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보학회 학술대회, 보험사 "회사와 소비자 모두 이익" 심평원 "공익 목적 활용 여부가 관건"
[메디게이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해 '데이터3법'이 통과되며 가장 분주해진 분야 중 하나가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 등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이 열린 보험업계다.
보험업계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해선 보험 보장 범위 확대 등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가 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민감한 의료데이터를 보험사에 넘기는 것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민간보험사들의 공공의료데이터 이용 요청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결정이 각각 승인과 미승인으로 갈리면서 이 문제가 재차 이슈가 되기도 했다.
5일 온라인으로 열린 대한의료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이처럼 첨예한 민간보험사의 공공데이터 활용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 환자단체, 보험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를 펼쳤다.
영국 국민 "보험상품 개발목적 활용 반대"...국민 인식 확인 후 활용 논의 이뤄져야
발제자로 나선 건강과 대안의 정준호 연구원은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운영하며 막대한 의료정보를 수집∙축적해온 영국이 지난 2016년 진행한 대국민 공공의료데이터 인식도 조사에 대해 소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국민들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공공의료데이터가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들어보기만 했다고 답한 비율이 58%에 달했다.
공공의료데이터 상업적 활용과 관련해선 상업적 주체에 의해 건강증진 연구에 활용되는 것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는 찬성(53%)이 반대(26%)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보험 상품 개발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선 오히려 반대(44%)라고 답한 비율이 찬성(26%)에 비해 크게 높았다.
자신의 건강정보가 어떠한 경우에도 상업적으로 활용되길 원치 않는다고 한 경우도 17%나 됐다.
하지만 공공의료데이터의 활용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제공돼 이해도가 높아질 경우, 상업적 이용을 포함해 데이터 활용에 대해 더욱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원은 “공공의료데이터의 활용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확인하고, 그 근거 위에 활용의 절차 및 범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관련 논의 보험사∙금융위 주도 우려"...환자들은 "기대반 걱정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김보라미 변호사는 공공의료데이터의 활용 논의가 보험사와 금융위원회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김 변호사는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논의에는 관련 의료연구와 윤리 기준에 대한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관련 거버넌스, 아젠다를 선도해야 한다”며 “최근에 전문가 커뮤니티와 유리된 채 보험사와 금융위의 선도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위는 보험사들의 핼스케어 자회사까지 허용하며 앞뒤 재지 않고 뛰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향후 관련 법령으로 선을 긋고, 전문가 커뮤니티가 연구 윤리에 대해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보험사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시도를 보는 환자단체의 입장은 복잡했다. 환자들의 혜택을 넓히는 상품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보험사의 진의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민감정보가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보험사가 데이터를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손해보는 환자나 질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서도 “이보다 더 나빠질 순 없다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보험사들은 다른 대안이 없어 과거 데이터나 해외 데이터에 기반해 보험 가입을 거절하거나 높은 보험료를 책정해왔다”며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보험사들의 이야기처럼 가입 문턱도 보험료도 낮아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이슈화를 통해 논의의 장을 만들고 국민의 우려와 기대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며 “보험사가 공공데이터를 통해 실제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을 만들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사 "회사와 소비자 윈-윈 될 것"...심평원 "공익 여부가 데이터 제공 시 중요 기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보험업계에서는 사회 전반의 보험사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은 보험사와 환자들 모두 윈-윈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생명보험 빅데이터팀 문병준 과장은 “현재 보험업계는 회사가 과도하게 늘며 고객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이에 언더라이팅 기준 확장을 통해 기존에 보험가입이 어려웠던 환자들의 가입도 받고 있지만 유병자들과 관련해선 내부 데이터가 부족해 체감할만한 정도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해외자료나 국내 의학저널에 나온 일부 통계를 갖고 조심스럽게 상품을 만들기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데이터를 갖고 직접 판단해 시원하게 보장을 넓혀보자는 것”이라며 “그러면 수익을 창출해야 되는 보험사도 이익이고 소비자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개인정보 식별과 보안 우려에 대해서는 과도한 기우라고 일축하는 한편 데이터 제공의 중요한 기준은 공익적 목적이 강한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심평원 빅데이터운영부 조일억 부장은 “지난 7월 보험사들에게 제공된 데이터는 통계적 방법으로 표본추출한 2차 통계자료라 개인을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그마저도 공공의료데이터는 폐쇄망에서 분석해야하고 반출도 심의기준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를 불식했다.
이어 “데이터 제공 여부를 결정할 때 영리 목적이냐 아니냐로 따지면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 일반적인 의학연구도 문제가 된다”며 “그 보다는 데이터가 정말 공익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음에도 데이터 제공 여부와 관련해 개별 공공기관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지워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 부장은 “법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개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심의위원회를 꾸려 결정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공공기관은 큰 틀에서 보면 제정된 법이나 정부의 정책을 실행하는 기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법은 법대로 있고, 별개로 각 기관들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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