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한목소리로 의대정원 증원 반대하는데...복지부는 "의사인력 확충" 고수

의학회 학술대회서 정부 의대증원 정책에 대한 비판 쏟아져…인력 재배치, 당직의사 활용,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등 대안 주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의료 관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현장 의사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정부는 절대적인 의사 수가 늘어나면 필수의료, 의료 취약지로도 의사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낙수효과'는 허상이라며 단순 의대 증원 정책이 일으킬 부작용이 더 크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 의사인력 부족 등 현상의 근본 원인이 의사인력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을 고수하며, 인력확충과 현재 근무하는 의사의 효율적 배치를 위한 필수의료 대책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대한의학회

의사인력 양적완화, 단순 숫자 늘리면 건보 재정 파탄 등 '부작용' 우려

16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대한의학회 KAMS 2023 학술대회에서 '의사증원 논의 어떻게 볼 것인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먼저 발표에 나선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의대 정원은 경제 용어를 빌리자면 양적 완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 등 어떤 수단으로도 경제가 풀리지 않을 때 돈을 푸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전 세계가 엄청난 인플레이션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의사인력의 양적완화도 결국 의사 인건비 증가로 이어져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귀결돼 손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주말에 소청과 의사 800여 명이 소아과 탈출 학술대회에 집결했다. 기존에 있는 의사조차 소청과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며 "당장 아픈 소아환자가 죽어가는데 10년, 15년 후를 기다리라는 것인지 너무나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의사인력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인력으로 타 직종에 비해 교육과 수련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기 때문에 단편적 지표나 연구로 섣부른 결정을 하기보다 장기적 영향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당장 발등의 불이 될 필수의료 붕괴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추이, AI의 출현 등 테크놀로지 혁신이 가져올 미래 전문직의 역할과 수요에 대한 판단 없이 최소 10년 후가 될 의사인력 증원에만 올인했다가는 국가적 재앙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우 소장은 의대 정원 증원보다는 당장 의사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당직 의료인 규정 개정을 통한 의사인력 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 환자 200명당 당직 의사 1명을 두도록 하고 있고, 요양병원은 300명마다 당직의사 1명을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 규정을 완화하면 200병상 이상인 병원에서 150명, 300병상 이상인 요양병원 162명 등 총 312명의 의사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 소장은 그 외에도 ▲전공의 수련 교육과정 개편 ▲전공의 T/O 조정 ▲의사 재교육 또는 원로의사 인력 활용방안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진=대한의학회

의사 양적 증가한 그리스, 인기과 집중·전문의 과잉공급으로 의사 국내 떠나

이어 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은 "정부가 우리나라가 지역 격차가 굉장히 심한 것으로 이야기 하는데, WHO에서 지역 격차가 제일 없는 곳으로 한국과 대만, 일본을 꼽는다. 물론 도서지방에 의사가 없어 고생하는 곳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처럼 접근 자체가 차단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의사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면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숫자만 늘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국가가 있다"고 '그리스 병(A Greek Malady)'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리스는 2007년 국민 1000명당 의사 수 5.35명으로 의사 수가 적지 않았지만, OECD 국가 중 GP의 숫자가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고, 의사들이 대도시로 집중되면서 의료 취약지가 많은 등 현재의 한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에 그리스는 계속해서 의사를 배출했는데 그렇게 늘어난 의사들은 인기과 전공만 집중적으로 지원했고, 2020년 2만명 이상의 전문의가 과잉공급 돼 의사 1만 7500명이 해외 이주를 떠나고 공공병원 의사직 중 6000명이 공석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 전 소장은 "현재도 그리스는 유명 관광지를 포함한 도서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 그리스의 예를 통해 양적 증가로는 필수의료나 취약지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일각에서는 의사 숫자만 늘리면 자연히 낙수효과로 필수의료, 의료 취약지 의사도 늘 것이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기도 하는데 이미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의사인력 낙수효과는 허상이다"라며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진다"고 비판했다.
 
(왼쪽부터) 대한병원협회 신응진 정책위원장, 대한의학회 염호기 정책이사,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의료인력정책과장.

전문가 의견 무시된 표면적 의사증원 정책 비판 이어져…한정된 자원 '배분' 강조

이어진 토론회에서도 단순한 의대정원 확대로는 현재의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한병원협회 신응진 정책위원장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모든 배출된 의사가 필수의료로 유입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회의감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의대정원 문제와 별도로 기존 인력을 필수의료에서 역할 할 수 있게끔 하는 재배치 방법을 논의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방법의 하나로 수련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신 정책이사는 "현재 의대를 졸업한 의사는 의사 면허를 따면 바로 개업할 수 있는데, 전 세계에서 그런 나라는 드물다. 미국은 졸업 후 일정 수련 단계를 거쳐야 개원 자격을 준다. 일본도 임상 2년의 경험을 쌓아야 자격을 주는 등 의대 졸업 후 임상경험을 중요시한다"고 설명했다.

신 정책위원장은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 제도를 10여년 전부터 수행했다. 과거 인턴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인턴 시절 2년 동안 전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경험을 쌓은 후 전문과목을 트레이닝 받는 방식으로 수련제도를 개선하면 필수의료 인력 양성에도 도움이 되고 개원의도 임상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어 긍정적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대한의학회 염호기 정책이사는 이번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정치적 결정이라고 지적하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염 정책이사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 원인이 있다. 중환자실이 꽉 차 있고, 환자를 돌볼 인력이 없는 등 여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이면이 있다. 그런데도 그저 응급실이 환자를 안 받았다는 것만으로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연결해 의사인력을 증원하려 한다"며 "이는 현상만 고쳐서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료는 무한정 재화가 있는 게 아니다.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중요하다"며 "정확한 의사인력을 추계해 정원을 책정해야 할 것이며 이는 필수의료, 공공의료, 1차의료 살리기를 위한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의사인력 확충 없이는 문제 해결 불가능하다고 생각"…필수의료 패키지 병행 약속

이 같은 의료계의 주장에도 복지부 송양수 보건의료정책실 의료인력정책과장은 "최근 의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응급의료 대책, 필수의료, 소청과 대책 등을 세웠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인력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송 과장은 "의대정원 확대를 위해 의료계와 1월부터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서 관련사항을 논의하고 있고, 지난 10차 회의에서 적정 의사인력 확충을 논의해 나가겠다고 협의해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나아가 그는 "의사인력 확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의사인력을 확충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의료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의사인력 확충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송 과장은 "다만, 의대정원 확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필수의료 패키지로 병행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방향성은 크게 3가지로, 전공의에만 의존하는 병원 구조를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고, 병원이 필수의료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 및 제도, 수가체계를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두 번째는 의대생, 전공의 수련 단계부터 지역과 필수의료에 대한 교육과 수련을 받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 전문인력으로 양성되도록 제도를 갖춰나가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의사의 근로여건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공공정책 수가 등 경제적 보상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도 마련해 가겠다"며 의사 인력확충과 현재 근무하는 의사의 효율적 배치와 양성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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