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정지 기각 판결문 확인해보니...'33쪽' 의대증원 근거 없다→ '37쪽' 그럼에도 의사 늘리자?

이병철 변호사 "판사는 이런 식으로 판결문 쓰지 않아…2000명 증원 근거 없는데 정부 승소 이유 밝혀달라"

서울고등법원이 5월 16일 밝힌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 기각 판결문 33쪽 내용.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법원이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지만 의료계 내에선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판결문 내용을 살펴보면 기각 결정이 내려진 부분에서 석연치 않은 내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은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근거가 더 형편없는데도 법원이 정부 편을 들어줬다"라거나 "법관이 회유를 당했다"는 취지의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의료계 측 법률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도 입장이 다르지 않다. 그는 "구회근 부장판사는 4월 30일 심문 당시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내라'는 말과 달리 5월 16일 판결에서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는 없어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판결 근거가) 180도 달라진 이유를 국민 앞에 해명해달라"고 촉구했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석연치 않은 판결 내용은 구체적으로 판결문 33쪽과 37쪽에 해당한다. 

우선 판결문 33쪽을 보면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을 증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2035년에 의사가 약 1만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 3건의 보고서에 근거해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확충하기 위해 매년 2000명을 증원한다는 산출적 계산에 기한 것일 뿐, 2000명이라는 수치 그 자체에 관한 직접적인 근거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명시됐다. 

또한 "정부가 의대증원 문제에 관해 의료현안협의체 등을 통해 꾸준히 논의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2000명이라는 수치가 현실적으로 제시된 것은 이 사건 증원 발표 직전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사실상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판결문에서도 2000명 증원의 실체적 측면과 절차적 측면 모두에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한 셈이다. 이는 정부가 이번 법원 판결로 인해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의 정당성이 부여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도 대비되는 내용이다. 

 
서울고등법원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 기각 판결문 37쪽 내용. 


그런데 의료계는 법리 최종판단 부분에 해당하는 판결문 37쪽을 보면,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33쪽에서 제시한 판단 근거와 대비되는 결론이 도출됐기 때문이다. 

판결문 37쪽에 따르면 "2000명이라는 수치 자체에 관한 근거는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이나 의사인력이 부족해진다는 점에 관해선 일응(일단)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다. 신청인들은 연구 가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다른 연구에 의하면 현재 의사인력은 과잉이라고 주장하나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관해 최소한의 근거가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판시됐다.  

그러면서 "의대의 교육과정 6년을 감안한 산술적 접근방법이 반드시 타당하진 않더라도, 그렇다고 (2000명 증원이) 절대로 취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하기 어려운 바 비록 충분치는 않다 하더라도 이 사건 처분은 일응 그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병철 변호사는 "판결문 전체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잘 쓰여졌고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37쪽 내용을 보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증거자료를 내라던 사법부는 갑자기 판결에서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판사는 절대 이런 식으로 판결문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고위 관계자도 "판결문 내용을 보면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2000명 증원 근거에 대한 입장도 번복돼 있다. 결론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재판장 회유가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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