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필자는 세미나에서 청중들에게 초반에 비디오 하나를 보여준다. 1961년에 나온 영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초반 클립은 파란 배경에 하얀 점들이 나타난다. 비디오를 정지시키고 청중들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추측하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조용하다. 몇 초 더 진행하면 아래 하얀색의 'Westside Story'가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파란 바탕의 하얀 점들은 비로소 뉴욕 맨해튼 남단 건물의 사진으로 바뀐다. 그러면 '와~'하고 청중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카메라는 점점 맨해튼을 서서히 움직이며 웨스트사이드로 이동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우리가 파란 바탕의 하얀 점들만이 보이는 그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식 시장도 그렇고, 서울의 부동산 시장도 미리 예측할 수만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신약개발에서도 개발을 위해 선택한 후보물질이 어떻게 진행될 것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면역항암제의 대표인 PD-1 항체 머크(북미권 외의 국가에서는 MSD)의 '키트루다(Keytruda)'와 BMS의 '옵디보(Optivo)'는 태생부터 달랐지만 운명적인 라이벌이다. 옵디보는 메다렉스(Medarex)의 형질전환 생쥐 플랫폼을 이용해 비교적 신속하게 태어났지만, 키트루다는 오가논(Organon)이라는 네델란드 제약회사의 보스턴 연구소에서 마우스항체를 한 땀 한 땀 바꿔 인간화 단클론 항체(-zumab)로 태어났다.
최근 키트루다 매출액이 라이벌 BMS의 옵디보를 앞섰다. 키트루다는 2018년 2분기 실적에서 16억 6700만 달러(1조 8679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옵디보의 매출액은 16억 2700만 달러(1조 8231억 원)에 그쳤다. 태생에서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에서도 후발 주자인 키트루다는 2014년 시판된 이후, 매 분기마다 꾸준하게 매출액이 증가하면서 올해 2분기에 처음으로 옵디보를 추월한 것이다.
2000년 초까지 형질전환 생쥐 플랫폼으로 PD-1에 대한 개발을 주도해 온 BMS 이외에도 복수의 PD-1/PD-L1을 타깃으로 한 면역체크포인트 억제제들이 개발되고 있었다. 2003년 네델란드의 오가논에서 시작한 PD-1 프로그램은 자가면역질환의 일부로 출발했다. 목표로 선정한 작용제(agonist)대신 강력한 길항제(antagonist) 작용을 지닌, PD-1에 대한 인간화항체는 2007년 11월에 오가논이 쉐링-플라우(Schering-plough, S-P)에 합병돼 넘어온다.
이렇게 회사가 병합되면 엄격한 프로젝트 검토 미팅을 거쳐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그 미팅 준비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필자가 기억한다. 특히 전화 회의(Tele Conference)는 언제나 시간 잡기부터 힘들었다. S-P 면역학의 중심인 DNAX/S-P Biopharma가 있던 샌프란시스코, 새로운 장소 네델란드와 뉴저지의 시차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필자가 귀국했기에 사실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다.
'이 슈퍼스타는 2007년 오가논이라는 네덜란드 제약회사를 인수하면서 묻어온 것이라 셰링 플라우 내부에서도 관심없어 하던 프로젝트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S-P에서도 보석을 못 알아보았을까. 필자는 사실 규명을 위해 그 당시 이 과제를 주관하던 S-P 옛 동료들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해 진실을 알고 싶었다.
진실은 항암제 부문에서 우선순위는 S-P바이오파마의 'GITR 작용제'보다 오가논에서 진행해오던 'PD-1항체'의 우선순위가 더 높게 매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가논 출신의 안드레스 반 엘자(Andres van Elsas) 박사가 PD-1 과제를 주도하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 계획 승인(IND)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벌써 S-P 바이오파마가 'GITR 작용제'를 연구개발하고 있던 사실이 필자에게는 놀랍고 새삼스러웠다.
야속하게도 키트루다의 운명은 롤러코스터(Roller-coaster)를 타고 있었다. 오가논이 사라진지 정확히 2년 후인 2009년 11월 MSD가 S-P를 합병하면서 머크에 PD-1 과제의 권리가 넘어갔다. 새로운 머크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리뷰 후 당시 개발본부장인 피터 김(Peter Kim) 박사가 과제를 아예 죽여(kill) 선반에 두었다.
