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응급 환자들…의료진이 자꾸 폭행 당하면 환자들은 어쩌나

[칼럼] 문선욱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새벽녘, 병원 응급실은 진료에 여념이 없던 낮시간과는 달리 단순히 응급환자 치료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응급실은 그날 병원 인근 유흥가의 매출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술병에 맞아서 팔이 찢어진 사람, 구급대원이 겨우 데려온 길 가다 쓰러져 있는 사람, 음주 후에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손과 얼굴이 팅팅 부은 사람 등 수많은 주취자들에 의해 응급실은 환자 진료에 집중하기 힘든 아수라장이 된다.

주취자 중에는 과격한 사람들도 있어 응급실 근무자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다. 일단 음주 상태이다 보니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에서 진료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고,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년 전 이맘 때인 7월의 초여름 새벽 3시경이었다. 중환자 대처로 소란스러운 응급실에 환자가 접수를 거쳐 들어왔다. 환자는 오른쪽 손가락의 3cm가량의 열상이 있으나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열상은 피부만 침범한 상태였고 단순 봉합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응급실은 10분 전, 119가 이송한 중증 외상환자에게 기관삽관이 진행 중이라 열상에 대한 단순봉합을 처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응급실 의료진은 열상 환자에게 중증환자로 인해 진료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는 납득하지 못하면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보호자도 덩달아 합세해서는 거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응급환자라고! 여기 피 철철 나는 거 안보여? 당장 봉합해 이 XXX야!” 안 그래도 소란스러운 응급실이 난동과 고성으로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환자에게 설명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번 설명했다. 더군다나 기관 삽관중인 환자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상태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실려온 60대 남성으로 외상성뇌출혈(Cerebral hemorrhage, IVH), 혈기흉(Hemopneumothorax)이 발생해 혼수(Coma) 상태에 동공 산대까지 동반돼 있었다. 산소마스크로 산소농도를 최대로 올렸음에도 산소포화도가 88% 밖에 안돼 기관삽관이 시급해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찢어진 본인의 손가락이 더 중증이고 위급했다. 차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부터 꿰매라는 고성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중 환자가 물리력을 행사했다.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 1년차의 멱살을 잡으면서 벽으로 밀친 것이다. 이를 본 다른 의료진과 안전요원은 제지하려 했으나, 옆에 있는 보호자는 주먹으로 기어이 벽에 밀쳐진 1년차 전공의의 얼굴을 가격해버리고 말았다. 의료진은 바로 격리 조치와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미 사건은 일어난 뒤였다.

이번 달만 벌써 2번의 응급실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5일은 경기도 용인의 한 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낫으로 공격당해 응급수술까지 받아야했고, 24일은 부산에서 응급실 방화사건까지 벌어졌다. 사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난동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어느 전문과를 막론하더라도 전공의 수련을 받은 의사들은 인턴 수련을 받으며 응급실에 근무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사태 또한 응급의학과 의사 뿐만 아닌 모든 과의 의사들이 보고 겪어봤을 것이다.

의료인 폭행의 피해자는 의료인 뿐만 아니다. 가장 큰 피해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동안 많은 대책들이 논의됐다. 의료기관 내 중상해 폭행을 입힌 사람에게 가중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제정됐고 안전전담요원이 배치된 병원도 많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벌어지는 의료인 상대 폭력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러 의료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뾰족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의료인, 특히 의사를 상대로 한 폭력에 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논문들이 발표됐고 제안된 해결책도 다양했다. 보안요원 배치나 폭력사태 발생시 프로토콜 준비, 의료인 상대 폭력에 대한 가중처벌법 도입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의료인 폭행 관련법의 병원 입구 게시나 심지어 의료인에게 환자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을 제공하는 것까지 정말 다양하다.

여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만 추가하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저렴한 진료비에 응급실 진료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비응급 환자들이 많이 내원하고, 이로 인해 응급실 인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반인이든, 의료인이든 응급실에 대해 저마다 안 좋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빨간 불빛으로 응급실 앞을 번쩍번쩍 밝히는 구급차의 행렬에 짧게 한숨을 쉬는 의료진만 힘든게 아니라는 사실은 의료진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들도 응급실에 들어오면 누가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설명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묻는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할 것을 요구받는다. 무슨 검사를, 어떻게, 왜 진행할지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못 받다보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인을 상대로한 폭력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환자들이 받는 피해를 더 키운다. 가족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데, 이를 치료해줄 의사를 폭행당하길 바라는 보호자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또 환자들이 넘쳐나는 응급실을 두고 환자 진료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동료들이 늘어나는 것을 어느 의료진이 바랄 것인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의사들이 근무 중 폭력을 두려워하는 상황은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의료진을 상대로 한 폭력은 의료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의료진을 상대로 한 폭행이 더 잘못됐다 지적하면서 대책이 더 간절해지는 이유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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