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티딘 사태 "식약처, 임기응변식 대응 지양하고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위기관리 매뉴얼 만들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관리 나서야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6일 라니티딘(ranitidin) 성분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국내 유통 완제의약품 전체(269품목)에 대해 잠정적으로 제조·수입 및 판매를 중지하고, 처방을 제한하도록 조치했다.

라니티딘은 위산과다, 속쓰림, 위궤양, 역류성식도염 등 치료약에 사용하는 성분으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ETC)과 약국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허가를 받은 라니티딘 성분 완제의약품은 156개사 395품목이며, 실제 유통 중인 라니티딘 성분 완제의약품은 133개사 269품목이다. 2018년 라니티딘 성분 완제의약품의 생산·수입 실적은 약 2700억원에 달했다.

이번 판매중지 조치는 13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서 NDMA가 미량 검출됐다고 보고한 이후, 식약처가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른 것이다. 조사결과 원료의약품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잠정관리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인체발암 추정물질(2A)이다.

라니티딘 원료의약품은 제조소 기준 11종이 등록돼 있고, 그 중 7종(제조 1, 수입 6)이 유통 중이다. 이번 전수조사에서 제조·수입·유통 중인 원료의약품 7종 모두 일부 제조번호에서 NDMA가 검출되면서 국내 유통되는 완제의약품 전체에 대해 판매 중지 결정을 내렸다.

식약처는 라니티딘에서 NDMA가 검출된 원인에 대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유럽 각 국 규제기관들이 NDMA의 생성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라니티딘에 포함돼 있는 아질산염과 디메틸아민기가 특정 조건에서 자체적으로 분해‧결합해 생성되거나, 제조과정 중 아질산염이 비의도적으로 혼입돼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회사의 원료인데 NDMA 검출량에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NDMA는 제조공정 또는 보관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생성된 불순물이므로, 원료의약품의 생산시기, 보관환경 등에 따라 제조단위별로 편차가 상당히 있을 수 있다"면서 "식약처의 수거·검사 결과, 같은 제조소 원료이지만 제조번호별로 검출량에 편차가 있었으며, 외국에서도 제조번호별로 검출, 불검출 결과가 혼재되어 나온 사례가 있었다"고 답변했다.

식약처는 재발 방지를 위해 라니티딘과 같이, 예상치 못하게 불순물 NDMA가 검출될 수 있는 성분을 조사해 목록화 하고, NDMA 발생가능성이 높은 순서를 선정해 해당 성분을 사용한 원료를 수거·검사하는 등 사전예방 조치를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위해가능성 있는 물질에 대한 안전 관리기준 설정, 해외제조소 등록제 시행, 위해의약품 생산 등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 부과 등 원료의약품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운영할 방침이다.

그러나 관련업계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식약처의 이번 대책에 대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식약처의 이번 결정과 관련해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책임있는 조치를 다할 것이며, 적극 협조할 것이다"면서 "정부는 향후 국민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유사사례 발생시 임기응변식 대응을 지양하고 과도한 혼란 등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위기관리 매뉴얼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관련 분석기술의 발전으로 유사 사례는 계속 발생할 것이므로 공공재 성격의 의약품에 대한 관련 기금 조성 등의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회수 및 관리 체계 마련을 위해 정부와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약품 성분과 관련된 위협을 외국의 전문기관이 먼저 인지하고 식약처가 뒤이어 외국의 자료에 따라 국내에서 조사에 나서는 모양새가 지난해 있었던 '발사르탄 사태'와 유사하다. 식약처는 핵심전략으로 '의약품 원료부터 철저하게 관리'를 내세우고 있으나 여전히 바뀐 것이 없다"면서 "식약처는 의약품 안전관리를 통한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본분에 걸맞게 의약품 안전관리 전반에 대한 대대적 개선과 전문성 제고에 나서야 한다. 의약품에 대한 적극적인 불시 수거 및 검사를 통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또한 전문성 제고를 위해 충분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식약처는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을 단기 복용한 경우 인체 위해 우려는 크지 않다고 보고있으며, 장기간 노출됐을 때 미치는 영향을 조사·평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해외규제기관들의 입장을 보면, 독일 연방의약품의료기기연구원, 호주 연방의료제품청은 NDMA로 인한 즉각적인 환자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미국 FDA 및 유럽의약품청(EMA)는 라니티딘 의약품 복용환자를 대상으로 인체영향평가를 수행 중이다.

박도영 기자 ([email protected])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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