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병원의 전망 키워드는 '환자 중심'... 공항처럼 운영하고 의료 사고는 당당히 밝혀라

에른스트 카이퍼스 에라스무스 대학병원장· 리처드 부스먼 미시간대학병원 리스크관리 전 책임자

사진: 사진: 에른스트 카이퍼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병원장.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미래 병원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공항에 들어가자마자 항공권을 받고 비행기가 이륙할 게이트로 향하듯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환자가 진료를 예약하고 특정 게이트로 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진료를 해줄 의료진을 만날 수 있다는 비전이 제시 됐다. 의료 사고에 대응하는 병원의 역할로 의료사고 원인을 분석해 재발을 막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실질적인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 구현이 미래 병원의 역할로 떠올랐다.

대한병원협회는 4일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창립 60주년을 맞아 '전환기 한국 의료 새로운 비전과 전략적 리더십'을 주제로 '제 10차 KOREA HEALTHCARE CONGRESS 2019'를 개최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에른스트 카이퍼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병원장과 리처드 부스먼 전 미국 미시간대학병원 리스크관리 책임자가 미래 병원이 추구해야하는 방향에 대해 주제 발표를 했다.

공항처럼 게이트로 가면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진이 기다리는 병원

에른스트 카이퍼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병원장은 앞으로 병원의 형태는 환자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며 미래 병원의 모습을 게이트에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공항에 비유했다. 그는 또 5G 적용 등을 활용해 진료과 간 활발한 협진을 하고 수술실, 타 병원 등 시간과 장소를 뛰어 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진료를 하는 병원의 미래에 대해 설명했다.

카이퍼스 병원장은 "병원은 수백 년간 진화를 거듭해 왔다. 앞으로 병원은 수도원이나 절 같은 곳이 될 수 있고 게스트하우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며 "현재 병원도 비교적 최근 들어 새롭게 진화한 형태다"고 제시했다.

카이퍼스 병원장은 "19세기 말 이후부터 많은 의사들이 서서히 본인의 전문화 된 분야를 가지고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마취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미생물 개념도 도입했다. 엑스레이 사진 촬영도 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러한 의학의 발전으로 기대 수명은 25년 만에 6.3년이 증가했다. 1년마다 두 달 반씩 늘어다는 사실은 대단한 것이다"고 말했다.

카이퍼스 병원장은 "최근 유럽에서는 상당히 큰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바이오메디컬 분야 수학,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진료과는 더 세분화 되고 간호사 등 병원 인력도 점점 전문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병원은 환자에게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각의 의료진이 아니라 팀으로 진료하고 치료를 한다. 오케스트라가 협업을 하듯 말이다"고 강조했다.

카이퍼스 병원장은 "의료비 지출 증가 도표를 보면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특히 의료 관련 비용이 점점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GDP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 그만큼 헬스케어 분야는 점점 더 노동 집약적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2018년 네덜란드에서는 헬스케어 분야 종사자가 7명 중 1명이지만 2040년이 되면 4명 중 1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이퍼스 병원장은 "의료비가 증가하고 있고 여행과 이주도 늘고 있다. 앞으로 진료는 병원 내 입원한 환자 대상이 아니라 외곽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5G 네트워크를 도입하면 집과 다른 병원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아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대형 병원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협진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 병원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면서 병원 구조를 바꿨다. 외래 환자, 각 과별로 입원환자 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병원 구조가 특정 분야고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환자에 따라 구분 된다는 의미다. 변화가 시설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병원은 공항처럼 운영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병원 정문으로 들어오면 공항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고 항공권을 받듯 환자는 진료를 예약한다. 그리고 안내 받은 게이트로 가면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진들이 진료를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카이퍼스 병원장은 "의료통합통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 약국까지 연결 돼 진료 처방, 약제 처방 등이 환자 별로, 병동 별로 가능하다. 우리 병원은 환자의무기록을 담당하거나 IT를 담당하는 직원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각 진료과는 직접적으로 이사회와 연결 돼 있다. 내부적으로는 각 과별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미래 병원에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진료부 과가 각자의 예산을 가지고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상호 교류하는 팀으로 운영돼야 한다. 오케스트라 음악을 연주하듯 협진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리처드 부스먼 전 미시간대학병원 리스크관리 책임자.

