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난 가입자-공급자, 예년보다 앞당겨진 3차 재정소위…변했지만 변한 게 없다?

SGR 모형 그대로 활용 속 밴딩 규모 여전히 '깜깜이'…3조6000억 당기흑자 반영 없인 개선 어려워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은 18일 오후 4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에서 1차 수가협상을 진행했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2024년도 수가협상 마지막 날이 밝았다. 지난해 제기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다소 개선을 이루면서 전과 다른 분위기로 시작하는 수가협상이지만, 밴딩 설정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게 의료계의 반응이다.

무엇보다 3조 6000억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당기흑자에도 불구하고 공단이 수가협상을 위한 보험재정 지출 규모를 기존처럼 2% 전후로 고정할 경우 이번 수가협상은 또 다시 의약단체 간 파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어 올해도 난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단, 제도발전협의체 통해 개선 노력…소통간담회 열고, 재정소위 시간 당기고

2024년도 수가협상에서 첫 번째로 개선된 점은 재정운영위원회 가입자 단체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공급자 단체들과 만났다는 점이다.

그간 공급자 단체들은 건강보험 재정 밴드를 정하는 재정운영위원회에 공급자 단체가 참여해야 함을 주장해왔으나, 올해 재정운영위원회는 공급자 단체를 포함하기는커녕 역대급으로 구성이 늦어지면서 우려를 샀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속한 대로 최종 수가협상 전인 5월 30일, 가입자-공급자-공단 간 간담회를 열어 다소나마 공급자단체가 의료현장 실태와 경영상황을 가입자 단체에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통간담회에 참석한 대한의사협회 김봉천 수가협상단장은 "가입자와 공급자 간에 사상 첫 소통간담회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바라보면서, "앞으로 이러한 자리가 정례화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재정운영위 구성 자체가 늦어지며 최종 협상 전날에서야 소통간담회가 열려 제한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만남 실질적인 수가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단장은 "공급자 단체의 목소리를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었다. 여러 공급자 단체와 가입자 단체가 만났다 보니 거시담론을 이야기하는 데 그쳤다"며 "서로의 어려움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분위기를 애둘러 표현했다.

두 번째로 개선된 점은 재정운영위원회의 재정소위원회 마지막 3차 회의 시간이 다소 앞당겨졌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 밴딩을 정하는 재정소위원회 개최 시간은 통상 수가협상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7시였다. 

그간 공급자단체들은 수가협상 종료일까지 대략적인 추가소요재정분인 밴딩을 알 수 없어 '깜깜이 협상'에 대한 비판을 제기해왔다. 당일 오후 7시에 열리는 재정소위 3차 회의가 돼서야 1차 밴딩이 나옴에 따라 공급자 유형별 협상이 밤샘 마라톤으로 열리곤 했던 것이다.

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재정소위 3차 회의 시간을 오후 2시로 앞당겨 1차 밴딩을 미리 공개하고 오후 7시부터는 공급자 유형별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는 "그간 수가협상과정에서 제기된 밤샘협상 탈피를 위해 제도발전협의체를 열어 개선을 도모했다. 올해는 재정소위 시간을 앞당겨서 개최하고, 공급자와 가입자의 직접소통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수가협상의 객관성과 수용성을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개선된 점은 수가모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SGR(Sustainable Growth Rate, 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수가모형에 대한 공급자 단체의 반발을 받아들여 올해 기존의 SGR 모형을 개선하고, 그 외 GDP증가율 모형, MEI(의료물가지수)증가율 모형, GDP증가율과 MEI증가율 연계 모형 등 4개의 수가조정 모형을 선정해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재정운영위원회 구성이 늦어지면서 최종적으로 수가조정 모형을 선정하지 못함에 따라 공단은 4개의 모형을 모두 참고해 합리적인 요양급여비용계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급자 단체들은 사실상 기존의 SGR 모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반응이다.

김봉천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이번 수가협상에서도 사실상 기존과 비슷한 형태의 수가 모형이 지속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수가협상단장을 했던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SGR 모형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의료계가 문제를 제기해왔던 수가모형이다. 그런데도 개선이 전혀 안되고 있다"며 공단 측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대로 밴딩 정해 놓는 방식 탈피 없인 개선 없어…"건보재정 당기흑자 3조6000억 활용해야"

이처럼 올해 수가협상은 지난해에 비해 여러 가지 개선이 이뤄졌다. 하지만 수가협상에 임하는 의료계는 그 변화가 실질적인 수가협상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급자단체와 가입자단체의 소통의 자리가 마련됐지만, 최종 수가협상 전 날 1시간 가량의 만남이 전부였고, 수가모형 개선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SGR모형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차 재정소위 시간이 5시간이 앞당겨졌지만, 여전히 공급자단체에게 밴딩을 공개하지는 않아 '깜깜이 수가협상'은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건보공단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는 수가협상 첫날부터 "건강보험 재정 당기 수지 3조6000억원을 분석해 본 결과, 지출보다는 보험료 수익에 있어 직장 보수월액이 4% 증가하고, 연말정산 보험료에서 성과급 등 평상시 반영되지 않은 것들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보험료 수입이 증가했다"며 "공급자 측에서는 재정 여력이 증가했다고 보이지만 가입자 측에서는 지출이 줄어든 게 아니기 때문에 밴드 설정을 넉넉히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밴딩 폭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지난해 건보재정 당기수지가 약 3조 6000억원임을 강조하며 그간 재정상태와 상관없이 2% 전후로 밴딩을 정해 놓는 방식을 탈피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가 없이는 그간의 개선도 모두 헛수고라는 것이 의료계의 반응이다. 특히나 밴딩이라는 절대적 기준치를 미리 정하고 이 한계선을 지켜야한다는 원칙이 깨지지 않는 한 각 의약단체 간의 뺏고 뺏기는 수가협상을 탈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의협은 '의원급 의료기관 수가인상의 필요성'이라는 자료를 통해 현재 기본진료료 비중이 37.6%에 달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기본진료료 원가보상률은 85.1% 수준임을 강조하고, 저수가인 기본진료료 보상률 85.1%를 100%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매년 17.5%의 수가인상이 필요하고 이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한다고 할 때 매년 5.5%의 수가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의협은 의원에 고용된 평균 고용인력 4인의 인건비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2023년 최저임금 인상률(5%)와 민간임금 협약 인상률(5.1%)를 보더라도 5%수준의 환산지수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협 대의원회는 올해 수가협상에서 5% 인상률을 받아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의협은 지난해 결렬된 수가협상으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봉천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수가협상단장을 처음 맡아 겪어보니 기존의 틀이 쉽게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하지만 과거에 전혀 없던 재정소위 위원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 간의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작게 나마 개선에 대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며 "또 올해는 SGR 모형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가모형을 동원해 지표를 산출하다보니 새로운 결과 값이 나오고 있어 다소나마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김 단장은 이러한 개선이 기존의 구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대다봤다.

그는 "건강보험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과 의료계 시각에는 차이가 있기 떄문에 어려움이 있다. 무너질 수 없는 벽일 수도 있겠지만 꾸준히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하루 아침에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작은 노력들이 모여 시스템을 변화시키리라 생각한다"며 "적립돼 있는 3조6000억원의 건보흑자를 이렇게 힘들 때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서로 이해 간극을 좁혀나가는 꾸준한 노력과 과정이 좀더 빨리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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