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콜레스테롤 낮추는 약을 처음 만들었나?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7월 3일자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NYT) ‘오비추어리(Obituary)‘에 베테랑 과학기자인 지나 콜라타(Gina Kolata)가 쓴 기사가 실렸다. ‘Obituary‘는 부고(訃告)의 일종으로 중요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면서 추앙하는 글이다. 지난 6월 16일, 뉴저지 와이코프(Wyckoff) 사는 87세의 한 노인이 콜로라도(Colorado)에 거주하는 아들 집을 방문하던 중에 포트 콜린스(Fort Collins)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들이 이 노인의 죽음을 NYT에 알려와 콜라타가 부고를 쓴 것이다. 이 노인의 이름은 알프레드 알버츠(Alfred W. Alberts) 였다. 

고(高)지혈증이란 나쁜 콜레스테롤 저밀도 지방단백질(Low-density lipoprotein, LDL)과 중성지방(Triglyceride, TG) 수치는 높고, 좋은 콜레스테롤 고밀도 지방단백질(High-density lipoprotein, HDL) 수치는 낮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를 개선하려면 식습관 조절과 적절한 운동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뚜렷한 효과를 얻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는 약이다.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복용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그럼 과연 누가 콜레스테롤 강하제를 처음 만들었는가? 여기에 콜레스테롤 신약개발의 역사에 감춰진 히어로가 있다. 바로 부고의 주인공, 고인이 된 알프레드 알버츠이다. 

알버츠는 바이오-제약 영역의 많은 전문가들과는 달리 의사(M. D.), 박사(Ph. D.)라는 타이틀을 이름 앞에 가지고 있지 않은 과학자였다. 처음에 그는 연구실 테크니션(Technician)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머크(Merck)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CEO)가 된 로이 베질로스(Roy Vagelos)와 함께 추앙받는 생화학자가 됐다. 베질로스 박사는 NYT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나의 오른손이었다. 우리는 쌍둥이와 같은 형제였다”라는 한 마디로 알버츠를 추모했다. 

알버츠는 1953년 브루클린 칼리지를 졸업한 후, 2차 대전에 복무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아이빌(G.I Bill)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메릴랜드대학에서 박사학위 중이었다. 그러나 학위과정을 채 마치기 전, 지아이빌 지원이 끊기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담당 과목을 가르치던 유명한 생화학자 얼 스태드만 박사(Dr. Earl Stadtman)가 한 “직장을 찾는 사람은 미국국립보건원(NIH)으로 오라”라는 한 마디에 곧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NIH로 옮기게 됐다. 알버츠는 마침 1959년 NIH에서 연구를 새로 시작하는 베질로스의 테크니션이 돼 콜레스테롤 생합성 경로를 연구했다. 

1966년 베질로스가 세인트 루이스의 워싱턴대학으로 옮길 때에 “자네는 학위가 없기에 이를 중시하는 대학에 따라오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함께 옮겨간 후 조교수를 거쳐 부교수의 지위에 올라 ‘테뉴어(Tenure)’를 받았다. 1975년 머크 연구소도 함께 옮겨왔다. “자네는 이미 ‘Tenure’를 받은 안정적인 교수이기에 제약사에 따라오지 말라”는 또 한 번의 주의가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연구에서 쌍둥이와 같은 형제였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같이 연구해왔던 지질대사 분야의 새로운 약인 로바스타틴(lovastatin) 개발에도 알버츠의 공헌이 큰 기여를 했다. 머크의 연구소장인 로이 베질로스는 “로바스타틴은 알버츠의 발견이다(That was Al’s discovery”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알버츠는 소위 이 혁신적 신약개발의 무명 용사이자 감추어진 영웅(an unsung hero)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머크의 탐색연구실에서는 4천여개의 미생물 및 곰팡이 배양액을 검토했다. 이중 한 배양액의 약효 스크리닝 결과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효과가 발견됐다. 그 배양액은 알버츠가 책임자로 있는 생화학 실험실에 도착했다. 하이드로옥시메틸글루타릴 코엔자임A 환원효소(HMG-CoA reductase)는 콜레스테롤 생합성에 가장 중요하기에 소위 ‘페이스메이커(pacemaker)’ 효소로 불렸다. 이를 억제하는 천연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알버츠 연구실에서 확립한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제 시험법은 로바스타틴의 효과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험결과 정말로 배양액속에 콜레스테롤 생합성을 억제하는 물질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자 알버츠와 연구원들은 꼬박 1년이 걸려 약효성분을 순수하게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알버스-쇤버그(Albers-Schonberg)의 분석능력에 힘입어 이 성분의 구조는 쉽게 밝혀졌다. 콜레스테롤 생합성을 억제하는 기능성은 곧 동물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머크는 이 물질을 동물을 사용한 안정성 실험에도 통과해 곧 1980년 임상시험 단계로 진행했다. 이 모든 연구개발 책임자(PI)는 알버츠였다. 1992년 미국제약협회는 로바스타틴의 발견자에게 발견자상(Discovery Award)을 수여했다. 이 때 상을 받은 세 과학자는 알버츠, 패쳇(Patchett), 알버스-쇤버그였다.

