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지원책,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대책 ‘재탕’ 수준…재정 순증 없인 성공 못해

종별가산제 일괄 폐지에 순환당직제 구체적 대안 없어…의협은 특례법 받고 의대정원 확대 포기한 건지도 의구심

보건복지부는 31일 중증‧응급, 분만과 소아진료 지원체계가 중점적으로 담긴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의료계 현장 분위기는 밝지 않다. 사진은 복지부 조규홍 장관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보건복지부가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지만 각 의료기관 현장 분위기는 밝지 않다. 재정 순증 없이 지출 효율화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현장에선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필수의료에 더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한 재정 마련의 일환으로 의료기관 종별가산을 일괄적으로 폐지한 부분도 의료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는 의료인력 확충 계획과 비급여 관리 강화 내용까지 이번 필수의료 대책에 포함되면서 사실상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정책아니냐'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기존 대책 재탕 수준, 사실상 새로울 것 없어…소청과는 폐과 수순 예고
 
복지부는 1월 31일 중증‧응급, 분만과 소아진료 지원체계가 중점적으로 담긴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내놨다.
 
필수의료 강화가 윤석열 정부의 역점 사업인 만큼 지난해부터 최종 지원안에 대한 기대가 떠들석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료계는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우선 이번 개선안이 기존에 논의되고 있던 대책의 재탕 수준이라는 비판이 많다. 사실상 새로울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이경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방안이 지원책에 포함됐지만 이는 이미 예전부터 나오던 얘기다. 권역센터를 중증응급의료센터로 개편한다고 해서 현장에서 얼마나 응급의료 환경에 나아질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맹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서지영 이사장도 "중증응급의료센터는 이미 옛날부터 추진되고 있던 것이고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진료 비율 상향 조정도 이미 있던 내용이다. 원래 상종은 중환자실을 10% 확보해야 한다"며 "인력 확보를 위한 등급화 추진도 이미 있었던 내용이라 새로운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소아청소년과 관련 지원책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이 정도 대책으론 소청과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년도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임 회장은 "지난해 신생아가 25만명이 나왔다. 대부분 대형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이 이뤄졌는데, 이번 지원 정책을 보면 산과병원에 취직하기 위해 소아과 전문의를 해야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정책으론 소청과 전공을 유인할 수 없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에 불과한 정책이다. 내년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소청과는 폐과 수순"이라고 비판했다.
 
현장과 소통 부족, 일부 학회 논의 1~2회 그쳐…순환당직제 실효성 ‘글쎄’
 
복지부는 향후 순환당직제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보여주기용 대책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일부 학회와는 논의 자체가 1~2회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외과학회 홍석경 분과전문의 관리이사는 "듣기 좋은 얘기를 다 모아놓긴 했는데 현장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외과 응급의료는 협의체라고 만들어 놓고 인사하는 자리를 빼면 1회 밖에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통 부재로 인한 대표적인 문제론 ‘순환당직체계’ 도입이 꼽힌다. 복지부는 이번 지원 대책에서 권역 내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서 개별 병원에서 24시간 365일 대응이 어려운 질환에 대해 응급의료 자원 현황을 바탕으로 병원간 순환당직체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주요 응급질환에 대해 지역 내 최소 1개 병원에서는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당번 요일에 상시 당직 의사가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업이 올해부터 실시된다.
 
순환당직체계는 현재도 운영 중인 제도다. 그러나 수술하는 경우에만 최대 50만 원을 지급하고 이외 보상이 없어 참여가 저조하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질환별로 수술이 가능한 의사를 주기적으로 조사해 당직표를 짜는 것이 순환당직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외과의 경우 수술 일정이 빈번하고 세부 분과가 많아 당직 순번을 짜는 것이 어렵다는 전언이다. 
 
홍석경 이사는 "순환당직체계를 제대로 운영하려고 하면 기존과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새롭게 시작할 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빈약하다"고 말했다.
 
외과학회 이우용 부회장도 "지방에서 의사가 없기 때문에 좋은 대안이긴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잘 작동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핵심은 추가 재정 지원, 그러나 종별가산 일괄 폐지 ‘논란’…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이번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추가적인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 방향을 보면 기존 가산제도 개편으로 재정을 확보해 저평가된 분야의 보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로 이번 복지부는 이번 필수의료 강화대책에서 수술·입원 등 저평가 항목에 대한 보상 강화를 추진하기 위해 의료기관 종별 가산율을 대폭 낮췄다.
 
상급종합병원은 기존 30%에서 15%로, 종합병원은 25%에서 10%로, 병원급은 20%에서 5%로, 의원급은 15%에서 0%로 사실상 모든 종별에 대한 종별가산 일괄 폐지가 이뤄졌다.
 
복지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가산제도 개편으로 확보된 재정을 외과계 수술과 입원 등 영상· 검사 대비 저평가 분야 상대가치 보상 강화에 활용하겠다"며 "개편 이후 주기적인 분석 통해 탄력적으로 수가를 지속적으로 조정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이번 필수의료 강화 지원대책에 포함된 의료기관 종별가산율 개편안.

반면 의료계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용인시의사회 이동훈 회장은 "종별 가산이 폐지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의료계는 조단위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종별가산 폐지가 정말 현실화 된다면 필수의료 대책과 별개로 대부분 의사들에게 금전적 손실이 발생하는 만큼 걱정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추가 재정 지원 없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의 대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제언한다.  

외과학회 이우용 부회장은 "결국은 돈이 들어가는 문제다. 그런데 이번 지원정책을 잘 살펴보면 돈을 새롭게 투입하기 보단 아랫돌 빼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형식이다. 추가 재정 지원이 얼마나 더 이뤄지는지에 따라 정책의 실효성이 결정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뇌신경 질환과 응급수술, 소아 관련 수가 지원이 명시돼 있긴 하지만 이런 것들은 건수 자체가 많지 않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건수가 적어 비용 지원이 크지 않은 것들 위주로 정책이 짜여졌다"고 평가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회장도 "향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지역 간 건강 격차 해소를 위해선 기획재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 형사처벌특례법 받고 의대정원확대‧지역의사제 포기했나
 
이번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의대정원 확대와 비급여 보고 의무화 등 그동안 의료계가 반대해 오던 정책 내용이 다수 포함된 점도 의료계 내에서 반감 여론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다. 
 
복지부는 이번 지원대책 최종안에서 지역 의사 부족, 필수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등 해소를 위해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즉 의료계와의 대화를 거쳐 조만간 의대정원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의사제를 암시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복지부는 지역 전공의 배정 확대를 위해 지방 의대 지역인재 모집 확대와 전공의 배치를 연계해 의대졸업 이후에도 지역에서 수련받고 지역에 근무할 수 있도록 연속적 기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외 비급여 보고제도 시행 및 보고항목 확대도 포함됐다. 비급여 공개제도를 개선해 중점 관리 필요 비급여 항목에 대해선 가격 외 질 관련 정보(안전성, 유효성, 진료기준, 대체항목 등) 병행해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그동안 의협이 추진 의사를 밝혀왔던 '의료인 형사처벌특례법' 내용이 이번 지원대책에 포함되면서 '특례법을 받고 의대정원 확대 등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이정도면 '지원대책'이 아니라 의료계를 옥죄는 '규제대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의협은 기존에 필수의료 문제에 대한 해법 차원의 대안들을 다수 제시해왔다. 향후에도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의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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