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병원 직원들, 경영진에 화재안전 점검 요구…"직원·환자 안전 책임져야"

美병원은 스프링클러 고장만 나도 환자 이송…대변인이 지역사회에 공지

우리나라 병원 직원들, 스프링클러 설치 반대 경영진에 불만 제기도 못해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영국 병원은 직원들이 나서서 스프링클러 설치 등 병원 경영진에 화재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병원은 스프링클러가 고장나면 환자들을 다른 병실로 안전하게 옮긴 다음 대변인이 지역사회에 공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병원은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면 비용이 수억원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병원 직원들은 이런 경영진의 주장에 반대하지 못하고 직원과 환자 안전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이후 병원계 스스로 내부를 점검하고 필요한 지원책이 있다면 경영진과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사건에 놀란 병원 직원들, 화재 안전 점검 요구
▲영국 칼라일 컴버랜드 병원. 사진=위키피디아
31일 영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영국 칼라일 컴버랜드병원은 지난해 6월 영국 런던 그렌펠 타워 아파트 화재 사건 이후 직원들과 노조가 병원 경영진에 화재 안전을 점검할 것을 요구했다. 그렌펠 타워 사건은 24층 아파트 주민 350명 가운데 80여명이 사망해 영국 최악의 화재 사건으로 꼽힌다. 

이 병원은 2000년에 설립해 17년이 됐고 노후화 진행이 시작됐다. 병원 곳곳에 각종 안전 기준에 적절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화재 경보기가 고장났고 대피에 필요한 방화문과 방화벽이 적절하게 설치되지 않았다. 병원 건물은 30~40년간 모기지(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금융 차입)에 묶여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이 병원 경영진은 1400만파운드(약2억원)를 들여 스프링클러 등 화재 안전 장비를 새로 마련했다. 스프링클러는 물에 높은 압력을 주고 불이 났을 때 천장에 있는 노즐에서 물을 뿌려 불을 끄는 장비다. 스프링클러는 화재 예방의 필수적이면서 화재 대처에 즉각적인 역할을 하는 장비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병원의 스프링클러 설비는 2020년이 돼서야 완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병원 직원들은 스프링클러 설치를 마칠 때까지 병원의 화재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병원 건물의 각종 가연성 물질과 자재를 문제 삼았다. 
 
영국 NHS(국가보건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도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섰다. 해당 병원의 NHS 관리자들은 병원 직원과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화재 안전을 위해 3500여명의 병원 직원을 교육시키고 120여명의 소방감독관을 별도로 뒀다. 병실에서 불이 났을 때 연기와 불길이 다른 병실로 퍼지지 않은 상태로 최소 60분을 유지하도록 방화벽과 방화문을 마련했다. 
 
병원의 한 직원은 “스프링클러 설치가 완료되는 2020년까지 너무 많이 남아 병원이 안전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라며 “직원들이 화재 안전 점검 결과를 믿을 수 있는지와 병원이 정부로부터 화재 안전 인증서를 받게 된 이유를 집중적으로 질문했다”라고 말했다. 이 병원 직원들은 직원과 환자 안전이야말로 병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국 병원은 스프링클러 고장만 나도 공지…우리나라는 스프링클러 설치부터 반대 
 

미국 병원들은 스프링클러 설비가 고장나면 환자를 안전하게 다른 병실로 옮긴 다음 대변인이 해당 내용을 지역사회에 공지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스프링밸리아동병원은 중환자실의 스프링클러가 고장이 나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8명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병원 대변인은 "환자들은 무사히 옮겨졌고 아무런 불편없이 치료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292병상에 불과한 작은 병원이었지만 직원과 환자 안전이 기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미국 아이오와주 메르시메디컬센터에서도 스프링클러 일부가 고장나 물이 샜다. 병원 대변인은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자 15명을 다른 병실로 옮겼다고 밝혔다. 설비를 고치는 과정에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화재 예방에 있어 철저한 대비를 하는 사례였다.
 
우리나라는 2014년 5월 장성요양병원 화재사건으로 거동이 어려운 환자 등 21명이 숨졌다. 당시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규제가 나왔지만 병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이에 따라 정부가 3년 유예기간을 뒀고 올해 5월까지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이뤄진다. 한 요양병원장은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만 2~3억원이 들고 이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만큼 부담이 된다"라며 "스프링클러 설치로 망한 병원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26일 밀양 세종병원 사건으로 중소병원 스프링클러 의무화까지 검토하겠다고 나서자 병원계에 또다시 불만 여론이 나오고 있다. 세종병원 화재사건은 사망자 39명 등 190명의 사상자를 냈다.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관련 브리핑에서 “중소병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검토하고 불시에 소방 특별점검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병원계 관계자는 “스프링클러 등의 설비는 화재 예방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우리나라 병원은 대부분은 민간의료기관으로 이뤄져있는데, 정부 지원은 없고 규제 위주로만 대책이 나오다 보니 반발이 심한 것”으로 해석했다. 다른 병원계 관계자는 “병원 경영의 논리가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 우리나라 병원이 안전한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며 “의료진과 직원들이 환자안전을 말하고 이에 대한 여론을 형성한다면 지원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솔 기자 ([email protected])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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