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금과옥조, 정부의 당근책은 지불제도 개편과 재정 절감 목적일 뿐"

[특별기고] 이철호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 글은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이철호 의장이 각종 송년모임 등에서 이야기한 것을 직접 정리한 것입니다. 대의원회 단체 밴드와 카톡방에 올라온 글을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재구성했습니다.
 
'금과옥조(金科玉條)'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겨 꼭 지켜야 할 법칙이나 규정을 말합니다. 한나라 양웅의 극진미신에서 유래한 말로, 영어 성경의 'Golden rule(황금률)'과 비슷한 뜻을 의미합니다. 우리 의사들에게도 몇 가지 금과옥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우선 정부가 의사들을 위해서 베풀어 주는 정책이라거나 선시행-후보완 해주겠다는 말, 그리고 재정이 없어서 수가를 현실화시켜주기 곤란하다는 말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한방사나 약사 등 파라메디칼이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거나 어디까지나 의사를 도와주는 역할일 뿐, 연구 목적일 뿐(연구할것도 없는데)이라는 말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 모두와 의사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겠다거나 추후 문제점이 발생하면 법을 바꾼다거나 재개정하겠다는 말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최선을 다해 주시면 그냥 감사할 뿐이라는 말을 절대 믿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 등 정치인이 수가 정상화를 해주고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개선해 주겠다는 말 등 여러 개가 더 있습니다.
 
일례로 과거 강제조제위임제도(소위 의사만 지키는 의약분업)'를 선시행한 다음 건보재정이 위태롭다는 핑계로 수가는 다시 내려가고 처방료만 사라졌습니다. 약사들은 약료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 엄청난 조제료를 챙길 뿐만 아니라 문진 등 진료행위를 하는 판국입니다. 하지만 후보완 조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보건복지부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주식인 수가정상화가 아닌, 간식거리인 당근책을 또 들고 나왔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주어야지, 사과같이 달콤한 것을 먼저 준다는 것에 기분 상합니다. 하지만 워낙 굶은 상황이라 할 수 없이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우리 의사들의 현실이 답답하고 우울합니다. 준다고 할 때 일단 받고 보자고 하는데, 자칫 독사과가 될수 있습니다. 이런 변하지 않는 진리를 진실이라고 합니다.
 
과연 정부가 돈이 남아 돌아서 만성질환 관리제 시범사업을 제시할까요? 아니겠지요. 의사들이 불쌍해서 돈을 풀고자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를 위해 복잡한 모형을 만들 필요 없이 단순히 수가만 정상화시켜주면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요? 의료계는 금과옥조 중에 추가 내용으로 정부의 의료정책의 최종 목표는 주치의 제도와 총액계약제 등과 같은 지불제도 개편과 재정 절감에 있다는 진실을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향심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커뮤니티 케어니 한국형 ACO(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책임의료기구) 얘기도 나오는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정부가 정한 재정 한도 내에서만 책임진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의 금과옥조는 정부가 그간 취해온 카멜레온 화법을 믿지 말라입니다. 정부의 표현을 예로 들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려 중이다, 일부 그런 의견이 있다,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연구 용역중이다, 연구 결과 필요성이 인정된다, 시범사업을 고려중이다, 본 사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등이 있습니다.
 
이런 금과옥조를 알기에 대의원총회에서 만성질환 관리제도를 반대하는 의결을 해왔습니다. 총액계약제 등 지불제도 개악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면 의료계는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요.
 
첫째, 의협이 정부에 우습게 보이면 안됩니다. 힘 있는 단체로 거듭 나야 합니다. 우선 13만명의 회원 중 최소 10만명 이상이 회비와 투쟁성금을 완납하고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진료과 또는 직역의 이익을 앞세우면 곤란합니다.
 
둘째, 허울 좋은 정부 정책의 허점과 문제점을 파악해서 약점을 공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비를 투자하고 회원들의 혜안을 모아야 합니다. 정책을 선도하는 입장으로 정부에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셋째,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기초부터 하나하나 의사들과 상의해서 제대로 된 의료백년대계를 만들자고 주장해야 합니다. 의료계가 손 놓고 끌려 다니면 몇 년 뒤에는 대통령도 담당 공무원도 모두 자리를 떠납니다. 그 자리에는 상심한 국민들과 의사들의 피눈물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넷째, 결국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합니다. 의원들을 후원하고 집행부에서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법안도 만들고 콘트롤 타워를 가동해야 합니다.
 
다섯째, 칼은 칼집에 있어도 위협하는 힘이 있습니다. 만약 짧은 칼인 경우에는 함부로 뽑아서는 곤란합니다. 스스로 칼집에서 긴 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집행부는 배전의 노력으로 낮은 자세로 회원들의 힘을 한곳에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 큰 칼 뽑을 기회가 왔을 때 이길 수 있습니다.
 
여섯째, 우리 의사들의 문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개척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국민 대다수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는 힘듭니다. 언제든 우리가 합당한 명분을 얻을 때(명분을 만들수도 있읍니다)가 우리 모두 합심해야 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의료계가 끝까지 함께 하고 의료를 바로 세워야 할 소명이 있음을 말씀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새해 '기해'년에는 기필코 각종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칼럼(기고)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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