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설립, 불난 집 인근 호수 놔두고 지하수 파는 꼴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8화. 공공의대 설립 계획 

지난 8월 1일 교육부가 마련한 심의위원회에서 공공의대 설립 계획이 가시화됐다고 한다. 공공의대란 국가가 의사를 무료로 양성하는 대신 해당 의사는 일정 기간동안 공공의료기관 의무근무를 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공공의대는 의료취약지의 의사인력 수급대책을 보완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공공의대 정원은 지난해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그대로 가져온다. 이에 따라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수는 예전과 동일하다. 의사 정원이 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다수의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다.
 
우선 왜 공공의료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해지고 급격한 위기에 처했는 지를 알아야 한다. 2003년 의학전문대학원 체제가 도입되면서 군대를 가지 않은 남성 의사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후반부터 공공의료의 큰 축을 담당하던 공중보건의사(공보의)의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의료취약지에 주로 배치되던 공보의가 턱없이 모자라게 됐고, 이는 곧 의료취약지 증가로 이어졌다.
 
2015년 소수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학전문대학원이 의대로 다시 전환했다. 의대가 다시 정착되면 공보의 부족에 따른 의료취약지 의사 인력 부족 문제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대 설립은 빨라야 2022~2023년이고 첫 의사가 배출되는 시기는 4년 뒤인 2026~2027년이다. 그야말로 '뒷북'을 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의료취약지 필수의료인력 양성’이 제대로 될 것인지에 있다. 비슷한 방식의 ‘군의대위탁교육제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부실한 군의료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시행되는 제도로, 매년 일부의 사관학도생들에게 의대 위탁 교육을 시행해 군의료에 적합한 의사를 양성한다. 이들은 5년간 의무복무를 한 다음 자유롭게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전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위탁교육생 100명 중 필수의료 영역의 외과,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의사는 단 2명(2%)에 불과했다. 그리고 대부분 군의료와 크게 관련이 없는 피부과, 재활의학과 등의 인기과로 몰리는 현상을 보였다.

일반 군의관 복무기간이 3년인 것을 감안하면 군의대는 고작 2년의 추가 근무를 더 시키고 2%의 필수인력 양성을 위해 막대한 국가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과 운영에 최소 3000억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이 비용에 맞는 의료취약지 인력 양성 효과가 뒤따를지 상당한 의문이 드는 이유다.

공공의대 설립 계획은 '불난 집의 불을 끄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지하수를 파고 있는' 형국이다. 불난 집 바로 인근에 호수가 있는 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30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의사 인력 증가속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공의대를 설립하기 전에 이미 넘쳐나는 의사들을 적절히 활용할 방안을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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