의료사고에 대응하는 병원의 역할은 원인 분석으로 재발을 막는 것

리처드 부스먼 전 미국 미시간대학병원 리스크관리 책임자는 환자 안전, 의료 질이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며 의료사고에 대응하는 병원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과, 법적 소송, 배상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해 의료사고를 현저히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사고에 개방적으로 대하고 원인 분석을 위한 보고를 늘리고 조사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서 환자 안전을 제고하고 의료 질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스먼 전 리스크관리 책임자는 "약 20년 전에 소송 변호사로서 오하이오 주와 미시간 주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쌓으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환자가 다치거나 소송을 걸었다 하면 변호사가 이를 처리한다. 변호사는 의료진의 모든 실수를 부인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정말 부인을 잘했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내가 왜 부인하면서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동일한 의료 피해를 목격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스먼 전 책임자는 "위험한 의료 관행으로 환자들에게 21번 소송을 당한 정형외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병원 시스템이 알아서, 자신의 변호사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법정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둘수록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2001년에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고 미시간대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환자와 싸우지 말고, 의료사고로 감정과 돈을 쓰지 말고 의료 관행을 개선해보자고 권고했다"며 "물론 비판에 직면했다. 당신 때문에 5년 뒤에 우리 병원이 파산날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 사례를 말하고자 한다. 미시간대병원에서 태어난 마리라는 아기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금요일 오후 신생아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신경학적 뇌손상이 있는 아기가 태어났는데 우리 병원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이었다. 당시 병원에서 리스크매니저면서 변호사였던 나는 최악의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전년도 비슷한 사례에서 1억2000달러를 병원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부스먼 전 책임자는 "병원장에게 왜 우리 때문인지 물었다. 산모가 3일 전에 왔는데 스트레스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해 3일 전에 태어났어야 하는 아이가 3일 후에 태어나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3일 전 자료부터 찾아봤다. 임상 최고 책임자에게 '너무 근본적인 실수 아닌지, 사인 놓친 의료진이 문제 있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나한테 평생 입증해봐, 넌 의사도 아니잖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부스먼 전 책임자는 "산모는 19살 아프리카 가나 출신 여성이었고 미국에 성매매를 하려고 왔으며 영어도 잘 하지 못했다. 아주 정상적이고 건강했다. 다만 복부 통증이 생겼고 태아가 움직이지 않을 걸 느껴 병원에 왔는데 가정의학과 의사가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들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은 의료진에게 '환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라고 하거나 '이민국에 신고하라'고 할 수 있다. 추방당하면 의료소송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왜 부인하고 방어할까. 두려움 때문이다. 지난 50년 간 미국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부상당한 환자에 어떻게 대응할지만 관심을 가졌지 의료인을 교육하고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할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의료인을 보호하기보다 교육시키고 싶었다. 의료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말고 환자와 대화도 하지 말고 변호사 없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은 의료인 본인을 망치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다른 렌즈로 세상을 봐야 한다. 의료사고, 의료실수가 있었는데 도망가면 안 된다. 의사는, 병원은 누군가 다치면 치료해줘야 하는 사명이 있다"며 "환자들에게 침묵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의료 질, 환자 안전에 대해 따로따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 의료사고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많은데 우리는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스먼 전 책임자는 "미시간 모델은 의료사고든 의료실수든 환자에게 예기치 않은 임상 결과가 생기면 환자에게 곧바로 통보하고 환자를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사실대로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 했다"며 "사과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개방된 자세로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환자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가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병원의 모든 의료진과 공유했다. 반드시 대응책을 만들고 이 모든 제도를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우리는 의료사고로 인해 실제로 지불한 돈만 알고 있고 예방을 통해 절약할 수 있는 돈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면 더 많은 돈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생아 마리의 케이스를 분석해 의료실수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마리의 엄마에게 매달 양육비를 지원하고 변호사도 붙여 배상금 청구하도록 도와줬다. 대신 우리 병원이 어떻게 신생아 마리를 돌보고 있는지 법정에서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고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48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의료실수로 인한 모든 과정을 공개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지 재정 손실이 아니다. 변화가 일어났다. 미시간대병원의 전체 의료사고 숫자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의사들이 진솔해졌다"며 "병원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것을 얻었다. 의료 문화가 바뀌었고 환자 경험이 달라졌다.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이제 의료인들은 더 나은 환자 안전과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해 보고서를 열심히 쓰고 있다. 보고할수록 개선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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