"하도 관심이 없어서 2010년 당시 이름으로 'Keytruda'를 헐값에라도 팔려고 하고 있었다. 그해 8월 당시 면역항암제 분야 선두였던 BMS에서 면역항암제로 매우 좋은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게재했고, BMS가 2006년 IND를 제출하고 개발하던 PD-1항체(현재 옵디보)가 유망하다는 소문을 듣고 비로소 MSD는 총력을 기울인다()."
MSD는 2010년 BMS의 임상 1상 결과가 소문으로 알려지자 마자 바로 태세를 전환해 PD-1 항체를 선반에서 꺼내 임상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2010년 12월에 FDA에서 임상 진행을 승인받았다.
경쟁사보다 뒤늦게 PD-1 항체의 개발에 뛰어든 MSD는 최소 4년 전 IND를 진행한 선두주자 BMS를 따라잡기 위해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진행했다. MSD는 임상 1상에서 전례없이 많은 1235명의 흑색종과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모집해 소위 '적응적(Adaptive)' 임상 1상을 진행했다. 이는 여태까지 진행된 임상 1상 시험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보통 20~40명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기에 임상 1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암이 아닌 다른 질환에서도 3상까지 마쳐야 나오는 환자 숫자이기 때문이다.
MSD의 임상개발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하였을까. 2006년 FDA에서 허가받은 당뇨병약 '자누비아'가 3년을 뒤졌지만 노바티스 '가브스'를 따라잡은 임상의 경험이다. 임상 디자인을 2상과 3상이 겹치게 하는 적응적 설계는 임상시험 중 발생 가능한 요소들을 사전에 지정하고, 임상시험 중 축적되는 자료의 중간분석을 통해 임상설계 요소들을 변경하는 효율적 의사결정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런 임상 디자인의 핵심 아이디어는 최적 용량 선정을 위해 실시된 2상 임상시험의 자료와 3상 임상시험의 자료를 합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2상과 3상 사이에 비어 있는 시간을 없애고, 2상에서 사용된 자료의 일부를 3상에 사용함으로써, 시간과 비용 모두의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디자인이다. 이런 머크의 경험 때문에 미국 FDA는 결국 2010년 '적응적 설계(adaptive design)'에 대한 가이드라인 'Guidance for Industry: Adaptive design clinical trials for drugs and biologics'를 발표했다.
더군다나 MSD는 2013년 1월 전이성 흑색종에 대해 FDA의 획기적 치료제 지정(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이라는 새로운 개발 및 심사절차를 통해 경쟁사인 BMS에 뒤늦은 시간을 또 한번 단축했다. 2012년 통과된 'FDA 안전성 혁신법(FDASIA)'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생명에 위험이 매우 큰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진행된 예비단계 임상시험에서 기존 치료제들에 비해서 괄목할 만한 개선효과가 입증된 신약후보물질을 대상으로 빠른 개발 및 심사를 돕기 위한 제도를 이용한 것이다.
2010년 12월 FDA에서 임상 진행을 승인 IND를 받은 3개월 후 첫 임상 환자에 투여해 2014년 초 FDA에 신약허가신청을 제출한다. 불과 3년 만이다. 미국에서 개발에 앞서 있던 BMS의 옵디보를 제치고 3개월 빠르게 2014년 9월 FDA로부터 허가를 받는다. 놀랍고도 숨가뿐 역전의 드라마였다.
'키트루다'의 성공은 미래 예측의 결과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미래 예측의 실패 케이스로 거론될 만하다. 하지만 잘못된 의사 결정에 연연하지 않고, 경쟁사의 동향에 따라 신속하고도 유동적인 의사결정의 태세 전환과 공격적인 추진력을 보여준 최고의 성공 케이스에 해당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간 사이언스 섬의 과감한 다리 짓기 의사 결정과 이를 인정하고 투자한 비즈니스 섬의 추진력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리해서 멋진 'S2B'가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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