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뒤집은 대법원 판결,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새로운 판단 기준 제시

시대적 흐름 감안, 환자 선택 폭 넓히려는 의도…여타 첨단 의료기기 사용 여부도 쟁점될 듯

사진=대법원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법원이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구체적인 판결 내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관련기사="한의사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 의료법 위반 아니다"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 '충격']
 
이번 대법원 판결은 우선 기존의 입장을 바꾼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봐야 한다. 12명의 대법관 중 10명이나 찬성표(한의사 진단 의료기기 사용)를 던진 만큼 향후 여타 첨단 의료기기 사용 여부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판결의 요지는 간단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새로운 판단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2일 대법원이 명시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여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관련 법령에서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를 금지하고 있는지 여부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수 있는지 여부 ▲진단용 의료기기 이용행위와 한의학적 의료행위가 무관한 것인지 여부, 총 세 가지다.
 
초음파 진단기기는 특수의료장비 아니야…한의원 초음파 검사 급여는 별개
 
한의사를 무죄라고 판단한 대법원 다수 의견(10인)을 살펴보면 우선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찬성표를 던진 대법관 10인은 "초음파 진단기기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및 특수의료장비에 해당하지 않아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없다"며 "한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부분에서 대법원은 합법의 문제와 별개로 한의원에서 이뤄지는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 등에 해당하는지와 의료법상 허용되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허용된다고 해 곧바로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건보법상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국가의 보건의료정책과 재정의 영역”이라고 전했다.
 
위해성 여부 법률 해석 바뀐 것이 판결 ‘키포인트’
 
가장 핵심 쟁점이었던 한의사가 진단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위해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앞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부분에서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 신체상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때문에 위해성 여부에서 법률 해석이 뒤집힌 것이 이번 판결의 키포인트였다는 분석이 많다.
 
원심 재판부는 "초음파 진단기 사용 자체로 인한 위험성은 크지 않으나 진단은 중요한 의료행위다. 검사 내지 진단을 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독하지 못하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상의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이는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즉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하는 검사와 진단행위는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는 영상의학과 의사나 검사 경험이 많은 해당과 전문의사가 시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180도 뒤집혔다.
 
대법원은 "초음파 투입에 따라 인체 내에 어떠한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고, 임산부나 태아를 상대로도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앞서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결정했으나 그 당시와 비교할 때 현재 한의과 대학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의료행위의 전문성 제고의 기초가 되는 교육 제도·과정이 지속적으로 보완·강화됐다"고 전했다.
 
또한 대법원은 "의료계에서 초음파 진단기기는 인체 내부를 보는 소위 ‘제2의 청진기’로 인식될 만큼 범용성·대중성·기술적 안전성이 담보된다"며 "한의사에게 진단 보조도구로서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의료법 제1조에서 정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헌법 제10조에 근거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보장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준래 변호사(김준래법률사무소)는 “종전 대법원판결은 가급적 한의학의 원리를 적용하는 의료기기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반면 이번 판결은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 의료기기 조작의 안전성 등을 고려한 점이 인상깊다”고 평가했다.
 
진단의료기기도 한의학적 원리와 일부분 관련 있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동안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정당화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사법부가 진단기기 사용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를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 같은 기존 입장도 뒤집었다.
 
대법원은 "현대의 진단용 의료기기는 과학기술을 통하여 발명‧제작된 것”이라며 “그 과학기술의 원리와 성과를 한의사 아닌 의사만이 독점적으로 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보조적 진단수단으로 현대 과학기술에서 유래한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한의학적 원리와 배치되거나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즉 한의사가 한방치료행위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그 전제로 해당 질환의 변증유형 확정을 위해 이뤄진 진단 의료기기 사용행위는 한의학적 원리와 일정한 관련성을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변화하는 의료행위 환경과 학문적 원리, 교육 과정 등에 따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이전 판단 기준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가변성, 그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및 과학기술의 발전과 응용영역의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와 관련한 교육과정·국가시험 기타 공적·사회적 제도의 변화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고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선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 우려가 없음을 전제로 하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관해 종전 판단기준은 새롭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한의사가 침습정도를 불문하고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다"라며 "본질이 진단용인 의료기기에 한정해 한의사가 이를 한의학적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건강권 확대 차원에서 치료 방법 선택 폭 넓힌 듯…의료계 "위해성 해석 잘못돼"
 
이번 판결은 의료계에 주는 의의가 매우 크다.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해당 여부에 관해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판결로 인해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진단 의료기기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료체계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를 두고 ”족쇄가 풀렸다“고 표현했다.
 
또한 이번 판례가 진단 의료기기를 시작으로 향후 한의사의 다른 첨단 의료기기 사용 여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점쳐진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국민의 건강권 확대 차원에서 치료 방법의 선택 폭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고 대법원 판단을 해석했다.
 
김준래 변호사(김준래법률사무소)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우선 기존의 입장을 바꾼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국민의 건강권 확대라는 차원에서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범위를 넓히는 방법으로 환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데 판결의 방점이 찍혀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위해성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환자 A씨는 초음파 진단과 함께 침 치료와 한약 처방을 병행한 한의원 진료 이후,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 초음파검사를 받았는데 대형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권유를 받았다. 대형병원을 찾은 A씨는 결국 조직검사 결과 자궁내막암 2기를 진단받았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영상을 보는데 있어서 검사를 하는 사람의 숙련도와 전문성에 따라 판독이 달라질 수 있다"며 "특히 이 사건은 자궁내막암을 놓치고 치료가 늦어진 명백한 환자 피해 사건이다. 그럼에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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