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강화하려면…공공의료 최전선 '공보의'부터 제대로 대우하라

[칼럼] 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대구에 파견됐던 공보의들의 모습. 사진=대구가톨릭대병원 

[메디게이트뉴스] 전염병 확산은 의사에게 전쟁이 터졌음을 뜻한다. 지난 2월 대구 경북 지역에서 코로나 19가 확산됐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의료진 한 사람이 아쉬웠을 때, 공중보건의사(공보의)들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전국에서 의사들이 몰려들어 환자 치료에 헌신했지만, 국가의 명을 받고 급파된 공보의들이 없었다면 코로나 19는 ‘낙동강 방어선’을 넘어 수도권 방향으로 급속히 퍼졌을지도 모른다.  

공보의는 병역법에 의해 편입돼 공중 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계약직 국가공무원’들로,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한다. 아쉬운 것은 공보의들의 역할이 막중해지는 데 반해 제자리 걸음의 공보의 법령이다. 1980년 제정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은 40년이 지난 이후에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진 무의촌 해소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현행 공보의 제도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보자.

첫째, 의과대학 내 여학생 비율 증가와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으로 공보의 숫자가 감소하면서, 질병관리본부, 시도 역학조사관, 보건정책연구기관 등 보건 관련 기관에 배치되는 공보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 결과 코로나 19와 같은 신종감염병 대응이나 국민건강증진, 그리고 보건의료의 질을 높이는 역할에서 한계에 보이게 됐다. 공보의로 무의촌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전국 곳곳을 보건취약지로 만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공보의 신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법률이 개정되면서 공무원 5급에 상응했던 공보의 직위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마땅한 권한이 없어 지역 보건지소에서 보건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졌다. 향후 건강생활지원센터가 보건지소와 협력해 보건사업을 할 때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공보의 제도의 비효율적 운영이다. 각 시군구의 공보의에 대한 상황들을 보건복지부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더 많은 공보의를 받기 위한 지자체의 이기적이고 편향된 의견에 보건복지부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자체 예산으로 관리 의사를 채용할 여력이 있는 시군구 지자체조차 경쟁적으로 공보의를 배정받아 대체하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무의촌 해결을 위해 공보의를 배치하려는 현행법의 목적에 위배된다.

넷째, 공보의들에 대한 보건의료 교육이 간과되고 있다. 농특법 시행규칙에는 공보의에게 보건 및 행정 교육을 일정 기간 동안 이수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는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교육을 하지 않거나 그 마저도 형식적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공보의들은 속칭 ‘맨 땅에 헤딩’하듯 우왕좌왕하며 업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는 교육을 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듯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개선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건 시대적 흐름에 뒤처진 낡은 제도와 법령의 개선이다. 공보의의 애매한 신분도 제도적으로 명확해져야 한다. 또한 공보의 단체인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를 법률에 명시해 이번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지난 2018년 2월,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 등이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추후 공중보건의사의 복리 증진과 상호교류를 위한 법적 근거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또한 광역자치단체에서 공보의들의 근무지 배치 시 해당 시도공보의회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무리한 인력 배치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부 시도에서는 시도공중보건의사회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인력 배치를 진행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공보의 업무 배치 전에는 보건 행정 교육 및 지역 의료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교육과정은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참여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건소와 보건지소가 수도권 등 인구과밀지역에 있거나 인근 지역에 타 의료기관이 있는 경우, 해당 보건소나 보건지소의 진료 기능을 폐지하고 지역사회 방역과 역학, 감염병 관리 등 집단과 개인 공중 보건 업무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도서 지역의 보건지소나 응급의료기관 등에서 근무하는 일부 공보의의 경우, 응급환자 진료의 필요성등의 이유로 근무지역을 장기간 이탈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체 휴무나 별도 수당 등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결국 의료취약지 주민에게 공보의가 제공하는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공보의의 권익 향상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공보의는 대한민국만이 가진 장점이자 강력한 수단이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보의들은 대한민국 공공의료를 지키는 소중한 자산이다. 정부는 이들을 단순히 계약직 공무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한 축인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거버넌스를 구축한 뒤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적절한 경제적 보상, 그리고 전문가로서의 존중이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의 공공의료도 한 단계 격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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