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지난 6월 3일부터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년도 생화학분자생물학회(KSBMB) 국제학술대회에 다녀왔다. 물론 회장이신 한중수 교수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필자가 꼭 만나고 싶은 존스홉킨스(JHU) 의과대학의 테드 도슨(Ted Dawson) 교수의 플레너리(Plenary) 강의를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의가 있던 5일 학회의 마지막날 아침에 현장에 도착하셨는데 강의 전에 직접 만나 뵙고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눌 영광을 가졌다. 연배는 나보다 한 둘 위나 엇비슷할 것 같았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신경과학과를 창설한 솔로몬 스나이더(Solomon Snyder) 교수의 포닥이었다는 것을 대화 중 처음에 알려주었기에 왜 JHU가 신경과학 분야의 최고의 대학이며 도슨 교수도 그토록 오래 일했기에 최고의 전문성을 이어가는 좋은 대학이라는 감이 왔다.
뇌와 장은 발생학적으로 같은 배아세포에서 출발했기에 직접 연결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 몸의 신경계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나눠지는데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성되고, 말초신경계는 위장이나 소장과 같은 소화기관과도 연결돼 있다. 두 개의 신경계는 미주신경(迷走神經, Vagus Nerve)을 통해 복부에서 뇌간까지를 연결한다.
도슨 교수는 최근의 연구를 통해 장-뇌 연결축(the gut-brain axis)에서 장이 파킨슨병 시작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실험결과를 공유했다. 제주도 강의에서 이 결과들을 모은 논문이 지난주 수락(accept)됐기에 오래지 않아 뉴런(Neuron)에 출판될 것이라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강의의 처음 1/3 시간은 이 논문에 관해 설명했다.
뉴런 103, 1–15 August 21자에 발간될 논문 'Transneuronal Propagation of Pathologic α-Synuclein from the Gut to the Brain Models Parkinson’s Disease'이 지난주 .
단백질 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이 엉켜서 독성을 가진 형태로 변한 모습을 α-Syn PFF(preformed fibrils)라고 부른다. 이번 논문의 골자는 장에 α-Syn PFF를 주사하면 장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α-Syn이 먼저 잘못 접히고 서로 엉클어진 응집체로 바뀌어 장에서 시작해 뇌까지 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독성을 지닌 α-Syn의 생물표지자(biomarker)로 계속 129번 세린(serine)이 인산화 된 단백질을 좇았다.
미주신경절단술(vagotomy)로 장-뇌 연결축을 절단하면 같은 실험조건 상황이라도 파킨슨병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α-Syn을 제거한 마우스(Snca-/-)는 마찬가지로 독성을 지닌 α-Syn을 장에 주사해도 파킨슨병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장-뇌 연결축인 미주신경을 통하여 α-Syn PFF에 의한 촉매 작용으로 장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α-Syn이 독성을 지닌 단백질로 변하여 뇌로 올라가면서 파킨슨병을 일으킨다는 ‘브락의 6단계 스테이징’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도슨 교수가 처음 보여준 슬라이드 시작은 '위키피디아(wikipedia)'이고 제목은 ''이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뇌 부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루이소체(Lewy body)라 불리는 단백질 응집체의 구성물질이 α-Syn이라는 단백질이다. 1997년에 이르러서야 루이소체의 주요 구성성분이 α-Syn임이 밝혀졌다.
