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경증 분류 책임 가진 응급의학과 의사…'방어진료' 하거나 '응급실 떠나거나' 선택 몰려

'대동맥박리' 경증 '급성위염'으로 오인한 응급의학과 의사 징역형 선고 일파만파…전문의들 사직·개원 고민, 전공의 지원율 '바닥' 우려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언제 어디서 어떤 질환의 환자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응급실. 과거력에 대한 정보도 없이 몇 가지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온 환자를 제일 처음 만나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3월 대구시에서 17세 소녀가 추락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 온 사건 당시 해당 환자를 제일 처음 진료한 대구 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해당 소녀를 전원 조치한 것을 놓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 

아직 수사 결과가 발표되진 않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정확한 정보도 없이 다양한 환자들과 함께 섞여 들어온 중증응급환자를 정확하게 분류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개인 의사에게 묻는 행태에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에 대해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환자를 혼수상태(COMA)에 빠지게 했다는 이유로 당시 응급의학과 1년차 전공의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에는 아예 '징역형'으로 형사처벌이 명시되면서 그간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속으로 고민만 하던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실질적으로 이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장 2024년도 전공의 모집에서도 이러한 기피 현상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응급의학과 분위기는 암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중증응급환자 '무조건 수용' 대책 내놔…경증환자 악결과 시 책임은 누가?

20일 의료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해당 사건이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원인은 최근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의료기관에 환자 수용거부를 금지하고, 중증응급환자는 수용을 강제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먼저 대구는 '대구 책임형 응급의료대책'을 통해 초응급 중증 환자일 경우 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 수용가능 여부 확인 없이 곧바로 이송병원을 선정해 통보한 뒤 즉시 이송하면 해당 응급의료기관이 무조건 환자를 수용하도록 했다.

정부 역시 지난해부터 준비해왔던 응급의료 제48조의 2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 거부 불가' 조항의 후속 조치인 '응급의료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당한 사유' 기준을 정해 의료기관의 수용 거부를 막으려 하고 있다.

당일 근무 중인 응급실 책임 의사가 해당 '정당한 사유'에 따라 환자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하며, 응급의료를 거부할 시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관련 기사:"중증응급환자, 응급실 수용능력 없어도 일단 받아라?…응급의학과 사지로 모는 법"]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경증과 중증환자가 섞여 매일 전쟁통과 같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갑자기 중증응급환자 강제 수용 명령이 찾아왔을 때  한정된 자원을 가진 응급실은 경증환자 대신 해당 중증응급환자를 먼저 진료하게 된다"라며 "하지만 병실도 부족하고 의료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당시 경증이라고 분류된 환자를 귀가조치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뒤늦게 찾아온 중증응급환자는 빠른 처치로 목숨을 건질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먼저 응급실을 찾았던 환자 중 당시 경증으로 분류돼 귀가 조치되거나 의료적 처치가 뒤늦게 진행돼 환자가 사망하는 등의 악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라고 되물었다.

응급의학과 의사에 형사책임 묻는 현실에 '분노'…응급실 이탈, 전공의 지원 기피 '현실화'

중증인 대동맥박리를 경증인 급성위염으로 오진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대법원으로부터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불안은 현실이 됐다. [관련기사:응급실서 대동맥박리 오진한 전공의에 '징역형' 선고…"응급의료에 대한 사망선언"]

해당 선고가 알려지며 이미 의사 커뮤니티와 각종 SNS는 응급실을 떠나겠다,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격한 반응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사법부의 이번 판결을 믿을 수가 없다. 응급실 뺑뺑이가 문제라며 의료기관에 환자를 강제 수용한다더니 이번 판결로 응급실 운영이 불가능해질 것 같다"며 "모든 흉통 환자에게 CT검사를 하라는 판결이다. 그래 놓고 심평원은 또 삭감을 할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앞으로 어떤 환자가 찾아올지 걱정이 된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미 주변 대학병원 동료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떠나 개원을 고려하고 있고, 응급의학과를 지망하거나 수련중인 후배들은 이미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진단과 최종진단은 다를 수도 있는 것으로 응급실에서 완전무결한 최종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응급의학과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없다. 우리 2500명 응급의학 전문의들과 460명의 전공의들은 모두가 범죄자일 수 밖에 없다"고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응급의료전달체계 논의, 응급실 수용거부금지 논의에서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는 더 이상의 논의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논의체 위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회 류현호 공보이사(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도 "참으로 암담하다"며 "이번 판결로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으로 인력이 빠져나갈 것이고,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적체와 과밀화 문제가 더 악화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회는 환자 중증도 분류가 어려운 질환들이 있음에도 응급의학 의사의 판단에 대해 면책을 주지 않으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학회는 2024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모집을 주시하고 있다.

과거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은 것만으로도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이번 사건은 아예 의사가 ’징역형‘으로 형사처벌 유죄를 받아 그 파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류 이사는 "소청과는 이대목동병원 의사들이 무죄였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전공의 지원율이 확 떨어졌다.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더 심화되는 상황에서 2024년도 전공의 지원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와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