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회 삼아 국산신약 창출 나서는 김우주 교수 "국민·국가에 봉사하고 인류에 기여하겠다"

[의사들과 함께 만드는 제약바이오 R&D 강국] ②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

인플루엔자·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관심 지속 '백신혁신센터' 설립해 장기전 돌입

의사들과 함께 만드는 제약바이오 R&D 강국 
 
세계 최고 수준의 신약개발 역량을 갖추고 블록버스터 신약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의사 중 3%를 의사과학자로 키워 신약개발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사의 R&D 참여 확대는 단순히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연구참여를 통해 기존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는 환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면서 치료 기회를 제공한다. 의사는 임상과정을 전반적으로 파악해 추후 맞춤형 치료에 한 발 더 다갈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도 환자 진료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쪼개 신약개발 R&D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을 만나 신약 개발과정 참여 이유와 이에 따른 장단점, 그리고 신약R&D 참여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개선해야 할 방향성 등을 들어봤다.

①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조병철 교수  
②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
 
사진 =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정몽구 백신혁신센터장).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오기 전까지 감염병은 국내 의료계에서 소외된 분야 중 하나였다. 국내제약사들 역시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포커스를 맞춰 국산신약을 개발해왔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유행으로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 듯 하다가도 잠잠해지고 나면 개발, 투자에도 자연스럽게 손을 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세계에 발생하고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감염병 관련 백신·치료제 분야가 급부상했고 국내제약사들도 '끝까지 간다'는 미명 하에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지난해 괄목할만한 성과도 나왔다. 국산신약 32호인 코로나19 항체치료제인 렉키로나주가 탄생한 데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해 상용화를 목표로 코로나19 백신 임상3상에 돌입한 것이다. 이외에도 종근당, 대웅제약, 일동제약, 신풍제약 등 국내 제약사와 수십개의 바이오벤처들이 코로나19 경구용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국내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다수의 임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백신혁신센터장)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감염병 분야의 국산혁신신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관심과 투자가 지속될 수 있도록 기초부터 상용화까지의 감염병 분야 전주기 R&D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족한 국내 감염병 관리체계·전문인력…자연스럽게 환자진료와 연구·신약개발 활동 병행"

김 교수의 국산신약 R&D 노력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년 인플루엔자가 유행함에도 정확하게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해 몇 명의 환자를 발생시키는지 데이터가 전무했던 1999년 김 교수는 국가 인플루엔자 센터장·국립보건원 호흡기바이러스과장을 맡아 3년간 데이터 확보와 감시체계 마련에 힘썼고, 이어 신종인플루엔자 범부처 사업단 단장(2010~2016), 대한감염학회 이사장(2013~2015), 대한감염학회 메르스특별위원회 위원장(2015~2017), 대한백신학회 부회장(2017~2019), 고대구로병원 연구전담의사(2015~2018), 고려대의료원 연구조정위원회 위원(2016~2018) 등을 역임하면서 녹십자·SK케미칼·LG화학 등과 독감백신, 신증후출혈열백신, 4가세포배양 독감백신, 폐구균 백신 등 감염병 연구와 치료제·백신개발을 추진했다.

또한 메르스가 한국을 덮친 지난 2015년 메르스대응 민간합동공동위원장, 메르스 즉각대응팀장, 메르스대응 국무총리 특별보좌관은 물론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장 등의 활동을 이어가면서 바이러스 퇴치에 앞장섰다.

처음부터 김 교수가 감염병 국산신약 개발에 적을 두고 활동한 것은 아니다. 감염내과 펠로우 당시 항생제 내성 연구를 해오다가 담당 교수의 권유에 따라 호흡기 바이러스 분야에 발을 들였는데, 항생제와 달리 해당 분야의 전문의가 적고 연구활동과 신약개발R&D를 맡는 인력도 부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선구자' 역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감염내과 전문의 자체가 300여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항생제 내성, 내성 유전자 등의 분야에 집중돼 있다"면서 "당시 연구팀도 없던 인플루엔자 분야에 발을 들여 놓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학회활동과 연구에 참여했고, 많은 직책을 맡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른 내과와 달리 감염내과는 환자가 치료를 졸업(완치)한다는 개념이 있어 지속적인 수요가 없다보니 비인기, 소외된 진료과라는 인식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국민건강과 보건안보를 위해 반드시 팬데믹에 대비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필요한 분야"라며 "자본이 적고 참여할 환자가 부족함에도 연구개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감염병 의사로서 환자진료도 중요하지만 임상시험을 하지 않으면 국산신약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힘들지만 다양한 활동과 연구개발에 손을 뻗쳐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체적인 독감백신이 없으면 팬데믹 이후 국민 건강과 보건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견해 적극적으로 R&D에 참여했고, 3개월만에 국산백신 개발에 성공해 감염자, 사망자를 감소시키고 유행을 조기 종식시킨 경험이 있다"면서 "당시 힘들었지만 큰 보람이 뒤따랐기 때문에 지금도 사명감을 가지고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치료제·백신 개발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코로나19와 관련해 신풍제약 피라맥스 3상, 진원생명과학 GLS-1027 2상 등의 연구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2년전부터 연구간호사 등 40~50명의 전문인력들이 팀처럼 구성, 병원 내 소조직으로 코로나19 연구개발 활동을 진행 중"이라며 "백신접종완료율이 80%를 넘어섰고 경구용 치료제(팍스로비드)가 나와 임상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 모집 등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국민·국가에 봉사하고 인류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R&D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R&D도 '반짝' 관심 그칠까 우려…장기전 돌입 위한 백신센터 설립" 
 
