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민 선한 손길이 9억원의 소송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1. 한의사의 응급 매뉴얼이나 요청에 응하지 말자. 2. 법적 면책이 명확하지 않다면 응급상황에서 나서지 말자.

[칼럼] 김효상 재활의학과 전문의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김효상 칼럼니스트] 2018년 5월 부천의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고 쇼크에 빠진 환자가 발생했고, 근처 가정의학과 의사가 한의원의 요청을 받아 도움을 주러 간 사건이 있었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의원급에서 흔하지 않은 에피네프린까지 챙겨가 심폐소생술을 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는 살지 못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해당 한의사 변호인 측은 응급 상황 시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는 의료과실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자신의 환자는 아니었지만 응급상황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 선의로 도움을 주러 갔다. 이는 사실 국가에서 표창을 해야 하는 선하고 의로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유족들이 봉침시술을 한 한의사뿐 아니라 선의로 도움을 준 가정의학과 의사에 대해서도 9억원대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의사라면 이를 보고 누구나 의문이 들것이다. 응급 상황이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보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선한 행동을 한 사람을 소송이라는 법적 분쟁에 말려들게 했을까.

그런데 이번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가 감사하게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기사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를 소송에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영상을 보면 응급 상황에서 가정의학과 의사가 ‘에피네프린’을 들고 가는 게 늦어,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던 것 같다.”
“처음부터 오지 않았다면 몰라도 응급 상황에 갔다면 보증인적 지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처음부터 환자를 구해주러 가지 않았으면 된 것을 갔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예 가지 않았으면 늦게 갔느니 이런 말이 안 나올 텐데, "이미 간 이상 언제 갔어도 늦게 갔으니 당신 책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보면 다음과 같이 돼 있기는 하다.
제5조의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아마 소송을 건 측은 가정의학과 의사의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의료인들은 대부분 주위에 응급한 상황이 생기면 우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나서고 본다.
 
비행기에서든 KTX에서든 우선 환자를 보는 것이 의료인의 천직이겠거니 하고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무턱대고 선한 도움을 줬다가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변호사님과 소송이 패키지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 오전에 한 의료인의 경험담을 읽었다. 비행기에서 호흡곤란과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어서 기내에 배치된 주사를 주고 증상이 호전됐는데, 그 후 한 이야기가 가관이었다.

환자는 의사에게 본인에게 놓은 주사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주사로 인해 문제나 부작용이 생기면 연락하겠다며 의료인의 개인 연락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처럼 의사라면 누구나 선의로 도왔다가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다면 몰라도 응급상황에 갔다면~"이라는 말을 법정에서 들을지 모른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고 몇 년간 법정에서 싸워야 할지 모른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의료인이 배울 것은 다음과 같다.
1. 한의사로부터 전달된 응급 매뉴얼이나 요청에 응하지 말자.
2. 법적 면책이 명확하지 않다면 응급상황에서 처음부터 나서지 말자.

응급상황에서 선의로 나선 의료진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나면 무리한 소송을 건 주체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법률적 불이익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제도적 보완이 없고 무분별한 소송만 난무한다면 아마 선한 일을 하는 사마리아인들은 줄어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제 때 도움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 불보듯 뻔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봉침시술 # 한의사 # 가정의학과 의사 # 김효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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