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야전병원 같은 응급실
얼마 전 한 공영방송에서 응급실에서의 구급대원과 환자 대기 문제를 다뤘다.
119구급차가 대형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도 의료진과의 인수인계가 지체되고, 구급대원들이 환자와 함께 긴 시간동안 대기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의료진이 늑장을 부려서 대기 시간이 생기고, 이로 인해 바쁜 구급대원들이 시간을 뺏긴다는 뉘앙스였다.
정말 정신없이 바쁜 응급실 의료진이 늑장을 부려서 바쁜 구급 대원들을 일부러 대기시키는 걸까.
환자의 활력징후가 떨어지거나 의식을 잃은 중증 상태일 경우, 어느 병원의 응급실을 가더라도 ‘하이패스’로 응급실을 통과할 수 있다. 만약 중한 환자가 응급실에서 대기를 하다 인수인계가 지체되고 사고가 생길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병원에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환자 대기는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환자, 급한 처치가 필요 없는 경증 환자들이 원래부터 대기로 가득한 병원의 응급실을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들에게는 환자의 증상에 따른 ‘환자 이송 원칙’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고 이에 맞게 가장 적절한 처치가 이뤄질 수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게 교육받는다.
우리나라는 119 구급차의 호출과 이송에 비용과 책임이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119를 호출한다. 그래서 단순 소화불량, 간단한 찰과상, 심지어 단순 변비에도 사람들은 119를 호출하고 ‘큰 병원으로 가자’는 말을 쉽게 한다.
국민들은 구급 대원에게 민원을 넣을 수 있고 구급대원들은 민원인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 결국 이렇게 몰려온 경증 환자들로 대형 병원 응급실은 가득 찬다. 응급실 의료진은 이렇게 밀려들어온 환자들을 순차적으로 파악해 분류하고, 병상이 부족할 때 다른 병원으로 이송까지 결정해야 한다.
병상이 부족해서 복도 바닥에서 진료를 보더라도 진료 자체를 빨리 봐주면 안되냐는 질문이 온다. 맞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빅5’라 불리는 병원들의 응급실을 주말 저녁에 가보시라. 복도에 포를 깔고 누워서 수액을 맞거나 환자 대기 의자를 붙여 침대로 삼고 진찰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야전병원’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인수인계를 생략하고 환자를 응급실에 남겨둔 채 구급요원은 다른 호출을 받고 가는건 어떨까. 환자를 싣고 온 구급대원은 처음 발견 시 환자 상태와 현장 상황, 이송 과정에서의 처치, 환자의 반응과 변화 등에 대해 의료진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생략하고 환자를 방치한다는 건 한국의 빨리빨리, 대충대충 문화가 낳는 또 다른 안전 불감증의 사례이며 수없이 많은 사고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국민들 앞에서는 구급대원도, 의료진도 모두 을일 수밖에 없다. 을과 을이 서로의 탓을 하며 투닥거리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없다. 이런 불필요한 잡음을 막고, 의료 현장이 모두 적절하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 자원과 환자의 효율적인 분배와 이송 체계가 필수적이다.
국민들이 구급대원과 의료진의 결정을 신뢰하게 하고 그들의 결정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들의 결정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적 지원이 이런 비극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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