2003년 발표된 독일의 해부학자 하이코(Heiko)와 에바(Eva), 브락(Braak)의 논문에 의하면 파킨슨병의 중심인 흑질 치밀부는 파킨슨병의 초기에는 별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논문에서는 파킨슨병 환자의 α-Syn 포함체(inclusion body) 병리가 뇌간(腦幹, brain stem) 쪽에서 먼저 생성되고 피질 쪽으로 전달(spreading)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α-Syn 응집체 형성은 파킨슨병 초기에 중뇌가 아닌 미주신경(Vagus Nerve), 전후각신경핵(anterior olfactory nucleus)에서 시작해 병이 진행함에 따라 중뇌를 거쳐 말기에는 대뇌피질로 퍼져 나간다는 '6단계 스테이징 가설'이다. 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α-Syn이 뇌의 여러 부위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는 가설은 α-Syn이 한 세포에서 만들어져 다른 세포로 전달될 수 있는 대표적인 병리 기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테이징 가설에 의하면 특별히 병의 1~2 단계에서 α-Syn의 이상 축적은 설인(glossopharyngeal) 및 미주신경(vagal nerve)의 배후운동핵(dorsal motor nucleus)과 앞후각신경핵(anterior olfactory nucleus)으로 나타났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후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관찰된 것이다. 그러기에 병의 시작 단계가 앞후각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 또한 파킨슨병 환자들을 앉았다 일어서도록 해 혈압과 심박을 측정해보면 보통 환자들과 상이한 결과를 보인다는 연구도 보고됐다. 파킨슨병 환자들에게서 유독 발견되는 이런 혈압, 심박수와 관련된 자율신경계통의 이상이기에 브락의 단계 가설로 이해가 된다.
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에서 도파민 분비를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사멸하게 되면 도파민 분비의 부족으로 운동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파킨슨병의 3대 증상은 진전(震顫), 서동(徐動), 강직(剛直)이다. 이러한 증상에 근거해 파킨슨병이라는 진단명을 내리게 된다.
진전, 즉 떨림은 주로 환자가 쉬고 있을 때 나타나며 자발적인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떨림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서동이란 몸의 움직임이 느려는 것이고 강직이란 몸이 뻣뻣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행동학적 증상에 근거한 진단에 의존하는 것이 현재의 파킨슨 진단의 현실이다.
현재의 진단법으로 파킨슨병은 도파민 신경세포의 사멸이 50% 이상 진행돼야 증상이 나타나고 그 이후에 임상진단이 가능하다. 이러한 증상 기반의 진단만으로 좋은 치료가 가능할까?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부터 막을 수 있는 혁신적인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해도 이런 구시대적 환자 선별법이 치료 효과를 반감시키지는 않을까?
브락이 해부학자로서 죽은 시체 안에서 발견한 스테이징이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그런 관찰을 모두 이어서 그런 스테이징 가설을 제안했을까? 브락은 언어학자인 이보 브락(Ivo Braak, 1906~1991)의 아들이자 연극 연출가 카이 브락(Kai Braak) 박사의 형제다. 브락은 근래에 특발성 파킨슨병(Idiopathic Parkinson’s)의 원인으로 '듀얼 히트 가설(dual-hit hypothesis)'를 제안했다. 느린 바이러스(slow virus)에 가까운 알 수 없는 병원균이 비강이나 장 점막을 통해 신경계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병원균에 대항하다 결국 퇴행성 뇌질환(neurodegenerative events)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느린 바이러스'로 표현한 병원균은 요새 뜨겁게 다뤄 지는 마이크로바이옴 중의 나쁜 바이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경계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병원균(혹은 나쁜 바이옴)을 '선천성 면역(innate immunity)' 작용으로 정상적인 α-Syn같은 단백질이 대항해 싸운 것이 변해 독성을 가진 형태로 변한 모습이 α-Syn PFF일 가능성이 높다.
파킨슨병의 대표적인 특징은 흑질(substantia)의 도파민 신경 조직 퇴화로 시작하는데 왜 하필 이곳의 도파민 생성이 제일 먼저 감소하는가? 예를 보여준 PPF 같은 독성 물질의 노출만이 원인인가? 원인불명 혹은 특발성(Idiopathic Parkinson’s) 파킨슨병이라고 애매모호한 병명으로 남겨둬야 하는가?
특히 진전, 서동, 강직 전에 나타나는 증상은 주로 후각 장애, 변비, 수면장애, 우울증 등이 있다. 이러한 전조 증상들과 추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을 확률과는 높은 연관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제는 브락의 스테이징 가설이 입증이 된 마당에 장에서 시작하는 1단계의 초기 스테이징의 이상인 변비(장이 시작이기에)와 후각 장애(olfactory 시스템이 시작이기에)를 진단하고 파킨슨병의 초기 증세로 인정해 더 예방한다면 진전, 서동, 강직이 서서히 환자들에게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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