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연명의료결정법인가

[칼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연명의료 결정, 무의미한 불편함으로 다가가지 않아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여한솔 칼럼니스트]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죽음의 과정에 대한 환자의 선택 권리를 존중'하는 측면에서 법안의 취지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의학적 판단을 통해 더 이상 연명의료가 무의미함을 확인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서류를 작성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이 법안을 현실성 있게 적용하려면 여러 가지 시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가족관계증명서, 윤리위원회 설치 등 갖춰야 할 서류가 많고 처리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2인 이상의 가족, 혹은 가족 전원의 동의- 환자의 의식유무에 따라 조건이 달라짐-를 전제한다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절차와 서류는 간소화해야 한다. 그것이 이 법안을 잘 정착시키는 방법이라고 본다. 서류 누락과 절차 생략 등으로 인해 애꿎은 의사만 징벌적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보호자가 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려다 환자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해서도 안된다. 의사는 일분, 일초를 다투는 의료현장에서 환자가 관련서류를 제출했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에도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뉴스를 통해 알려진 서울대병원의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 중단 사건이다. 서울대병원 연명의료결정법 준비위원회는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이 정말 환자를 위한 시스템인지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 한 사람의 서류 작업에만 수십 분이 걸리고 수정 절차 또한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책입안자들은 서울대병원 연명의료결정법 준비위원회의 이야기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환자 혹은 보호자에 의한 DNR(Do not Resuscitate, 소생술 금지)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통해 모두에게 알려졌다. 의사는 앞으로 이 연명의료결정법이 정하는 연명의료 중지의 사례가 아니라면 DNR에 동의된 환자라도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일까. 
 
이처럼 현장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만으로 법안을 만들면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제대로 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법은 죽은 법이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꽤 많은 의료진과 정책입안자가 공감하고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의 과정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리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회복 불능의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환자는 물론 주변 가족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연명의료 결정은 의학적 신중함을 전제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신중함이 자칫 의사와 환자 가족 모두에게 '무의미한 불편함'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한다.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정책입안자들이 현장 의사들의 목소리를 새겨듣고 바로잡음으로써 이런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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