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 없다는 경찰 발표, 故박 간호사 두 번 죽이는 일"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 자살사건 내사종결처리에 간호사들 반발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송파경찰서가 지난달 1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신규간호사 고 박선욱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태움’이 없었다고 발표하자 간호계가 들끓고 있다.
 
간호사연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20일 "송파경찰서의 발표는 고 박선욱 간호사를 2번 죽이는 것"이라며 "박선욱 간호사의 명예회복과 재발방지책이 마련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6개월간 근무하던 신규간호사 고 박선욱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간호사 커뮤니티의 익명게시판에 박 간호사가 자신을 괴롭히던 선배들의 이름을 유서에 남기고 자살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박 간호사의 남자친구는 고인의 죽음이 ‘태움’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크게 논란이 됐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은 간호계 고질적인 악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19일 송파경찰서는 박 씨와 관련해 참고인 조사 등을 실시한 결과 폭행·모욕·가혹행위 등과 관련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범죄혐의 없이 내사종결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간호사연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경찰은 마치 유가족 동의하에 수사가 종결된 것으로 19일 발표했으나, 유가족은 동의하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그동안 유가족은 병원측 진술에만 의존하는 수사가 미흡하다고 생각해 지속적으로 항의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은 태움이 실체를 가지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태움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학대'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표출하는 파괴적인 감정, 방임, 그에 상응하는 모든 괴롭힘은 피해자의 영혼을 태워 한 줌의 재로 만든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이미 병원의 태움 문화가 만연한 상태임을 강조하며, 이를 가중시키고 있는 병원의 방임도 함께 맹비난했다. 간호사연대는 "간호사 1인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가 너무 많은 탓에 신규간호사는 제대로 된 실무교육을 다 받기도 전에 독립해 한 사람의 몫을 해야 한다"면서 "신규간호사를 교육하는 선임간호사도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과도한 업무에 노출되면서 이러한 상황이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태움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들은 "신규간호사가 혹은 간호사 1인이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업무를 짊어지고 일하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병원의 시스템 또한 간호사를 태우고 있는 것"이라며 "간호사를 연료로 태워 사용하고, 더 이상 탈 것이 없어 소진하면 폐기하고 마는 것이 바로 지금까지 대한민국 병원들이 간호사를 소모해온 양상"이라고 강조했다.
 
부족한 인력 시스템은 동료와 후배를 채찍질해 돌아가게 하는 이른바 태움을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배경이며,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로 인해 임상을 떠나는 간호사에 대한 대책은 늘 간호대 정원을 늘려 밑 빠진 독을 채우려고만 하는 기이한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인력부족과 과중한 업무라는 든든한 구조적 배경이 태움의 가해를 일순간에 정당화시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이면 신규였던 간호사들은 어느새 후배를 가르쳐야 하는 선배가 된다"면서 "이 과정에서 학대가 대물림되듯 태움도 대물림된다. 피해자는 어느새 가해자가 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어떤 간호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태움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간호사연대와 간호사회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과 보건복지부를 꼬집으며,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당 병언의 간호사가 태움을 언급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서 "서울아산병원은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경찰과 검찰은 다시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복지부는 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호인력 충원과 법 제도 개선 등 구조적 체계를 바꿔야한다"면서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 재발방지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간호사연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오는 24일 서울아산병원 앞 성내천에서 박선욱 간호사를 위한 2차 추모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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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희 기자 ([email protected])필요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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