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보건부 독립의 과제…관료주의 탈피하고 전문성 강화·독립성 기반해야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 역사는 일제 식민 공안 행정 조직이 기원이다. 당시 헌병 사령관이 통치하던 경무부에서 위생과로 출발한 것이 효시로 공안 세력이 보건의료 정책을 담당하였다. 이후 헌병 사령관에서 경찰서장으로 구조로 바뀌기는 했으나 해방 이후 미군의 군정이 유지될 때까지 공안 세력이 보건의료 행정의 기조를 이뤘다. 

1948년 대한민국의 독립과 함께 당시  전문직의 요청이 반영돼 보건사회부라는 이름이 탄생했고, 공안 세력에 의한 보건의료 행정은 종말을 고했다. 대신 철저한 관료주의가 대를 이어 보건의료 행정의 주역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한 보건의료 행정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의를 보면 ‘국가 보건정책 목표인 보장성 강화 달성을 위해 정부나 다양한 의사 결정자에 의해 수행되는 광범위한 조항 및 규칙 제정 관련 기능’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다른 해석에 새로운 보건의료 행정의 지배구조(治理)에 대한 정의는 ‘보건의료 행정의 지배구조는 직무 위임을 받은 비 공공단체인 전문직 단체도 포함하며, 종래 명령과 복종이나 통제의 공식적인 기제가 아닌 다양한 절차와 실천을 포함하는 법적 혹은 다른 조치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보건의료 행정의 주요 이해 당사자로서 전문직 단체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보건의료 행정을 결정하는 고위관리는 보건의료 현장과는 거리가 있는 행정관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설령 장관을 의사 출신으로 임용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행정에 대한 상부구조는 관료가 담당하는 반면에 일선에서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인력은 다양한 보건의료 전문직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관료주의의 전통을 갖고 있다. 관료에 의한 백성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과거의 사조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관료주의와 독재로 성공한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였다. 이런 시점에서 전문분야의 관료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현대의 복잡한 국가 운영에서 관료나 정부 조직이 모든 사안을 다 처리하고 다룰 수 없다.  실제 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할 하부구조에 필요한 인력을 모두 공무원화 하거나 정부가 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 민주 시민사회라고 한다면 정부나 관료에 의존하기 이전 시민사회나 전문직 등 다양한 의사결정 집단에 의한 협력과 공조로 사회적 사안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한때 대학 진학율이 고등학교 졸업자의 80%가 넘는 세계 최고의 학력수준을 보인 나라임을 감안 한다면 사회적 지적 수준의 진보는 매우 빠르고 시민 사회나 전문직의 역량과 역할도 상승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이제 관료도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행정관료가 행정 조직에서 성장하는 대신 전문직은 보건의료와 같이 보건의료의 하부구조인 일선 현장의 경력을 갖고 직접 사회에 봉사한다. 반면 행정관료는 상위구조의 보건의료 정책을 통하여 전문직 자율이 아닌 시대착오적인 통제와 명령의 지배구조를 통해 전문직과 관료집단의 긴장과 충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문직 집단은 행정관료와 대등한 위치에서 보건의료 행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현장 경험과 높은 전문성으로 전문직 자체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규제와 관리를 선호하며 외부나 타 직종 전문직의 속성상 특히 관료에 의한 전문직무의 간섭과 규제를 매우 싫어한다. 

필자의 경험을 반추해 보면 대학의 리더십을 개선하고자 직접선거나 간접선거 어느 방식을 택해도 대학과 학자의 규범과 맞지 않는 사용자의 문제가 발생한다. 대학의 행정구조를 바꿔 보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학조직 구성원 모두를 바꾸고 다시 시작하기 전에는 실제적인 변화는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 논리로 보건과 복지를 보건복지부의 단일 조직이나 복지부와 보건부의 분리 된 조직으로 바꾸어도 제도의 사용과 운영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현재 영국은 보건과 복지는 한 부서장인 Secretary of State 이나 산하에 보건을 담당하는 장관과 복지를 담당하는 장관(ministers)으로 나눠진다. 영국의 보건부 관련 행정부서의 명칭을 보면 보건과 복지 혹은 사회의 공공돌봄 등은 분리와 단일화의 과정을 거쳐 진화하고 있다. Minister of Health (1919–1968), Secretary of State for Health and Social Services (1968–1988), Secretary of State for Health (1988–2018), Secretary of State for Health and Social Care (2018–현재).

우리나라의 보건부서의 역사도 독립을 선포한 이래 사회부, 보건부, 보건사회부, 보건복지부, 보건복지가족부, 보건복지부로 이미 명칭 변경을 수차례 진행했다. 현재 논하는 보건부 독립 논리도 새로운 주장은 아니고 현재의 보건의료에서 새로운 요구나 기존 조직과 제도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다.

영국은 보건의료 행정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전문직과 협력, 협치의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가 장관의 최고위 고문으로 위촉되고 있다. 의사를 위시하여 간호, 약사 등 전문직의 지지를 받고 신뢰와 존경을 받은 인사들로 구성되었고 정치적 임용이 아닌 전문적 임용이다. 영국이나 호주의 사례를 보면 이런 위치에 있는 의사의 경력을 보면 이들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도전하기 쉽지 않다. 이들의 활동에 철저한 독립성도 보장된다. 보건의료에 대한 중요한 행정적 의사결정과 국가적 중요사태에 대한 대처에 이들 전문가 집단의 조언과 협력구조가 우리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의사 집단이 바라는 보건부 독립은 아마도 전문직에 대한 존중과 보건행정의 전문성 강화와 독립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건부가 복지부와 분리 독립해도 오랜 관료주의 전통을 쉽게 바꿀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행정구조의 변화를 시도한다면 관료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아비투스를 바꿀 기제가 동반돼야 한다.

저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개념을 인용하자면 아비투스는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상당한 영속성도 있고 특정 방식의 지각, 사유, 행동으로 나타나는 체화된 성향(dispositions)의 체계를 의미하는데 체화라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해도 전혀 새로운 인사로 구성된 새로운 조직으로 출발하지 않는 한 아닌 이미 부지불식간에 보여주는 특정한 관료주의식의 작동원리가 이미 체화돼 쉽게 변화할 수 없다는 가정도 오히려 현실적이다. 어떤 형태의 정부 조직을 선택해도 운영과 사용의 문제인 문화변화(culture change)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성취하기 어려운 핵심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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