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신설하면 지역 필수의료 공백 해소될까? 정녕 국민을 위한 정책인가?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⑦ 문석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  
 

2020년 의료 파업의 주된 원인이 의대 정원 증원 반대였을 정도로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지만, 국회와 정부는 여전히 의대 신설 주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서 여야가 발의한 의대 신설 법안은 8건에 달하며, 새 정부 들어서도 의대 신설이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는 의대 신설에 대해 막대한 예산 낭비는 물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 주요 오피니언리더들과 함께 반복되는 의대 신설 주장의 폐해와 부작용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①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교수 최소 110명 확보, 500병상 부속병원 예산 지원 부당"
②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 "불 보듯 뻔한 의대 신설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③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의사수 부족 아닌 과잉…‘공공’ 내세운 ‘포퓰리즘’ 의대신설법안"
④이태연 대한정형외과의사회장 "일본은 의대정원 축소...의대 신설 주장, 백년 앞을 내다본 것인가"
⑤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정원 50명 미만 미니의대 18개교...기존 의대 교육 내실화부터"
⑥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장 "의대 신설 수천억 계획하면서...의사는 제일 싼 비용으로 유지"
⑦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지역 필수의료 공백 여전, 국민에 부담만 초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에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한 간호사 사망사건에 대한 가슴 아픈 얘기가 전해졌습니다. 의사들은 이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인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필수의료란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국민 누구에게나 제공돼야 할 응급, 외상, 암, 심뇌혈관질환, 중환자, 신생아, 고위험 산모, 중증감염병 등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말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데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의료분쟁에 휘말리기 쉬워 요즘은 지원을 기피하는 분야가 됐습니다. 현재 의료계는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서는 당직 체계를 수정하고 있고, 진료, 전원, 이송 체계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호된 채찍을 맞으면서도 의사라면 이런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정치권에서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대한민국 전체 의사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해서 벌어진 일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국회에서는 의대 신설 법안이 벌써 3건이나 발의돼 21대 국회에서는 총 8건의 의대 신설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의대 증원 논의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의하고 있습니다. 의원들 대부분이 공공의료체계 구축과 의대가 없는 지역 사회에 대한 대비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고 지역 사회에 의대를 만드는 것만으로 안타까운 간호사 사망사건 같은 일들이 없어질까요? 복잡하고 난해한 수학 문제를 단순한 산수 문제로 생각해서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요? 

먼저 의사 수가 적다는 근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많이 듭니다. 최근에 나온 ‘OECD 보건통계 2022’에 보면 OECD 평균 3.7명에 비해 한국은 2.5명으로 하위권입니다. 이 수치만 보면 의사 수가 인구 대비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의사에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국민 건강에 관련된 지표들이 다 나빠야 합니다. 하지만 의사 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통계 지표가 OECD 국가 대비 좋습니다.

특히 의료접근성, 도시-농촌 간 의사 분포 차이, 기대수명, 영유아 사망률, 암 관리 의료질 평가, 급성기 의료 평가, 회피가능 사망률 등은 월등히 좋았습니다. 국민들이 OECD 국가에 비해 건강히 지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의료 인력과 자원을 잘 관리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2.6명으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OECD 국가의 의사 수는 연평균 1.4% 증가하는데 우리나라는 연평균 2.4% 증가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충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OECD 국가의 평균 의사 수를 따라잡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법안으로 의대를 신설하고 의사를 더 증원하려고 합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데,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문제는 공공의대를 늘린다고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국공립대학병원이나 지역의 공공의료원들이 민간의료기관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일반 진료를 수행하고 있어,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나 감염병 같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즉각적으로 전환·대응을 하지 못해 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병원이 적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공공의대를 늘리고 공공병원을 신설하면 기존 지역사회에서 공공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던 민간의료기관들이 폐업을 하게 되고 지역 의료체계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지역 의료 공백은 더 생기게 됩니다. 그만큼 국민들은 더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의대가 없는 지역에 의대를 만들면 그 지역에 의사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직원들이 있습니다. 환자들이 대도시의 병원을 선호하는 이상 의사들은 졸업과 동시에 대도시로 나가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지역에 근무하는 의무 기간을 설정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를 강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역에서 일정 기간 근무를 해야 한다면 우수한 학생들은 의무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의대부터 지원을 할 것이고, 그만큼 의사의 수준은 떨어질 것입니다. 결국 지역의 의대는 경쟁력을 잃고 ‘서남의대’의 전철을 밟을 것이 뻔합니다.  

정녕 국민을 위한다면 단순히 의대나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 보다는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대를 신설하고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것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이 듭니다. 이는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더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몇 가지 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의사 인력의 부족 여부를 단순히 OECD 평균 숫자만 보지 말고, 중·장기적인 의료계획을 수립해 필요한 의사 수의 추계를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 환자의 대도시 집중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지역별 병상 총량 관리 방안을 수립해야 하고, 규모 중심의 의료전달체계(1차, 2차, 3차)에서 기능 중심의 의료전달체계(중증의료병상, 급성기·회복기·만성기 병상, 정신·재활·요양·감염 병상 등)로 바꿔야 합니다.

셋째,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인력 양성 및 ‘공공정책수가’ 같은 재정 지원에 대한 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넷째, 의료행위 과정에서 명백한 의료인의 과실이 아닌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을 해소해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의료분쟁특례법'을 제정해 법적분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위와 같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보건의료정책을 추진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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