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보톡스 이어 한의사 초음파까지…의사의 배타적 업무 영역 축소 추세?

의료인 간 업무범위 논란에서 의사에게 불리한 판결 이어져…'직역 간 갈등' 우려

대법정 사진=대법원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무죄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이 의료인 간의 업무 범위 논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한방 의료행위 기준을 벗어난 의료행위로 바라봤던 기준이 불명확해졌기 때문이다.

2016년 치과의사의 보톡스 시술을 '합법'으로 바꾼 대법원 판결에 이어 2022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까지 '합법'으로 바라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면서, 그간 의사 직역이 독점했던 의료행위가 점차 타 보건의료 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도 점차 커지고 있다.

대법원, 2014년 '불법' → 2022년 '합법'…8년만에 한의사 업무범위 해석 기준 변경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심과 2심 모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 유죄라고 판단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사건을 원심 파기 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2014년 대법원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한의사의 업무 영역을 벗어난 행위라고 판시한 지 약 8년만에 대법원의 시각이 변화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인 한의사 A씨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총 68회 초음파를 이용한 진료행위를 했고,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된 의료법 제27조 제1항과 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제87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모두 2014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한의사가 '현대 진단기기'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

2014년 당시 대법원은 "의료법에서 의사와 한의사가 동등한 수준의 자격을 갖추고 각자 면허를 받은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이원전 의료체계를 규정한 것은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나란히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서양의학뿐만 아니라 한의학으로부터도 그 발전에 따른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의사와 한의사가 각자의 영역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국가로부터 관련 의료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검증받은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할 경우 사람의 생명 신체나 일반 공중위생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명시했다.

문제는 의사, 한의사 등에게 허가된 의료행위의 내용을 정의하거나 그 구분 기준을 제시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법원은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등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해당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해당 의료기기 등의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지 등 4개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그간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를 응용한 것"도 아니기에 금지되어 왔다.

하지만 2022년 12월 22일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가변성, 학문적 원리와 과학기술의 발전, 사회적 제도와 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하면 종래 판단기준은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며 한의사의 의료행위 여부를 판단할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의 특성과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이 같은 판단기준에 따를 때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사 vs 타 보건의료인력 간 모호한 업무범위 논쟁 가중 '우려'
 
지난해 12월 26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의 대법원 규탄 기자회견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의료계는 의료인 면허 범위를 둘러싼 혼란이 가중될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12월 30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 7개 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법이라는 대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은 의료용 초음파 진단기기라는 영역의 특수성을 간과하고, 동시에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존재 의미를 부정한 처사다"라고 반발했다. 

이들 단체는 "'누구든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27조의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대법원은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규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합리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험 속에 방치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해당 대법원의 판결로 앞으로 발생할 무자격자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으로 인한 국민들의 막대한 피해와 관련, 대법원에서 말한 보건위생상 위해의 기준에 대해 우리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결코 동의하기 어려우며 책임질 수 없다. 또한 이 같은 잘못된 판단기준이 앞으로 의료계에서 용인될 경우 각 직역 간 극심한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세승의 현두륜 변호사 역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한의사 의료행위를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현대 과학 기술과 시대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앞으로 의료행위와 한방 의료행위를 구별하는 데 있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음파 진단기기뿐 아니라 다양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과연 한방 의료행위 안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상당히 불명확해질 수 있고, 그에 따른 분쟁도 상당히 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미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치과의사가 환자의 눈가와 미간에 보톡스 시술을 한 것이 치과의사의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인지 여부를 놓고 법정 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치과의사의 보톡스 시술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따지기 위한 2014년 대법원 기준을 참고하면서도 "의료행위의 개념은 고정 불변인 것이 아니라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 상황의 변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기도 하고, 의약품과 의료기술 등의 변화·발전 양상을 반영해 전통적인 치과진료 영역을 넘어서 치과의사에게 허용되는 의료행위의 영역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재판부 다수는 "구강악안면외과를 치과 영역으로 인정하고 있고, 치과의사 양성과정에서 안면부에 대한 교육 및 수련을 하고 있으며, 치과의사가 이미 치료에 보톡스를 활용하고 있고, 교육 및 수련 과정이나 국가시험 등을 통하여 보톡스 시술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치과의사가 환자의 미간과 눈가에 보톡스 시술을 한 행위가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처럼 의사가 독점적 지위를 점하고 있던 의료행위가 타 보건의료인에게도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직역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두륜 변호사는 "그간 의사들이 배타적인 업무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가 치과의사 보톡스 판결로 무너진 바 있다. 이번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과 관련해서도 판례가 바뀌었다. 이처럼 기존에 설정된 기준이 대법원 판결에 의해 계속해서 바뀌는 추세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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