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폭력 언제까지 두고보기만 할 것인가...의료진은 목숨걸고 의료현장 지켜야 하는 현실

[칼럼]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백주 대낮에 본인의 가족을 치료했던 의료진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엽기적인 응급실 폭력이 또다시 발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정적인 제목과 사진의 언론보도들, 일이 생겨야 반응하는 보여주기식 대책들, 밑도끝도 없이 '의사들도 의료사고 내지 않냐, 당해도 싸다, 당할 만한 일을 했던 것 아니냐'는 등의 공격적인 댓글들,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건, 항상 그래왔듯이 전형적인 동일한 경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분노하는 지점은 이 사건 역시 종류만 다를 뿐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폭력의 일종이며, 앞으로도 취객들과 난동을 피우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응급실에 넘쳐날 것이다. 공권력은 눈앞의 주먹보다는 멀게 존재하고 설령 경찰이 출동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환자니까 치료는 마저 받으라고 다시 응급실에 들여보낼 것이다. 법원은 가해자에 대해 심신미약과 반성, 초범이라고 가벼운 처벌을 내릴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함과 억울함은 해결불가이고 재발 가능성이 100%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험상 계속 이야기해봤자 지키지도 못할 지침, 평가지표 등 효과도 애매한 행정업무만 늘어날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속상하고 불안하지만 맞은 사람은 억울해도 그래도 응급실은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존경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의 보장도 받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러려고 응급의학과를 했나'라는 자괴감이 드는 바로 오늘 밤에도 나에게 닥칠 현실인 것이다.

응급의료인 63%는 응급실 폭행 경험, 해결은 요원  

2018년 응급실 폭력실태에 대한 긴급설문조사에서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월 1~2회 경험하고 63%가 폭행을 경험했다고 했다. 응답자의 55%는 근무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에게 양질의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폭력이고 응급의료인들에 대한 2차 가해인 것이다. 언론에서는 매번 난리였고 정치인들도 관리감독기관도 개선하겠다고 한 목소리로 나섰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응급실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크게 봤을 때 병원 요인, 의료진 요인, 환자 요인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긴 대기시간, 붐비는 응급실, 안전시설 미비 등이 병원의 요인이라면 친절하지 않은 의료진, 부족한 설명과 진료지연 등은 의료진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환자 자체가 음주상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환자, 불만이나 공격성을 의료진에 투사하는 것은 환자요인인 것이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이 응급실과 의료기관의 폭력이기 때문에 단순한 주취자에 대한 정책 등의 단편적 접근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이다.

결국 예방가능한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기울여야 하는데, 가장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 문제점을 파악해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언론에 노출되는 응급실의 폭력은 극히 일부분으로 대부분의 폭력이 멱살을 잡히거나 뺨을 맞거나 발로 채이는 등의 경미한 폭력으로 발생하고, 그보다 더 빈번하게 폭언과 성희롱 등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 현재 전국의 응급의료현장에서 얼마나 많이 심각하게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안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표준화된 응급실 폭력신고센터 설립과 지속적 통계분석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평가지침에 폭력과 관련한 교육과 지침마련 등이 포함되면서 실제 받지도 않는 서류상 교육들만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런 형식적 조치로는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외국의 응급의료기관들도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여러 대책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쉽지 않다. 결국 해결 가능한 원인에 집중해 우선순위를 배정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물론 음주환자를 포함한 환자요인들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대책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충분한 의료자원과 안전 요원을 확보하고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한다면 병원요인의 폭력 발생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폭력 예방을 위한 응급실 안전장치와 안전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충분히 예방가능한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효율적인 재정 지원으로 눈에 보일 만큼 단기적 효과를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한 처벌의 강화에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법이 약해서가 아니라 적용을 하지 않으려 해서 문제인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처벌을 강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경우 빠른 현장정리와 격리가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처벌이 강화되고 나서는 높아진 처벌수위 탓에 검찰이나 경찰에서 입건 자체를 꺼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경미한 폭력이 훨씬 많은 지금의 상황에서 강화된 가중처벌은 오히려 법 적용의 장애가 되고 있다.

지자체와 병원장을 상대로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 물어야 

결국 누군가는 책임지고 관리하고 지원하지 않는다면 응급실 폭력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 본다. 응급의료기관의 관리감독책임은 지자체에 있지만, 의료진 중 누가 폭행당했다고 해서 관리책임을 물어 지자체장이나 병원장이 고소당하고 배상하는 일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이제는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동시에 관리감독 소흘에 대한 책임을 지자체나 병원 경영자에 물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는 피해자이고 응급실은 어떻게든 돌아가야 하니, 폭력이나 폭언에 노출된 의료진들도 다시 응급의료현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은 전무하다.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휴식과 보상에 대한 방안, 또한 진료공백을 대체할 수 있는 근무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대책이 모든 병원에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에는 금속탐지기, 공항 검색대의 전신스캔, 실탄을 장전한 안전요원 등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눈에 띄는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에 지금 현재는 접수대와 스테이션의 방탄유리, 경사로 설치, 응급상황에서 구역폐쇄를 위한 비상버튼 운영, 의료진 퇴로를 확보한 개방형 진료실 등 다양한 안전디자인 제안들이 새로운 병원들에 적용되고 있고, 이제는 우리도 이러한 안전디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응급실 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행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주장해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응급의료진들이 바라는 것은 안전한 진료환경이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아니다. 응급실 폭력은 예방했을 경우에 의미가 있을 뿐, 이미 상황이 발생한 다음에는 어떠한 조치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응급의료인들은 목숨을 걸고 근무하고 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지만 명백하게 이 모든 책임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병원의 경영진과 지자체의 책임인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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