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의사회 기자회견 "10년째 빈껍데기 정책에 의대만 나온 의사보다 수입 적어…타과로 이동 이미 실현되고 있어"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오늘부로 대한민국에 소아청소년과 간판을 내리게 됐음을 선언한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29일 대한의사협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 폐과를 선언하고 국민에 작별을 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을 비롯해 50여 명의 의사회 회원들이 참석했다.
임현택 회장은 국민을 향해 "도저히 더는 하고 싶어도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며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소청과 유일한 수입원 진료비 '30년째 동결'…소청과 의사들, 진료 포기 선언
소청과가 이처럼 폐과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임현택 회장은 "지난 정권에서 최저임금과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보장성 강화를 한다면서 문케어도 실시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8%가 줄었다. 그나마 소청과를 지탱하던 예방접종은 정치인들의 마구잡이 선심 속에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려서 유일한 소아청소년 비급여였던 예방접종은 아예 없어졌다. 심지어 올해 국가 필수예방접종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은 소청과에서 받던 가격의 40%만 받게 질병청이 강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인턴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면 의대만 나온 의사보다도 수입이 적다. 동네 소청과 의원은 두 명 있던 직원 월급을 못 줘서 한 명을 내보냈다. 그러다 한 명 남은 직원 월급도 못 줘서 폐업했다. 결국 지난 5년간 소청과 662개가 폐업했다. 하지만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이다. 동남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 들어 소아의료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정작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소아의료 대책은 '빈껍데기 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소청과의 주장이다.
임 회장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기획재정부가 아이를 살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며 "이 순간에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조차 아이들이 숨져가고 오늘 밤에도 전국의 아이들이 치료받을 곳이 없어 길바닥에서 헤매고 있다. 그런데도 복지부, 질병청, 기재부가 대통령을 속이면서 아이들을 살리는 대책이 아니라 오히려 이에 반하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면 소아청소년과에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임현택 회장은 "오늘 자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더 이상 아이들 건강 돌봐 주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한없이 미안하다는 작별 인사를 드리러 나왔다"고 눈물지었다.
저출산·저수가·부모 감정노동에 소송 불안까지…소청과→노키즈존 진료 업무로 탈출
이미 소청과는 소아청소년 진료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내과 및 미용 시술 등을 배워 ‘소청과’ 간판을 달고도 내과 및 미용 환자를 보거나, 간판 자체를 클리닉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소청과의사회 회원 중에는 의원을 폐업하고 아이들이 없는 요양병원으로 이동하고, 통증 클리닉 일을 배워 개원하거나 심리 상담, 발달 지연 진료만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회장은 "앞으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아이들 보는 일을 안하고 노키즈존에 해당하는 일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 소청과 개원의인 정승희 전문의는 "소아를 치료하면 할수록 더 손해다. 소아는 성인 환자에 비해 보조인력이 2~3배 더 필요하다. 소아과 환자는 부모까지도 달래가며 일해야 한다. 사실상 부모를 상대로 한 감정노동까지 강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는 한 소아의 귀를 진찰하다가 아이가 움직여 피가 나온 사례에 대해 보호자가 의사를 상대로 과실 치상으로 형사고소를 하고 3000만원 배상하라고 민사소송을 한 사례도 있다"며 "소아과 환자가 줄어든 것도 맞지만 소아환자를 치료한 데 대한 정당한 수가를 받지 못하고 소아과 의사에 대한 처우와 환경이 엉망이다"라고 전했다.
정 전문의는 "저 역시 간판은 소아청소년과 의원이지만, 고혈압과 당뇨 환자도 보고 있다. 여태까지 말로만 폐과를 선언하지 않은 것이다. 안산시만해도 소청과 의원으로 개원했다가 일반의원으로 바꾸는 곳이 4~5곳이 넘는다. 소아과 의사로서 역할을 인정받고 그 자긍심으로 일해왔는데, 이제는 그런 것마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소아청소년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아정형외과도 소아안과도 사라지고 있다. 소아 환자를 안 보려고 한다. 소아진료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학교에서 소아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고 배우지만 정부는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서 활동하는 회원 3000명 중 약 90%가 이러한 생각에 동조하고 있고, 이미 일부에서는 다른 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현택 회장은 "이렇게 소청과에서 다른 과로 이동하려는 회원들을 위한 트레이닝 교육센터를 만들어 회원들 각자가 원하는 진로를 지원할 예정이다. 약 1년이면 충분한 교육을 통해 다른 과에서 근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폐과 피할 방법 없어, 소생 불가…10년째 현장 목소리 전달해도 개선 없어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소청과가 폐과를 피할 방법이 없느냐는 질문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임현택 회장은 이미 소청과는 회생 불가 상태에 빠졌다며 진로를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고 단언했다.
임 회장은 "인턴 시절 유일한 소원이 잠만 잘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소아과 전공을 따도, 안 딴 일반의보다 살기가 힘든데 어떻게 버티느냐"라며 "10년 동안 정부 관계 부처와 만나 끈질기게 문제를 지적했고, 무수한 회의를 했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말은 항상 '고려해보겠다'고만 하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담당 공무원이 계속해서 바뀌다보니 책임감 없는 제도와 정책의 피해는 소청과만 보고 있다. 복지부와 질병청을 어렵사리 설득하더라도 기재부로 넘어가면 기재부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한다"며 "그간 소청과는 할만큼 했고 이제는 어떤 대책도 소청과를 살리기 어렵다”며 소청과 폐과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