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폭력적 환자에 진료 거부권 부여...의료인 폭행 강력한 조치 필요하다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우자의 사망과 진료 지연 주장에 따른 진료 현장에서 발생한 살인미수와 방화를 보며 분조 조절의 장애가 의료인에 대한 살인 동기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진료 현장에서 폭력은 이제 일상이 돼가고 있다. 흉기나 방화와 같은 경찰력의 개입이 필요한 심각한 형사 범죄뿐 아니라 환자나 가족들에 의해 의료진에게 심적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을 던지는 다양한 일이 흔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UN 보건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의료의 보장성 강화만큼이나 폭력적 환자에 의한 의료인의 피해방지와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은 국제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현대의 복잡한 의료환경이 때로는 환자나 가족에게 무기력감과 통제 불가능 상태의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료나 진단의 지연·오류, 의료 과실, 사망, 불성실한 진료, 부적절한 통증 조절, 과도한 대기 시간, 무례함과 모욕감으로 환자와 가족의 분노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노의 표출이 제3자인 다른 환자에게까지 심각한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폭력적 환자에 대한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영국 공공의료제도에서 SAS(Special Allocation Scheme)이라고 명명되는 제도는 폭력적인 환자를 진료명부에서 퇴거시키는 제도를 근거로 하고 있다. 영국 의료는 주치의제도가 근간이고 일차진료의 주역이다. 환자가 반드시 일차진료를 거치는 명확한 의료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 영국은 안전하고 건강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해 일반의사로 표기되는 가정의학 전문의나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기관은 폭력적 환자를 즉시 경찰에 신고한 후 폭력적 환자가 일차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환자명부에서 퇴거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실행하고 있다.

단 명부 퇴거의 집행은 반드시 퇴거 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사건이 경찰에 보고돼야 한다. 이런 강력한 제도 자체가 영국 의료제도의 일부로 간주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환자명부 퇴거에는 즉각적 집행도 가능하고 일정 기간의 숙려기간을 갖고 퇴거를 시킬 수도 있다. 퇴거는 폭력적 환자 본인으로 한정하고 같이 등록된 가족은 상황에 따라 처리한다. 달리 해석한다면 의사나 의료기관이 폭력적 환자에 대한 거부권을 갖도록 하는 것인데, 반드시 경찰의 협조와 퇴거 절차에 대한 감독을 담당하는 케어퀄리티커미션(Care Quality Commission)에 보고해 퇴거의 정당성을 검토받는다. 
 
그러나 진료명부에서 퇴거된 폭력적 환자는 기본적 진료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본래 의료가 갖는 전문직업성과 배치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영국은 폭력적 환자들의 진료를 위한 특별분배제도(SAS: Special Allocation Scheme)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폭력으로 퇴거된 환자를 대상으로 특정 진료 기관을 지정해 폭력으로 퇴거된 환자가 기본적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폭력적 환자를 별도로 관리하고 이들에게 환자로서의 적절한 행동 기대치를 전달하고 가능한 한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교육해 사회적으로 진료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SAS에 의한 진료를 받는 퇴거 폭력적 환자는 자신들이 일반인과는 별도로 관리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스스로 행동 교정을 통하고 변화를 보여야 다시 일반적인 일차진료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지해 환자의 행동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일차진료에서 환자가 보여주는 폭력으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의료가 제한적이며, 의사나 진료 기관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박탈된 상황은 분명히 진료실 폭력에 대한 예방과 재발 방지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와 평등 모두 책임과 분별을 요구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계가 폭행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원하나, 보건복지부는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폭행을 제도적으로 모두 막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임을 토로했다. 복지부의 대응 방안을 보면 폭력적인 진료 현장에 대한 전반적인 조치보다는 응급실 안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진료 현장의 안전을 위한 보안 인력과 시설 강화, 그리고 비상 연락체계를 골자로 하고 있다. 흔한 폭력의 이유인 주취에 대한 처벌 강화도 언급했다. 

영국과 같이 공공성이 강한 의료에서 진료 현장에서 폭력에 대한 관용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폭력적 환자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규제가 존재한다. 진료 현장의 폭력은 응급의학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합병원 중심의 폭력대처 방안도 필요하나 의료현장의 최 일선에서 근무하는 개원의나 일차진료 기관에 대한 보호도 절실하다. 진료실 폭행의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대응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는 기계적 반응보다는 진료실 안정에 대한 치밀하고 잘 계획된 구체적인 정책적 방안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명백한 폭력인 물리적 폭행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구두 위협도 환자명부 퇴거 대상이다. 폭력에 대한 명료한 범주와 정의도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산 피해를 초래하는 모든 행동은 고의성 여부나 언어적 위협의 동반 여부나 고의성이 없어도 의료인에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전조적 행위로 간주될 수 있고 퇴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의료계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진료실 폭행의 문제를 사회 안전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자료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해 국가적 차원의 진료실 실태조사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근거로 영국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때가 됐다. 의료의 공공성 강화는 여러 각도에서 비춰볼 수 있는데, 진료 현장의 안정성 확보도 바로 의료 공공성 확보의 근간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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