표 = 백신혁신센터 구조·인프라

이 같은 감염병 연구와 관심이 '반짝'하고 그치는 것을 경계하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국산신약 탄생에 뜻을 모아 고려대의료원이 '백신혁신센터'를 마련했고 김 교수가 초대 센터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바이러스라는 감염병 병원체 특성 중 하나가 '변이'로, 공격을 하면 변이를 통해 회피하고 또다시 감염을 일으키며 생존한다. 이 같은 바이러스의 퇴치와 추적을 담당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의사가 됐다. 변신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은퇴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정몽구 백신혁신센터를 이끌게 됐다"고 말했다.

여러 신종·변종 바이러스들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진화하는데, 연구개발은 2~3년 단위로 중단되거나 퇴보하는 문제를 타파하려는 목적에서 민간 의료기관이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실제 옥스포드대학이 연구해 아스트라제네카에 넘긴 바이러스벡터 플랫폼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며, mRNA 플랫폼 역시 20년간의 기초연구가 있었기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1년만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백신은 진단키트와 달리 단기간에 기적이 나올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20~30년의 장기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며, 좌절과 실패, 다양한 경험이 합해지고 축적돼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뀌거나 담당공무원, 정책·제도가 바뀌면 과학에 기반한 연구들도 지속할 수 없고, 새롭게 모두 엎고 다시하다보니 노하우 축적도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에 다양한 R&D 사업이 있으나 분절되고 경직돼 있어 오랜기간 투자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개발 토대를 닦아놓자는 신념으로 센터가 설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대의료원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백신혁신센터는 의료원 내부 뿐 아니라 질병관리청 백신센터, 국제백신연구소(IVI)를 비롯 제약기업 연구소, 학교, 글로벌 제약사 등과 함께 운영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형태'로, 단기적인 목표는 국산 토종의 코로나19플랫폼 백신 개발, 10년 코로나·인플루엔자 듀얼 백신, 20년 장기 목표는 범용 백신 개발이다.

"백신센터처럼 정부도 길게 바라보고 묻지마식 기초연구 투자 필요, 유연한 규제혁신도 이어져야"
표 = 백신혁신센터 단기·중기·장기 목표 모식도.

그는 "5~10년 안에 또다른 팬데믹이 왔을 때 우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플랫폼으로 인류를 구하는 백신을 만들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과 자본, 시간, 인내심, 기술, 인력이 모두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연구자들이 오케스트라처럼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따라서 산학연병 연계를 통한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통해 추진할 예정이며, 연속성 있는 R&D 추진을 위해 100억원의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기부금 외에도 지속적인 펀딩전략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백신 허브 2025 전략을 보면 5년만에 백신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실현 불가능하며 자칫 예산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은 기초연구라는 '씨앗'을 많이 뿌리고 싹이 돋게 하는 토양을 다지는 게 우선이다. 센터는 자원을 잘 배분해 장기전으로 갈 것이다. 정부도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적으로 신약개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과학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처별로 몇백억씩 쪼개서 투자하고 단기 성과를 보도록 하며 결과물이 없으면 지원을 중단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글로벌 혁신신약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초원천연구에 묻지마식 투자가 필요하다는 쓴소리도 이어갔다.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와 함께 임상시험과 상용화 속도를 높이는 유연한 규제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코로나19 초기에 하이드로클로로퀸과 칼레트라가 효과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항암제나 만성질환 치료제와 달리 감염병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임상시험 모델을 수정, 보완해야 할 상황이 생기고 그 주기도 매우 짧다. 약물재창출 등 안전성이 보장된 의약품의 임상시험계획(IND) 변경이라면 식약처가 신속하게 허가해 임상시험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도 미국과 같이 신종감염병이나 테러에 대비해 빠르게 임상을 진행하는 프로토콜과 선구매협약 근거 등을 담은 법·제도,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진료를 보는 의사이자 신약개발에 기여하는 연구자로서 코로나19를 단순히 위기가 아닌 발전하는 기회 모멘텀으로 보자고 제언했다. 그는 "독감이라는 위기에서 녹십자는 백신기업으로서 그 규모가 커졌고 SK바이오사이언스도 코로나19를 만나 대형제약사로의 위용을 갖춰가고 있다. 의사·연구자들에게도 국가와 사회에 공헌할 좋은 기회"라며 "정부도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를 과감하게 뿌리 뽑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글로벌 혁신신약 탄생을 위해 연구·진료를 동시에 하는 의사와 대학병원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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