‘미스터(Mr.)’ 알버츠의 ‘Obituary’를 읽으며 세대가 지나가며 발전하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머크와 쉐링(Schering)은 둘 다 독일이 원뿌리인 제약회사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연구소와 판매망을 가지고 있던 두 독일 회사는 미국 정부에 재산이 귀속되고 전쟁이 끝난 후 주인이 없는 순전한 미국의 주식회사가 됐다. 머크와 쉐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을 개발할 때 미생물 연구의 기초를 닦았고, 그 후 여러 유명 항생물질을 개발했다. 특히 쉐링은 젠타마이신(Gentamicin)으로 성공하여 회사가 쉐링-플라우로 성장하는 기초가 됐다. 머크는 미생물 배양액에서 항생물질만 찾는 것이 아니라 구충제, 고지혈증치료제 등을 발견한 독특한 전력을 가진 회사가 됐다. 

1986년 필자가 뉴저지 블룸필드(Bloomfield)에 소재한 쉐링-플라우에 입사했을 당시 미생물 연구부(Department of Microbiology)는 그때도 존재했다. 물론 부사장은 Dr. 클로드 내쉬(Claude Nash)였지만 고인이 된 알버츠처럼 M. D., Ph. D. 라는 타이틀이 이름에 붙지 않은 과학자들이 미생물 연구부 디렉터를 맡고 있었다. 연구를 떠나 도서관장을 맡았던 제리 웨그만(Jerry Wegman)과 밥 패튼(Bob Patten) 등의 타이틀이 ‘Mr.’였던 것이 기억난다. 필자가 제약사 입사했을 때 이들 ‘무관의 제왕’들은 은퇴 전 마지막 피치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임연구원들 이상은 Ph. D.나 M. D. 와 같은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는 학위가 없이 연구의 주축을 담당하던 옛 세대가 물러나며 학위를 가진 새 세대가 이미 주류를 이루는 새 세대가 시작된 때이었다. ‘Mr.’ 알버츠와 같은 무관의 과학자들이 기초를 쌓고 성과를 만들어 점점 크게 성장해 빅파마가 됐다. 

알버츠와 필자의 나이 차이가 한 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년이다. 우리 제약사도 언제 ‘Mr.’ 알버츠와 같은 분들이 연구의 중심이 된 때가 있었나 계산해보면 빅파마와 우리나라 바이오/제약사 간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빅파마에서 연구개발에 종사하던 분들의 모임인 재미한국바이오제약협회(KASBP)의 회원들이 한국제약사에 들어온 지가 12년이 됐다. 필자와 한 세대 차이가 나는 연구자들이 중심을 이루어 곧 간극을 빠르게 좁힐 것이다. 한국의 바이오-제약 산업은 새로운 에코시스템을 통해 이제 도약을 시작했다.

‘Mr.’ 알버츠의 ‘Obituary’를 읽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세대는 지나가며 새로운 주인공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새로운 창약(創藥) 역사를 만든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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