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사회적 정의

[딴짓 특집] NECA 김석현 본부장

'딴짓 특집'에서는 메디게이트뉴스가 지난 19일 키메스(KIMES 2017) 기간 중 개최한 '의사를 위한 특별세미나-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의 두 번째 세션 '딴짓'을 통해 만나본 분들을 소개합니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사화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사진: NECA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 김석현 본부장이 KIMES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진리와 정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시작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의 김석현 본부장.
 
언뜻 들으면 ‘딴짓’ 주제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20년 동안 기초의학을 연구하다 보건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이력과 그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설명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1992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후, 연세의대 생화학교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아 생화학분야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그 후 1999년 포천중문의대 생화학교실에 조교수로 근무하게 됐지만 좀더 나은 연구환경을 찾아 2년 만에 미국으로 떠난 그였다. 
 
하지만 그가 품었던 세계를 바꾸겠다는 큰 꿈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책입안 과정에 개입해 의료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2014년 기초의학에서 보건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펜실베니아대 의대에서 분자종양학(cancer biology)을 연구하다 10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암센터에서 연구를 계속하던 그가 지금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에서 본부장 겸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그를 만나 세미나 때 못다한 얘기를 들어봤다.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 – 객관적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한 근거 중심의 평가
 
NECA의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는 임상자료분석을 통해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적인 조언을 하는 기구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가 해당 신의료기술을 평가하고 결정하는데 있어 학문적인 근거를 확보해 제공한다.
 
보험제도 안에서 의료진 등이 사용하고자 하는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의료시장의 '게이트키퍼(gatekeeper)'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보험시장에서 의료계의 이해관계(쌍방의 입장)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접점이기도 하다.
 
다들 느끼듯이 최근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최첨단 의료에 대한 요구가 전에 없이 커졌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근거'가 중심이기 때문에 임상적 근거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최신기술의 경우는 기술의 성격상 임상적 근거를 갖추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술의 성격상 임상적 근거가 미약할 수 밖에 없는(임상 근거가 생기기 어려운) 첨단의료기술에 대한 적용기준을 어떻게 가져갈 지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한편,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에서는 연간 150건에서 250건 정도의 안건을 취급한다.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업무를 안배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의료계에서 민감한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의사와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사가 본부장을 맡는다.

또 NECA 내에는 원장과 본부장을 포함해 4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NECA에서 진행한 연구로 정책에 반영된 사례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자궁경부암(HPV) 백신 필수접종의 근거연구, 고도비만 환자에게 수술치료가 비수술치료보다 효과적이라는 근거 제시로 2018년부터 고도비만 수술의 급여화, 폐혈증환자에게서 프로칼시토닌 검사의 경제성 평가연구를 통해 적절한 항생제 중단 시기의 결정으로 큰 규모의 건강보험의 재정적 절감 효과를 가져온 사례 등이 있다. 
 
사진: NECA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 김석현 본부장 ©메디게이트뉴스

 
기초의학에서 진리를 찾다 보건에서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다
 
많이들 그랬듯 어린 시절 과학자를 꿈꿨고, 과학을 아주 좋아했다. 게다가 실제 성향도 무언가를 깊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초의학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재미를 느껴야 하고, 특히 바이오메디컬 분야는 끈기가 있고 꼼꼼해야 한다.
 
사실 의대에 진학한 건 의대를 들어가서도 기초의학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이던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흥미가 있던 터라 결국 임상이 아닌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세포주기 조절’을 전공하다 암의 발생과 연관성이 발견되면서 암 연구 분야로 진출하게 됐다.
 
연구를 하던 시절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큰 목소리를 내도 된다'고 얘기하곤 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돈다’는 진리를 말해도 다들 믿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진리'임에는 변함이 없다.
 
반면, 지금 일하는 보건 분야는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정의는 사람마다,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여기서는 목소리가 커서는 안되고 서로 대화를 통해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과학계에 있을 때는 그들만의 리그에 있었다고 하면, 이제는 일반 사람들의 리그에 뛰어든 느낌이다.
 
이곳에 와서 좋은 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가 통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에는 암세포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 생활이었다면 지금은 과하게 말하면 입에 모터를 단 것 같다. 이건 내가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인지 새로운 것을 하게 돼서 의욕적이라 그런 건지 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한편, 세미나에서 나온 질문에서도 느껴지듯 최근 의사에 대해 전에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안고 있는 '신뢰'의 문제라 생각한다. 또 결국은 '의료비'에 기인한다.
 
보험으로 운용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에 대해 의사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판단을 내리고 적절한 치료를 결정하는 것 외에도 경제적으로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의료시스템은 미국처럼 의료기관이 대부분 사설기관(private)으로 영리법인이 아님에도 사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반면, 의료보험제도에 있어서는 영국과 같은 국가주도형 제도를 택하고 있어 공익을 위한 규제로 강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제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의료보험제도의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보건 분야에서도 임상 경험은 중요
 
보통 임상의는 환자진료에 밝은 반면, 예방의는 제도 등에 보다 밝은 편이다. 보건 분야에서는 한 가지를 깊이 있게 알기 보다 여러 분야를 두루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일하는 걸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의학지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보건 분야의 경우 역시 임상 분야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환자를 보면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적용(판단)하는 것과 이론적으로만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보건 분야 중에서도 특히 복지부에 진출하려면 기초의학도 중요하겠지만 임상경험이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임상을 한 후에 예방의학이나 기초의학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대라는 걸림돌이 있어 이 부분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레지던트 과정까지 밝고 나서 기초의학을 계속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기초의학을 전공하고 나서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됐을 때의 장점이라고 하면, 의료기술의 원리(technique)에 밝다는 점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용의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과학을 대상으로 하는 논리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논리는 그 방향이 조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의사 후배들에게 "내가 지금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내 스스로 커리어 전환을 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잠재성이 높은 지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의대 교육을 거치지 않고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의학'을 무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 연구원을 하다가 보건의료로 전직을 할 수 있었고, 의사 집단이 아닌 조직으로 진출할 경우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일단 무엇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한다. 그 다음은 임상을 경험할 것을 권한다. 임상을 해야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환자 진료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일을 할 때 경쟁력이 생긴다. 박사(PhD)과정도 임상을 한 후에 취득하는 게 더 바람직해 보인다. 미국의 경우 클리닉에서 환자를 보면서 박사과정을 밟는 경우가 많아 그곳에서는 의학박사가 경쟁력이 있다.
 
의료정책이나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 혹은 그 기관에서 일하는 경로는 하나로 정해진 게 없다.

학회활동이나 위원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책 입안 등에 있어 임상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다 보면 그 길이 열린다. 위원회 활동을 하다 NECA에 재직하는 경우가 꽤 있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훌륭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답을 찾는 것이 공통적으로 중요한 사항이다. 본인 또한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지며 내가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을 닦는 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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