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난치질환’ 인정 못 받는 1형당뇨병…환자들, 상급종합병원에서 쫓겨난다

치료 돕는 최신 기술 도입돼도 현장에서 적용은 '그림의 떡'…"교육 불가능하고 의료비 부담 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중증도가 높고 치료에 필수적인 각종 기기의 가격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1형당뇨병이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함에 따라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쫓겨나고 있는 현실이 지적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형당뇨환자의 치료를 돕는 새로운 의료기기가 도입돼도 우리나라 환자들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대한당뇨병학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년간담회를 개최하고 1형당뇨병 환자들의 치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뇨병학회는 일찍부터 1형 당뇨병의 중증난치질환 인정 필요성을 촉구해 왔다. 우리나라 당뇨환자가 6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유병률이 급증하고 있지만 국내 당뇨환자 대부분이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학회는 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적시에 인슐린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망이나 영구적인 장애 등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치료 중단할 경우 사망·심각한 장애 큰 '1형당뇨병'…'경제적 부담' 충족 안된다?

진상만 환자관리간사는 "1형 당뇨병 환자수는 약 2만명으로 '희귀질환'의 기준은 넘어서지만, '치료법은 있으나 완치가 어렵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수준의 증상을 보이며 진단 및 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수준을 보이는 질환'인 '중증난치질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상만 간사는 "인슐린 펌프를 쓰는 1형 당뇨병 환자들은 반나절 정도만 인슐린 투여가 중단돼도 케톤산증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있는 질환이다"라며 "그 외에도 생명을 위협하는 저혈당 및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합병증이 다수 발생하므로 경증으로 분류된 다른 유형의 당뇨병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된 다른 질환과 중증도를 비교해봐도 중증도가 낮지 않다. 그와 관련된 연구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근거가 부족할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1형 당뇨병이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상만 간사는 "그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연간 의료비가 낮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국가에서는 연간 의료비 100만원 이상의 경제적 부담이 드는 질환을 '중증난치질환'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말로 1형당뇨병이 연간 100만원 이하의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치료 필수적인 고가의 연속혈당측정기, 자동인슐린주입기 '요양비'로 분류

진상만 간사는 "현재 1형 당뇨병 치료에 필수적인 고가의 연속혈당측정, 자동인슐린주입 기기는 '요양비'로 분류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슐린만 포함된 1형 당뇨병의 연간 '의료비'가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진상만 간사는 "1형 당뇨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대부분의 비용은 인슐린이 아니다. 연속혈당측정과 인슐린 펌프, 자동으로 인슐린 용량을 결정해주는 기기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크다"며 "기술의 발달로 기능이 향상된 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 등이 등장하고 있지만 기능과 상관없이 똑같은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현재의 표준 치료인 자동 인슐린 주입은 여전히 고가의 본인 부담금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4시간 연속혈당 측정기에 드는 비용은 월에 11만원이고 간헐적 스캔형 연솔혈당 측정기도 월에 5만7000원 수준이었다. 이런 비용만 해도 연 100만원이 넘는다. 

진상만 간사는 "최근에는 자동 인슐린 주입 알고리즘이 탑재된 인슐린 펌프가 개발됐는데도, 개발 이전의 기기 부품 원가를 기준으로 책정된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인 5년간 170만원만 인정하고 있다. 이에 가장 단순한 형태의 연속혈당측정과 연동되는 인슐린 주입 속도를 조절하는 기기도 5년간 2000만원으로 1개월에 약 33만원 정도를 환자가 본인 부담해야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연간 100만원이 안되는 병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큰 상황이다.

중증난치질환에서 제외된 1형당뇨병, 상급종병 진료 기피…환자 치료권 박탈

진상만 간사는 학회가 굳이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에 포함시키려는 이유에 대해 "현재 1형 당뇨병이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되지 않다보니, 1형 당뇨병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제한받고 있다. 상급종합병원들은 전체 환자 수 대비로 중증난치질환의 비율을 의무적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중증난치질환'이 아닌 1형 당뇨병 환자를 기피하게 된다"고 밝혔다.

1형 당뇨병은 과거와 달리 최신 기기에 대한 장시간의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를 보면 볼수록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아예 내과에서 1형 당뇨병을 전혀 보지 않으려는 상급종합병원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 간사는 "사실상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쫓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쫓겨난 환자들을 1차 의료기관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속혈당측정이나 자동인슐린주입 등은 고도화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1차 의료기관에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3차 병원에서도 관심이 있는 병원 일부에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진 간사는 "3차 병원에서 1형 당뇨병을 보는 의사들은 사실상 '열정페이'를 받고 일을 하고 있으며, 본인은 '열정페이'를 감당하더라도 병원이 적자가 되니까 굉장히 난감한 입장에 있다"고 현실을 전했다.

인공췌장기기 개발돼도 환자가 '독학'해야…기술 개발돼도 '그림의 떡'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에 튜브 없이 인슐린을 자동 주입하는 '인공췌장' 기기가 개발 돼 1형당뇨병 환자들의 기대가 컸으나 국내에서는 사용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이미 미국당뇨병학회는 모든 1형 당뇨병 및 그에 준하는 인슐린 분비결핍이 있는 당뇨병에서 자동 인슐린 주입을 표준치료로 추천했고, 대한당뇨병학회 지침도 같은 방향으로 바뀔 예정지만 정작 국내 의료현장에선 '그림의 떡'이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에 자동인슐린주입 기기가 빠르게 도입되지 못한 까닭에 대해 진상만 간사는 "일차적인 문제는 의료진에 의한 교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기가 의료비가 아닌 '요양비'로 지정돼 있어서 의사는 환자에게 '알아서 기기를 구해 사용법을 독학으로 익히라'고 하는 체계다"라고 지적했다. 

학회에 따르면 인슐린 펌프를 제대로 시작하려면 탄수화물 계수 계산과 통상적인 진료와 당뇨교육의 수준을 현저히 넘어서는 수준의 지식이 반드시 요구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인슐린 펌프를 교육과 함께 처방하는 제도 자체가 없으니 환자나 의료진이 인슐린 펌프의 사용법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동 인슐린 주입(AID) 알고리즘이 탑재된 인슐린 펌프가 국내에 출시돼도, 국내 현실은 마치 기본적인 운전 방법을 전혀 몰라 자율 주행차가 나와도 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진상만 간사는 "또 한 가지는 역시 비용의 문제다. 1형 당뇨병은 의료비 부담이 아주 큰 질환인데 정당한 의료비로 인정받지 못해 ‘중증 난치성 질환’에 빠졌고, 그로 인해 환자들의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내 1형 당뇨병 환자들이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 1형 당뇨병의 '중증 난치성질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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