환자의 사법적 입원을 명문화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신중한 정신질환자 입원 관리를 위해 가정법원에서 입원 심사를 전담하도록 하고, 입원 경로를 자의입원과 가정법원의 심사에 의한 입원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환자단체 반인권법 지적도...절충안 도출이 ‘핵심’

하지만 환자단체 등은 사법입원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안이 반인권적 법이라며 반발했다. 지난 2월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 참여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과거로 회귀하는 법이라며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회 패널로 참여했던 이정하 파도손 대표는 “발의된 법안에 강제입원에 대한 내용만 있고 권익에 대한 부분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윤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법제처 모두 ‘수용곤란’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법제처는 “정신질환 예방·치료 등 정신질환 관련 사항은 보건복지부 소관 업무다. 행정부 소관 업무에서 행정부를 배제하고 사법부인 법원이 이를 수행 하는 것은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병원에 입원한 경험,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본 경험 등을 가진 당사자들이 제안한 법안 초안을 바탕으로 한 ‘진주참사방지법 입법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제안된 내용은 △권역별 정신질환자 등을 위한 위기쉼터·일상쉼터 설치·운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응급대응팀·정신건강상담용 긴급 전화 운영 △입·퇴원 등에 정신질환자 본인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는 절차보조서비스 신설 △동료지원가 양성·지원 등이 골자다.

전문가들은 의료계, 환자단체 등에서 각각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입법 시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절충안 도출이라고 했다.

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복지 분야 관계자, 당사자, 보호자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복지법 # 의료계 # 환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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