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진료시간에 진단 잘못하면 막중한 책임, 의사가 아니라 차라리 래퍼가 될까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24화. 환자의 소비 비용과 의사의 책임 비용 

환자가 처음 병원에 방문하면 의사는 아주 많은 것들을 질문해야 한다. 주 증상, 기타증상, 발생시기, 병력, 가족력, 과거력, 직업, 여행병력 등의 다양한 정보를 자세히 묻고 감별 진단 방법과 치료 방향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정한 의료비용, 수가는 모두가 알다시피 매우 저렴하다. 지난 2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진찰료는 미국의 3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이렇게 강제된 초저수가의 비용으로 박리다매식 진료를 해야 한다. 그래서 진료 시간이 짧게 제한돼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물어봐야 하는 의사의 마음은 다급해지고 환자들의 말을 차분하게 들어줄 여유가 없다. 초진 환자의 병력을 설문지로 대체하거나 예비 진료를 시행하기도 하지만 완벽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병력 조사가 하나라도 빠지거나 환자가 질문을 잘못 이해할 경우, 드물게나마 환자에게 잘못된 처치나 치료가 이뤄져서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환자의 소비 비용이 저렴하다고 의사의 책임 비용도 적은 것은 아니다. 지난 달 환자에게 원래 있었던 약물 부작용을 질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 소송에서 패소한 의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진료 중 약물 부작용에 대한 질문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했고, 진료를 함께 한 간호조무사도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소송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예전에 작가는 전화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 때 보험회사 직원은 래퍼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보험약관을 15분간 읊어줬다. 나는 그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간 중간 여러 번 괴로움을 호소하며 '제발 그만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약관을 설명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는 모두 자신의 책임이다. 이에 따라 일단 자신이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고객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그렇게 고통의 15분을 보냈고 보험회사는 책임을 면했다. 최소한의 비용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사회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촌극이었다. 

의료 현장에서 소비와 책임 비용의 간극이 큰 진료과일수록 전공의 지원을 기피하고 의료 공백 지역이 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진료과 의사들이 보험사 직원처럼 랩처럼 병력 질문을 읊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사회가 원하는 만큼 빠르고 저렴한 진료를 하면서 책임도 면할 수 있을까.

진료실에 배경 음악으로 힙합 비트를 깔아야 할 때다. “비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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