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대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임기는 올해 5월 10일부터 5년간입니다. 윤 당선인은 코로나 대응체계 전면개편과 필수의료 국가 책임제를 주요 보건의료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선거 이전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에 이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에 앞서 의료계가 꼭 필요한 보건의료정책을 다시 한 번 선제적으로 제안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메디게이트뉴스] 2차 세계대전 이후 의료는 의식주와 더불어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이 됐다. 그러나 의료 기본권 보장이라는 매우 윤리적인 과업이 정치에서는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런 연유인지 의료는 지도자와 정치체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의료가 마치 지도자의 영도력에 의한 은혜로 가엾은 백성에 대한 배려가 된 시대착오적인 모습인 적도 있었고, 의료인의 전문성은 강압적으로 묵살당하고 정치권력의 장악을 위한 대국민 선심성 정책이기도 했다.
임기를 다한 문재인 대통령은 감염병 시대를 맞이해 일제 강점기의 정책인 색출, 격리, 차단의 원칙으로 마치 세계를 선도하는 K방역으로 자신의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식될 것이라던 감염병은 대통령 임기 말 신규 확진자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의 망극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의료를 정권의 치적으로 미화하려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압력이 전문직 집단의 전문성을 훨씬 상회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달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방역체계를 답습한 K방역에서 보여준 우리나라의 전체주의적 특성은 공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 침해도 가능하다는 논리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의 명령과 통제가 근본인 의료정책도 언젠가는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할텐데 검찰총장 출신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병이 지루하게 전개되면서 의료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됐고 여야 모두 대통령 선거 전략에 반영됐다. 공공의료 강화에는 양당의 이견이 없으나 방법론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력 양성과 연계된 공공 의료기관과 공공의대 신설 주장과 기존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방안이 반대 주장으로 대립됐다. 보장성 강화도 여전히 빠지지 않는 공약사항으로 대통령이 누가되던 변함없이 언급될 내용이다.
필수의료 강화를 포함한 의료인력 양성과 필수의료 유인책 등 모든 공약은 상당한 예산이 투입돼야 가능한 사업들이다. 이런 공약이 현실로 나타나는 국가는 전체 의료비가 국내총소득(GDP) 10%를 초과해야 실현 가능한 수준인데, 정치 공약에서 전체 의료비에 대한 언급은 쉽게 찾기 힘들어 보인다. 아울러 나라의 GDP와 국민 수득에 합당한 수준의 의료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도 다시 정비돼야 한다. 의료 낭비를 막기 위해서 의료 소비자에 대한 적절한 견제 장치 등,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지지하는 중요한 의제는 의도적인지 아예 노출이 안 되고 숨어있다.
인력양성, 필수의료지원, 의료전달체계확립, 돌봄의 확대 등 늘 등장하는 공약들은 각각 별개의 과제처럼 보이기도 하나 의료의 특성상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느 것 하나라도 해결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문 대통령도 보건의료를 위한 공약을 내세웠었고 임기 초기 문케어라는 이름으로 보장성 강화를 시도했으나, 이제는 문 케어라는 이름도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꼬리 내린 K방역과 같은 소멸의 과정이 자연적으로 진행되었다.
새 대통령은 우선 직전의 대통령이 보여준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 구현을 위한 무능하고 착한 정책에서 벗어나 보건의료 공약의 단 한 가지라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어딘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동시다발적인 다양한 과제에 대한 접근보다는 한 가지 핵심 정책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말아야 한다.
나라가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의료비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임기 중 GDP 10% 이상을 초과할 각오와 여기에 부합하는 정책 기획이 필요하다. 의료비 통제로 의료 소비자의 만족도와 정치적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의료제도는 각종 문제를 만들어냈다. 결국 의료의 문제 해결방안이 곧 정권 쟁취를 위한 공약사항으로 연결됐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근본적인 저수가 정책의 전통이 만들어낸 부작용의 해결책이 선거공약인 셈이다.
만성적인 의사, 간호사 부족 등 의료인력 부족의 원인이 정당한 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매우 간단한 원칙이 무시된 의료 환경이 원인이다. 아무리 많은 의료 인력을 배출해도 힘든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의 부족은 당연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 대한 강제적 값싼 보상이 의료의 형사 범죄화와 맞물려 필수 의료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힘든 일을 피한다는 현상을 단순히 신세대 의사의 특징으로 폄훼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나쁜 근로환경을 참고 지내는 것이 착한 것이 아니라 근로환경 개선을 하는 것이 착한 일이다. 착한 의사는 착한 일을 하고 착한 보상을 원하는데, 저수가가 착한 의료라는 정책 기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의료에서 너무나도 명백하고 단순한 민주적인 근로 원칙이 무시된 근로환경이 현재 우리나라 의료가 보여주는 어두운 모습의 근원이다.
의료에서 가장 원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고 이를 해결을 하지 않는 한 어떤 의료관련 공약의 실현도 원초적인 문제에 다시 발목이 잡혀 결국은 정책 실패나 좌절로 끝날 수밖에 없다. 선거공약이라는 사회적으로 공개된 약속이 결국 속빈 약속이었다는 현 정권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넘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이 간단한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현란한 수사학적 구호가 아닌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로드맵을 보여주기를 희망해 본다. 권력이 아닌 상식과 정의를 내세운 새 대통령이 할 일은 의료에서 가장 상식적인 문제의 해결로 정당한 근로환경 조성과 정당한 보상의 기본 원칙을 재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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