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권고 후 병원 나선 지 5분 만에 심정지로 사망…대법원 "의료진 불성실 진료 아냐"

사건 당시 환자 수인한도 넘어설 만큼 의사의 처치 및 대처 불성실하지 않았다 판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감기 몸살로 진료받던 환자가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권고에 병원 밖을 나섰다가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한 사건에 대법원이 의사에게 과실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 주목받고 있다.

이는 의사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원심을 뒤집은 것으로, 최근 잇따른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서 환자를 타 병원으로 전원 보낸 의사의 판단이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인지 여부 논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 1부는 해당 사건의 고인인 A씨의 보호자가 지역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이 내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감기몸살로 의원 방문해 진료, 전원 권고로 나온 뒤 5분 만에 심정지…119구급차로 이송

4일 의료계에 따르면 A씨(당시 66세)는 2018년 2월 21일 감기몸살 증상이 있어 보호자와 함께 B씨가 운영하는 내과 의원에 내원했다. B씨는 비타민C를 섞은 아미노산 영양제를 A씨에게 투여하고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제재도 주사로 투여했다.

A씨는 수액을 투여받던  오전 11시 40분경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이때 수액 투여가 중단됐다. B씨는 청진기 등을 이용해 A씨의 호흡곤란 원인을 천식으로 파악하고 덱사메타손을 주사로 추가투여했다.

하지만 A씨는 그 후에도 가슴 답답함을 호소했고, 결국 B씨는 A씨와 보호자에게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전원을 권고했다.

A씨는 전원 권고를 받은 후 환자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옆으로 쓰러지듯 눕고 10초 후 다시 일어나 앉아 있다가 보호자의 부축을 받아 의원을 걸어 나왔으나, 5분이 지나지 않아 의원 건물 앞에 주저앉아 쓰러졌고 119구급차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했다.

A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다가 12월 20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원심, 전원 결정 후 환자 상태 관찰 미흡‧이송 과정 관여하지 않은 점 들어 ‘불성실한 진료’

원고는 의사 B씨가 A씨의 경과를 관찰하고 119에 신고하는 등 구급차로 A씨를 상급병원에 이송하지 않았다고 과실을 주장했다. 원심은 만약 B씨가 119를 불렀더라도 A씨가 상급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심정지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B씨의 잘못으로 A씨가 사망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원심은 B씨가 A씨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했을 때 혈압, 맥박, 호흡수 등을 측정하지 않았고, A씨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았으며 택시를 불러 A씨가 즉시 탑승할 수 있게 하거나 구급차를 호출하는 등 방법으로 이송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당시 원심은 "이는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된다"며 사망한 A씨의 유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2018년 12월 13일 대법원은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해 그로 말미암아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했다는 점은 불법행위의 성립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 넘어설 만큼 '불성실한 진료'는 아냐…"원심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은 당시 B씨가 임상의학 분야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부합하는 진료를 한 경우 불성실한 진료를 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법원은 "수인한도(피해자가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는 의료진에게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수인한도를 넘어선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는 환자에게 발생한 신체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진료 그 자체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명시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재판부는 "A씨가 의원에 내원했다가 주사를 투여받은 후 전원 권고를 받고 부축받아 걸어 나왔다면, 원심이 들고 있는 것처럼 A씨의 혈압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거나 이송 과정에서 의사 B씨가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행위만으로 A씨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A씨가 병원 문을 걸어서 나올 정도의 상황이라면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불성실한 진료'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이와 달리 판단해 B씨에게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피고 일부 패소를 결정한 원심을 파기해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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