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AI 의사 활용법

[칼럼] 정명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보험삭감 방지하는 AI 도입 희망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 글에는 70%의 사실과 20%의 소망과 10%의 상상이 담겨 있습니다.)
 
대형병원마다 경쟁적으로 도입되며 인기를 끌었던 IBM사의 암 진단 인공지능(AI) 의사 왓슨의 열기가 시들해졌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아직은 AI 의사가 인간을 완전하게 대체할 수 없고, 치료보다 진단 분야에 머물러 있으며, 진단의 정확성 등에 대한 여러 가지 한계점이 드러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의 컴퓨터 기술은 인간을 대체할 수준은 못되지만 막대한 자료를 수집해 처리하는 능력 면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월등하게 뛰어넘으므로, 그런 능력을 활용하해 의사의 실수를 줄이고 의사의 판단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다행히도 AI의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한국 의료계에는 있다. 왓슨은 암 진단에서는 아직 인간을 뛰어넘지 못했을지 모르나 심평의학 분야에서는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대가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개원한 의사들은 교과서적인 의료는 의사 면허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만 필요하고 그 이후엔 심평의학이라는 심평원이 허가하고 고시한 의학을 따라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삭감으로 인해 봉직의에게는 병원에서 경고장이 날아오고, 개원의들은 직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모든 의약품이나 검사·처치에는 보험 규정이 있지만 의사들이 그 많은 것들을 세세하게 모두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삭감을 많이 당한다.

같은 계열의 당뇨약이라 하더라도 A약은 병합 처방이 가능하고 B약은 불가능한 식으로 규정이 너무나 복잡하다. 게다가 보험 규정이 바뀔 때마다 의사들에게 바로 바로 직접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고시만 하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도 생기고, 실수로 누락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종합병원에는 청구하기 전에 이를 점검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지만 개인 의원에선 그럴 시간도 인력도 부족하기에 고혈압 약을 처방해 놓고도 병명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약값을 전액 삭감당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요즘엔 전산으로 자동 삭감하는 부분도 점점 늘고 있다.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가 사라지고 보험진료가 늘게 되면 이런 경우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국내 의료기관은 95% 이상이 전자의무기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까닭으로 이미 컴퓨터의 보조를 받고 있는 분야도 있다.

의약품처방점검시스템(DUR)은 병용금기의약품을 처방하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임부 금기 의약품이나 유아 금기 의약품 처방 여부를 점검하고, 동일 성분 의약품을 중복 처방하지 않는지 점검해 준다. 

DUR이나 동일처방의약품 중복처방 점검의 경우엔 그 환자가 해당 병의원 뿐 아니라 DUR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체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은 의약품에 대해서 점검하는 막강한 기능이 있다. 사실 이 정도만 보아도 초보 상태의 AI 기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DUR 기능도 작동하고 심사할 때 전산으로 자동으로 삭감하는 정도의 기술이라면 아예 처방 당시에 그것에 대한 점검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동으로 삭감되는 것이 뻔한 처방을 의사가 내리는데 왜 그때는 그냥 넘어가고 심사할 때는 자동으로 삭감해 버린단 말인가? 미리 보험 규정을 넘어서는지, 보험은 되는데 무엇이 누락되었는지 알려줄 수는 없단 말인가?
 
개원의사들이 삭감에 대해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료 당시엔 모르다가 한두달 지나서야 삭감 통보서가 날아온다는 것이다.

1년이나 2년이 지나서 날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경제적 손실을 당하기도 하고, 이의신청을 하느라 없는 시간을 또 쪼개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의신청을 포기하고 삭감당하고 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실시간으로 보험이 되는지 안되는지 알려준다면 의사에게나 환자에게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진료에 꼭 필요하지만 보험이 안되는 경우 비급여로 하는 것은 불법이다. 보험이 안되는데 보험으로 진료했다가는 삭감돼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어떤 경우엔 급여가 되는지 안되는지 진료 당시에 정확하게 모를 수도 있다. 응급환자이거나 중환자일 경우엔 더더구나 그렇다. 병원과 의사만 중간에서 이래저래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란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환자들이 병원과 약국에 진료비와 약값을 전액 납부하고 나중에 보험공단에서 환급을 받는다고 한다. 보험이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분쟁은 환자와 보험공단 사이에서 일어나고, 의사는 환자의 진료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보험이 안되는 경우에는 환자가 전액 납부하면 되는 것이기에 병원의 부담이나 손실은 없다. 이 규정을 한국식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가 의사들의 반발로 실패한 적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병원은 환자의 보험 청구를 대신해 주고도 삭감이라는 경제적 손실을 당하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자 이제 소설같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한국형 AI를 DUR처럼 도입하자. 현 기술로 가능한 부분이다.

진료 당시에 실시간으로 보험이 되는지, 보험은 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의사가 추가로 기록해야 할 사항이 있는지, 아니면 아예 보험이 안되는 진료인지, 보험이 안되는 진료 가운데서도 비급여로 허용된 진료인지 혹은 비급여로도 금지된 진료인지를 알 수 있게 하자.

보험이 되는 진료라고 나온 경우엔 당연히 삭감을 할 수 없도록 하자. 의사가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보험이 안돼 검사나 치료를 못했을 경우엔 그 기록도 남게 하자.

이러면 일선에서 의사와 환자와의 분쟁도 줄어들고 보험이 안돼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발생한 경우엔 그 책임을 복지부와 심평원, 건강보험공단이 나누어 지게 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공정한 일인가?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도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또한, 각 병원의 청구 전 점검 부서와 심평원 및 공단의 심사인력과 실사 인력을 대폭 줄일 수도 있으니 인건비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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