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중환자, 소아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을 경우 성인 중환자실 생존율의 1.6배…인력 투자 없어 전국 소아 중환자실 13개 불과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소아 중환자들이 갈 곳을 잃었다"
22일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에서 개최된 제7회 대한소아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나온 말이다.
소아중환자의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개월 이상의 소아 중환자들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소아중환자실(PICU)'이 없어 절반 이상인 55%가 성인 중환자실(ICU)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과 다른 소아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성인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소아 중환자들은 소아 중환자실 환자보다 생존할 확률이 1.6배 낮은 것으로 나타나 소아중환자실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 올랐다.
하지만 그나마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소아중환자실마저도 의료인력 부족 등으로 교수들이 당직을 서며 겨우 버티고 있어 '침몰하는 배' 상태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소아중환자실 치료 시 생존율 1.6배 높아지지만…전국 소아중환자실 13개 불과
우리나라 신생아중환자실(NICU)은 태어난 지 1개월 미만의 어린이 중환자를 케어하는 곳으로, 1개월 이상의 소아는 소아중환자실(PICU) 혹은 성인중환자실(ICU)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소아중환자실이 전국 13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평균 병상도 12개로 적어 전체 소아환자의 단 45%만이 소아전용 중환자실에서 케어를 받고 있었다.
대한소아중환자의학회 조중범 기획이사(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똑같은 소아중환자도 어디에서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소아중환자실 치명률이 4%가량 된다. 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받지 못해 성인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은 나머지 55% 아이들의 사망률은 4.8%로 0.8% 차이가 났다.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할 경우 생존율은 성인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1.6배 이상이다. 수술적 치료를 받은 환자의 치명률 차이는 2.8배에 달한다. 성인을 보는 의사들은 소아만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나라에 소아중환자실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조 교수는 소아 중환자를 돌볼 간호사, 전담전문의 등 의료인력이 부족하고, 소아는 연령대별로 다양한 의료기기를 갖춰야 해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비해 그 치료 효과성은 낮아 병원들이 투자를 망설이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조중범 이사는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는 못 쓸지도 모르는 다양한 의료기기를 준비하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용을 생각해서 소아 진료에 접근하면 무엇도 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의료인력에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 전공의 특별법의 시행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줄어들었으나 그에 대한 대책은 전무했고, 그런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20~3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인력 부족이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모 대학병원 소아중환자실은 20병상에 중환자전담전문의가 23명이 배치돼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 모 대학병원 소아중환자실은 25병상에 고정 전담전문의가 2명, 전임의 2명, 전공의 3명만을 확보하고 있었다, 전임의와 전공의는 곧 빠질 인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에 13개밖에 안 되는 소아중환자실 조차도 의료인력 부족과 시설 부족으로 해외와 비교해 의료질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해외 소아중환자실 치명률을 살펴보면 미국이 2.39%, 일본이 2.6%, 스웨덴 2.5%로 우리나라 4%대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차이가 났다.
조 이사는 "일각에서는 일단 소아환자를 성인 중환자실에서 봤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소아중환자실로 이송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아중환자는 초기 중증도가 높기 때문에 입원 첫날 사망률이 가장 높다"며 "애초부터 소아 중환자는 소아중환자실에 90% 이상 입원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고, 소아중환자실에서 급성기 치료를 한후 안정되면 성인 중환자실이나 2차 병원으로 옮기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조 이사는 "중요한 것은 소아 중환자는 '소아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상실이 정립 돼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선진국 수준의 생존율과 그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받는데 소아는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교수, 온콜 당직은 물론 프라이머리 당직에 번아웃…소아중환자실에 대한 정부 지원 '전무'
이러한 열악한 소아중환자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의료인력'에 대한 지원으로 꼽혔다.
연세의대 소아과학교실 김경원 교수는 "지난해 전공의 모집 때 세브란스병원 소청과의사회 전공의 지원자가 0명으로 나와서 큰 충격을 줬다. 추가모집으로 3명의 전공의가 들어왔지만, 지난 3년동안 전공의가 제대로 충원되지 못하면서 신촌 세브란스병원 기준으로 4년차 8명까지 총 15명에 불과하다. 전공의 특별법으로 근무 시간까지 줄어들면서, 심정적으로 느껴지는 인력 감소는 5분의1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는 사이 중증도는 더 높아졌고, 의료 질 개선 요구는 커지면서 의료진의 할 일은 더 많아졌다. 남아 있는 의료진이 그저 온몸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병원도 빅5라고 하지만 소아중환자실은 교수가 당직을 선지 1년이 됐다"라고 했다.
이어 "온콜 당직은 20년 이상 하던 것이고, 프라이머리 당직까지 하고 있다. 밤새 소아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 가는 소아 중환자를 보면서 다음 날 다시 진료를 한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그를 뛰어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괴롭다"고 절절하게 현실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인력 부족으로 2차 종합병원급도 인력이 부족해 성인중환자실에서 담당하던 소아 중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 넘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상급종병 소아중환자실은 항상 만실이라 성인 중환자실에 자리를 내 달라고 요청하는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다고 받아주질 않는다. 더 이상 소아중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남아있는 소아중환자실은 마치 침몰하는 배의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대병원 어린이병원장을 맡고 있는 김여향 부회장(경북의대 교수)은 "지방과 수도권에서는 소아집중치료실(소아중환자실)에 대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국 소아집중치료실 열 개 남짓인데 그중 절반은 수도권, 절반은 지방이다"라며 "사실상 도별로 하나밖에 없다. 그 마저도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규정에 소아집중치료실에 5병상을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강제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은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의료인력, 시설이나 자원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을 계속 지원해 주고 있지만 소아집중치료실은 그런 지원이 전혀 없어 병원 차원에서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며 "물론 정부가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홍보하고 있지만 '시범사업'이라는 점에서 연속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임혜성 필수의료총괄과 과장은 "정부도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중증, 소아, 응급에 포커스를 맞췄다. 대통령도 소아를 더 강조해서 서울대병원도 방문했고, 소아의료 개선 대책도 발표했다. 소아의료는 필수의료이면서도 정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분야라서 다른 어느 분야보다 관심이 많고, 반드시 지원해야 되겠다는 생각 든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무엇보다 정부는 그간 행위별 수가제도라는 건보 재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대한 보상, 사후 보상 등 기존 틀에서 생각지 못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만큼 기존에 하던 대로 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며 "우려하는 사후보상 시범사업은 수가제도 모형이 확정되면 반드시 본사업으로 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진료 문제는 복지부 뿐만 아니라 공단에서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 이에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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